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빨치산추모제’ 지냈다며 관촌중학교 교사·학생의 사상 문제 거론 뒤…아이들의 상처와 분노는 열정적 통일운동으로 선순환, 지역사회는 안티조선 운동
▣ 전주·임실=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에 난 기사로 관촌중학교는 쑥대밭이 될 줄 알았다. 담당 교사는 중징계를 받고, 학부모들은 학교에 항의를 하고, 아이들은 하나둘씩 떠날 줄 알았다. 적어도 반세기 냉전의 터널을 거친 한국 사회에서 이런 종류의 사건은 그렇게 전개되는 게 수순이었다.
교육청이 ‘통일시범학교’로 지정한 곳
하지만 사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렀다. 발행부수 238만 부를 자처하는 가 쓴 대대적인 비판 기사에 전교생 180명의 시골 중학교의 재학생과 졸업생은 끄덕하지 않았다.
아이들의 ‘통일운동’은 최저점을 찍고 튀어오른 공처럼 열기를 띠었고, 지역사회에는 때 아닌 ‘안티조선’ 운동이 벌어졌다. 개인, 가족, 동창회, 교회의 이름으로 의 매카시즘에 반대하는 200여 개의 ‘작은 성명서’가 발표됐다.
문제의 시발은 지난해 12월6일치 기사였다. 이 신문은 ‘전교조 교사, 중학생 180명 데리고 빨치산 추모제’라는 제목으로 공안당국이 김형근 전 임실 관촌중 교사를 내사 중이라며 김 교사와 학생들의 사상 문제를 거론했다. 또한 이들이 2005년 5월 빨치산 추모행사인 ‘남녘 통일애국열사 추모제’에 참석했으며, 이 행사에선 전 빨치산 윤아무개씨가 “제국주의 양키 군대를 한 놈도 남김없이 섬멸하자”와 같은 빨치산 구호를 제창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김 교사의 주도 아래 학생들은 반전 배지를 달았고, 인터넷에서 북한 친구들에게 1년 넘게 편지를 보냈다고 보도했다.
관촌중 학생들은 이 기사를 지켜봤다. 그동안 ‘통일학교’라 불리며 언론의 조명을 받고 2005년엔 교육청이 ‘통일시범학교’로 지정한 터라 학생들이 받은 상처는 컸다. 이튿날 김은선(3학년)양은 평양 륙교중학교에 다니는 2학년 박유성에게 675번째 편지를 썼다.
“안녕 유성아, 나 은선이야. 나 어제 오늘 너무너무 화가 나서 울었어. 신문 기사를 본 사람들은 우리가 빨갱이라고 그래. 우리가 통일을 위해서 편지 쓰고 운동하는 걸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야? 어제 오늘 애들이랑 모여서 그 얘기밖에 안 했어.”
1월10일 김형근 교사와 관촌중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가 한자리에 모였다. 지난해 초 군산으로 발령받은 김 교사를 본 학생들은 “너무 오랜만이다”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북녘 친구들에게 편지 쓰기나 반전 배지 차기 운동도 모두 선배 언니들이 제안해 시작했어요. 이건 한반도를 상징하고, 여기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있고… ”
졸업생 신유미(전주 유일여고 1년)양이 가슴에 달고 있는 반전 배지를 보여주며 설명했다. “반전과 통일을 말한 것뿐인데 친북이라고 몰아붙이다니. 나도 북한 체제를 싫어해요. 북한 체제로 통일하자고 한 것도 아닌데….”
북녘 친구 편지 쓰기는 아이들의 소통로
졸업생들은 고등학교에서도 ‘통일운동’을 이어가고 있었다. 전민지(성심여고 1년)양은 “친한 친구에게 배지를 나눠주고, 인터넷 카페 ‘노워’(No War)에 들어오라고 권한다”고 말했다. 노워는 관촌중 학생들이 만든 통일·반전 카페다. 널리 알려져, 회원 수가 3319명이다. 중학생들은 노워1(cafe.daum.net/nowar1)에서, 졸업생들은 노워2(cafe.daum.net/nowar2)에서 북녘 친구들에게 공개 편지를 보낸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북한 학생의 이름을 찾아 그에게 편지를 쓰는 운동은, 되레 같은 학교 아이들 사이의 소통로가 됐다. 학생들은 친구가 어떤 고민을 하는지, 친구가 쓴 북녘 편지를 보고 알았다. 김 교사는 “편지 쓰기가 일상생활의 동기로 작용해 행동양식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학부모 김영숙(42)씨도 “아이들의 표현력이 좋아지고 왕따가 없어졌다”고 맞장구쳤다.
