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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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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동] 소를 닮은 만화가, 평택을 그리다

등록 2006-12-29 00:00 수정 2020-05-03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황성동(46)씨의 웃음은 곁에 선 사람을 편안하게 했다. 그는 서울 관악고의 미술교사로 12월9~23일 서울 종로구 사간동 갤러리 ‘온’에서 ‘인간기둥’이라는 제목의 개인전을 열었다. 12월22일 찾은 그의 개인전에서 다양한 사람들은 사각의 기둥 안에서 멍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거나, 양복을 입고 아귀다툼을 벌이거나 안간힘을 쓰며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른다. 그는 “서로 받치고 지지하면서도 서로를 구속하는 기둥의 모습이 인간과 닮았다”고 말했다. 멍한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하는 기둥 속 인물들은 지난 한 해 동안 국가의 폭력에 맞서온 평택 대추리·도두리의 농민들이다.

그는 전공이 서양화지만 틈틈이 만화도 그린다. 지난 한 해 동안 노동만화네트워크 ‘들꽃’ 회원으로 활약하면서 평택 농민들의 지난한 삶을 만화로 그렸다. 들꽃은 틈틈이 만화를 그리는 전교조 교사, 백화점 노동자, 철도 노조원, 공장 노동자들과 전문 만화가들이 2001년 모여 만든 만화 공동체다. 들꽃이 올해 고민의 대상으로 삼은 곳은 평택이었다. 그들은 2006년 3월 평택을 방문해 이제는 허물어지고 없는 건물의 담벼락에 평화의 메시지를 담은 만화를 그렸고, 4월8일에는 평택의 들판을 파헤친 포클레인 자국을 보며 다시 그림을 그렸다. 6월에는 서울 광화문에서 대추리의 상황을 알리기 위한 문화제에 참가했고, 9월에는 국방부의 포클레인에 무너져내린 벽화의 잔해를 확인하는 아픔을 느꼈다. 그는 “평택 문제를 좀더 깊이 고민하고 좀더 나은 작품을 남기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만화가 황성동의 필명은 ‘황우’다. 1961년생인 그는 소띠다. 그의 만화에는 처음엔 일본군에게 그 다음엔 미군에게 이제는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쫓겨날 위기에 놓인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의 고통스런 삶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나이로 따지자면 그는 ‘386’의 맏형뻘이 되지만,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 안아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처럼 보였다. 듬직한 소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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