▣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찾습니다.”
라이따이한(베트남 전쟁 때 탄생한 한국-베트남인 2세) 부녀가 한국에 왔다. 리민융(36)과 그의 딸 팜띠홍(13). 3월19일 종교단체 ‘증산도 상생봉사단’의 초청으로 각각 백반증과 근시 치료차 한국을 방문한 부녀는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찾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아버지는 어머니와 1년쯤 함께 살다가 한국에 돌아갔어요. 어머니가 나를 임신하고 석 달이 되던 즈음이었지요.”
어머니는 호찌민 거리에서 커피를 팔다가 리민융의 아버지를 만났다. 얼마 안 돼 그들은 같이 살게 됐고, 아버지는 호찌민에 설치된 주베트남사령부의 부식 담당 하사관으로 부식 차량을 직접 운전하고 집에 오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좋은 남편이 못 됐던 것 같다. 어머니가 가끔씩 말을 꺼낸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술에 취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지라 어머니는 아버지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애썼다. 이름은 김항만. 아직 살아 있다면 나이는 66살. 하지만 이름은 정확하지 않다. 어머니가 한국어로 그의 이름을 적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냥 베트남어로 ‘김항만’ 비슷하게 발음된다는 걸 알고 있을 뿐이다.
어머니는 재가하지 않았다. 아버지를 못 잊어서가 아니라 남자가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란다. “어머니는 그런 감정을 가질 수 있지만 그건 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입니다. 아들로서 아버지를 한번 만나고 싶어요.” 그의 딸 팜띠홍도 “할아버지를 보고 싶다”고 말했다. 증산도 상생봉사단은 리민융의 아버지를 수소문했으나, 좋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는 “김항만이라는 사람은 당시 참전자 기록에 없다”고 답했다.
리민융은 호찌민시 합기도장에서 한국인들과 어울리면서 한국어도 배웠다. 아버지를 만나게 되면 어떻게 하겠냐는 물음에 그는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국어로 대답했다. “사랑 같은 감정은 느끼지 못하겠지만, 공손히 인사드려야겠죠.” 그가 아버지에게 한국어로 인사할 날은 올까. 아버지를 찾게 해달라고 그가 다시 한 번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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