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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숙]미국에 보여준 ‘한국의 매운맛’

등록 2006-11-10 00:00 수정 2020-05-02 04:24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이희숙(47)씨가 미국으로 건너간 건 1989년이었다.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큰아들을 비롯한 세 아이에게 서너 해 동안만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좀 다른 공부를 시켜보자는 목적이었다. 사업가인 남편은 한국과 미국을 오가고, 이씨는 아이들을 뒷바라지하는 미국 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몇 해 지나니까 애들이 한국에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더군요. 한국의 교육제도가 좀 그렇고 하니, 미국에서 공부시키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죠.” 그즈음 남편도 한국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미국으로 합류했다.

미국에 뿌리를 박기로 마음먹은 이씨는 로스앤젤레스(LA) 한인타운에 ‘북창동 순두부’라는 음식점을 열었다. 부동산이나 보석 쪽으로 눈길을 돌려보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한국에 있을 때 경험했던 음식점 경영이 나을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손맛이 좋았던지 사업은 날로 번창했다. 음식점은 확장을 거듭해 지금은 LA에만 9개의 점포를 두고 있다. 일본에도 진출했다. 외환위기 와중이던 1998년에는 한국에도 진출해 현재 서울 마포·명동과 인천 3곳에 지점을 두고 있다. 음식점을 ‘역수출’한 셈이다. 직원 200명의 ‘북창동 순두부’는 한 해 2천만달러(약 2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10월31일부터 사흘 동안 부산에서 열린 제5차 한상(韓商)대회(국외동포 기업인 모임)에 성공사례 발표자로 나선 그는 “뜨겁고 매운 한국 음식의 전통적인 맛이 미국에서도 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메뉴의 다양화와 차별화에 있었다”고 밝혔다. 외국인 고객들(60~70%)을 끌어들이기 위해 고춧가루·파·마늘·생강·젓갈 등 양념이 보이지 않게 만든 ‘숨은 김치’, 주문을 받은 뒤에 바로 지어서 내놓는 ‘돌솥밥’을 그런 예로 들었다.

“사업인데, 어려운 일이 왜 없었겠습니까. 초창기 영주권 문제로 가족 모두 라스베이거스에 머물 수밖에 없었는데, 사업장은 LA에 있어 비행기로 오가야 했습니다. 사업장을 하나씩 늘릴 때도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미국은 한국에 견줘 위생조건 등을 훨씬 더 까다롭게 따져 영업점 신규 허가를 받는 게 힘들었다고 한다. 이씨를 미국에 주저앉게 했던 세 아이는 나란히 캘리포니아대학교 LA캠퍼스(UCLA) 의대, 버클리 법학대학원, 조지타운 경영대에 진학해 또 다른 자랑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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