편지 쓰기 운동이 반응이 좋은지라 학부모들도 적극적이었다. 김 교사와 학생, 학부모는 통일산악회를 만들었다. 가 문제 삼았던 ‘빨치산 추모제’도 통일산악회가 초대 손님으로 참석한 ‘남녘 통일애국열사 전야제’(전북 사회단체 주최)였다. 관촌중 학생들은 유명세 덕택에 이런저런 행사에 불려다닌 터였다. 김 교사는 “교장에게 말한 뒤 교사, 학생, 학부모가 함께 갔고, 아이들은 전야제에서 6·15 공동선언을 외우고 라는 노래를 불렀다. ‘양키 섬멸하자’는 구호는 들어보지 못했고, 본 행사가 열리는 다음날엔 아침 일찍 등산을 갔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상처는 분노로 바뀌고, 분노는 지금까지 이어왔던 통일운동에 대한 열정으로 선순환됐다. 이들에게 통일운동은 북녘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반전 배지를 달고, 노워 카페에 자주 드나드는 것이다. 김은선양은 1월7일 700통째 편지를 보냈다. 김진실(3학년)양이 말했다. “신문에 그런 기사가 나기 전까지는 통일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는 줄 몰랐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더 열심히 통일운동 해야지요.”
그사이 지역에서는 를 반대하는 ‘작은 성명서’ 운동이 들불처럼 일었다. 12월6일 전교조 전북지부의 성명서를 1호로 1월12일까지 250여 개의 성명서가 올랐다. 하은·하림·하경 엄마, 김제시 금구면 박종화 가족 일동, 군산 한길문고 직원 일동, 농협노조 전북본부, 전북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까지 순수한 학생들의 동심을 상처 낸 신문을 비판했다.
반대하는 ‘작은 성명서’ 운동
지난 1월1일 관촌중 재학생과 졸업생 6명은 서울 김대중도서관에서 김 전 대통령을 만났다. 김 전 대통령 기념 인터넷 카페인 ‘후광 김대중 마을’의 주선으로 신년 하례회에 초청받은 것이다. 아이들은 김 전 대통령에게 통일 리본, 배지, 스티커와 함께 자신들이 쓴 편지를 담은 복주머니를 전달했다.
김진실양이 김 전 대통령에게 쓴 편지의 내용이다. “김대중 할아버지, 이번 일을 통해서 우린 알았어요. 통일을 반대하고 같은 민족인 북을 적대시하는 사람들이 많다고요. 이런 사실을 알고 나니 우리가 더 통일운동을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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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촌중의 통일운동은 예전부터 언론의 조명을 받았다. 하지만 사설처럼 전교조 소속 교사가 만든 “통일전사 양성소”나 아이들을 “빨치산 숭배자”로 만드는 것이 아닌 통일과 평화의 키워드 속에서 읽혔다. 지난해 12월 조선과 똑같은 취지로 보도했던 는 심지어 2003년엔 ‘금주의 인물’로 관촌중 학생들을 뽑기도 했다. 김형근 교사는 1월10일 “대선을 앞두고 관촌중이 차기 집권을 위한 희생양으로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김 교사는 민주화운동으로 옥고를 치르고 1999년 임용된 ‘늦깎이 교사’다.
공안당국에서 수사를 받은 적이 있나.
=조선이 내사가 진행 중이라고 썼는데, 나는 한 번도 조사받지 않았다. 법을 어길 만한 행동은 하지 않았다.
왜 갑자기 1년 전 사건이 이렇게 불거진 것 같나.
=대선을 앞두고 차기 집권을 위한 희생양으로 몰린 것이다. 친일분단 세력의 정치적 의도 속에서 진행된 거 아닌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신년인사회 때 우리를 언급하기도 했다. 시골 중학교라고 해서 우리를 쉽게 본 것 같다.
아이들의 통일운동이 감상적인 차원에 머문 것 아닌가.
=통일교육을 깊게 하지 못했다. 깊게 하면 감당을 못한다. 여러 논리를 가르치다가 만약 아이들이 연방제가 옳다고 하면 어떻게 감당하나. 그래서 감상적 수준에서 머문 것 같다. 통일은 분단의 원인을 해결하는 과정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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