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그분’이 가셨다. 전세계 투르크멘족의 아버지란 뜻의 ‘투르크멘바시’를 자처했던 사파르무라트 아타예비치 니야조프 투르크메니스탄 대통령 겸 총리가 12월21일 심장마비로 돌연 세상을 뜨셨다. 향년 66.
니야조프 전 대통령은 1940년 투르크멘의 수도 아슈하바트에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2차 대전에 참전했다 전사했고, 나머지 가족들도 1948년 아슈하바트를 덮친 강진으로 숨지면서 그는 고아원을 거쳐 먼 친척 손에 길러졌다. 1962년 공산당에 입당한 뒤 당내 입지를 넓혀온 그는 1985년 투르크멘 공산당(현 투르크멘 민주당) 서기장에 오르면서 권력의 정점에 이른다. 그리고 옛 소련의 몰락 이후 1990년 10월 치러진 사상 첫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돼 ‘영구 집권’의 길을 열었다.
니야조프 대통령의 ‘시와 철학, 음악과 역사에 대한 깊은 조예’는 유명한 일화를 여럿 남겼다. 그는 가끔씩 ‘시상’이 떠오를 때면 정규방송을 중단시키고, 자신의 작품을 국민들과 함께 나눈(?)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단호한 면도 없지 않았다. “투르크멘 전통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발레와 오페라를 금지하고, 젊은이들의 장발과 수염 기르기를 금지하는 한편 수도 인근에 대형 얼음궁전 건설을 명하기도 했다.
또 ‘국민 누구든 수도의 병원을 이용할 수 있다’는 취지에서 아슈하바트 이외 지역의 병원 폐쇄를 명하는가 하면, ‘투르크멘 국민들은 어차피 책을 읽지 않는다’며 농촌 지역의 도서관을 걸어 잠갔다. 의사들에겐 ‘히포크라테스’ 대신 자신에게 선서하라고 주문했고, 가수들의 립싱크와 자동차에 라디오를 장착하는 것까지 금지했다. 전국의 거리마다 자신의 동상을 세우거나 대형 걸개그림을 내걸었고, 자신이 쓴 일종의 건국신화인 (영혼의 책)를 ‘민족의 영적 지침’으로 삼아 이슬람 경전 쿠란과 동격에 놓고 학교에서 암송하도록 했다. 살아서 ‘지폐 모델’로 나선 것은 예견 가능한 일이었다.
철권을 휘두르며 반대세력을 무참히 짓밟았던 니야조프의 죽음도 ‘아슈하바트의 봄’으로 이어지긴 어려울 듯싶다. 카스피해를 낀 전략적 요충지이자 세계 4위 천연가스 매장량을 자랑하는 투르크멘에선 자원을 노린 강대국들의 각축이 벌써부터 불을 뿜을 조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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