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외로 번 돈을 영어 학원 등에 쏟아붓는 사교육의 공급자이자 소비자… 입시와 취업의 악순환, 대학교육의 공동화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 김규남 인턴기자 paullife79@naver.com
▣ 사진· 이명국 한겨레21 인턴기자 chul@hani.co.kr
ㄱ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유진(21)씨는 중고생 과외 세 개를 한다. 과외로 얻는 월 소득은 90만원을 웃돈다. 과외로 얻은 수입의 사용처에 대해 그는 “여행비용으로 쓰기도 하지만 주로 영어 공부를 위해 투자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대학 2, 3학년 때 영어학원에서 토플·텝스·영어 작문 등을 수강했다. 수강료는 모두 123만원. “영어 공인 성적이 취업 때 반드시 필요한 이유도 있지만, 영어 공부에 힘쓰는 더 큰 동기는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씨는 사교육 시장에서 과외를 통해 번 돈을 다시 사교육 시장에서 소비한다. 사교육 시장에서 수요자와 공급자의 구실을 동시에 하고 있는 셈이다.
입사 시험은 학원에 맡겨라?
ㄴ대 지리학과 4학년 송아무개(22)씨는 대학 1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영어·수학·지리 과목 과외를 해왔다. 월평균 수입은 90만원 안팎. 송씨 역시 지난 겨울방학 때 석 달 동안 토플학원을 다녔다. 종합반과 에세이반 강의를 모두 듣는 데 드는 학원비는 한 달에 50만원. 석 달 150만원의 학원비는 모두 그가 과외를 해 벌어들인 돈으로 충당했다. 토플학원을 다닌 이유에 대해 그는 “교환학생 준비를 위한 것이었다”며 “학원 수강 후 토플 점수가 50점 올랐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에서 대학생이 없다면 사교육 시장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을까. 아마 어려울 것이다. 대학생은 사교육 시장의 최대 수요자이자 공급자이기 때문이다.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중·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입시 사교육의 공급자 구실을 하는 동시에 취업 사교육 분야에서는 최대 수요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영어학원은 기본이고 취업 분야에서 요구하는 특정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점점 더 사교육에 기대는 추세다. 대학생은 어느새 사교육 시장을 유지하고 확대재생산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핵심 연결고리 구실을 하고 있는 셈이다.
대학 마지막 학기를 앞둔 김민경(23)씨는 2년 전 영국으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김씨는 7개월 동안 사설 어학원 두 곳에서 수업을 들었다. 수업료와 생활비를 합쳐 1천여만원을 들여 어학연수를 다녀온 이유에 대해 그는 “가장 큰 목적은 영어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것이었다”며 “영어가 획기적으로 늘지는 않았지만 자신감은 얻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토익학원도 다녔다. 두 달 동안 30여만원이 들었다. 그는 족집게 강사의 수업을 택했다. “토익은 특정한 유형이 있는 시험이므로 토익을 빨리 졸업하려면 노하우가 쌓인 학원 강의를 듣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업을 들을 때는 지겨웠지만 강사의 지도에 착실하게 따랐더니 두 달 만에 고득점이 나오더라고요.”
ㄷ대 4학년 김아무개(23)씨는 15개월 동안 영어회화 학원을 다녔다. 학원비는 모두 260만원. 2004년 6개월, 2005년 9개월로 나눠서 학원에 나갔다. 2004년에는 뉴질랜드 교환학생을 준비하기 위해서였고, 2005년에는 교환학생에서 돌아온 이후 영어의 감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학원수업을 받고 특별히 실력이 늘었다기보다는 많이 말하고 영어에 익숙해지는 기회로 여겼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대학 재학 내내 영어공부에 목을 매는 이유는 영어 공인점수가 취업 경쟁력의 핵심요소이기 때문이다. 토익의 경우 900점 이상의 점수를 확보하지 못하면 안심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대학생들 사이에 팽배해 있는 실정이다. 국내 영어 사교육 시장은 한 해에 10조원 규모로 추정된다. 그 가운데 토익·토플·텝스 등 공인시험과 영어회화를 강의하는 학원들은 대학생들이 주고객이다.
“과외비 얼마 이하는 받지 맙시다”
평생 직장으로 각광받는 공무원이 되려는 대학생들도 취업 사교육 시장을 피해가기 어렵다. 지난해 대학을 졸업하고 현재 교정직 공무원으로 일하는 김아무개(29)씨는 서울 노량진에 있는 공무원 학원을 6개월 동안 다녔다. 공무원 시험과목인 한국사·국어·영어·행정법·헌법·경제학 등의 과목을 단과로 들었다. 과목당 수강료는 12만원. 학기 중에는 학교에서 온라인으로 강의를 듣고 방학 때는 학원에서 강의를 들었다. “동영상 강의는 반복해서 들을 수 있지만 집중이 잘 안 되잖아요. 학원에 직접 나가면 경쟁 분위기가 느껴져 자극이 되더라고요.”
고시나 방송사 준비 등 사교육이 ‘통과의례’로 인식되는 분야도 있다. 행정고시를 준비 중인 김아무개(25)씨는 방학 동안 경제학과 행정법을 서울 신림동 고시학원에서 수강했다. 두 달 동안의 학원비는 56만원. 고시생들은 보통 학기 중에는 학교 수업을 들으면서 학원의 온라인 강의를 듣고, 방학 중에는 직접 신림동 학원가를 찾는다. “절에 들어가서 공부한다는 건 옛말이죠.
학원 강의는 짧은 시간 안에 방대한 분량을 압축적으로 강의하기 때문에 필수 코스가 돼버렸습니다.” 국가고시의 경우 일부 대학에서는 학원가의 유명 강사를 초빙해 학생들이 학원의 10~30% 정도의 수강료만 내고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한다. 수강료도 줄어드는데다 학원을 오가는 시간과 교통비가 절약되기 때문에 고시 준비생들은 이를 반긴다.
방송사 아나운서 지망생인 백아무개(22)씨는 스피치 아카데미를 3개월 동안 다녔다. 3개월 수강료가 120만원. 스피치 아카데미는 아나운서와 방송기자 지망생들이 찾는다. “대학에서는 이론 중심이어서 실무적인 부분은 약하죠. 목마른 사람이 우물 파야하는 것 아니겠어요.”
입시 사교육의 주요 공급자인 대학생들은 입시 사교육 시장을 확대하는 구실을 하고 있다. 지금은 방송 관련 일을 하고 있는 류아무개(30)씨. 학부생 때 강사 일을 했다. 군복무를 마치고 복학하기 전 5개월 동안 입시학원 단과반에서 영어를, 종합반에서 영어와 국어를 가르쳤다. 단과반에서는 학생 한 명의 수강료를 학원과 강사가 반반으로 나눴다. 월 소득은 350만원이었다. 종합반에서는 월급으로 200만원을 받았다. 류씨가 제대한 해인 2000년 즈음에 인터넷 과외 사이트들이 활성화됐다. 알음알음으로 이뤄지던 과외가 대규모 중개망을 갖게 되자, 공급이 늘어 과외비가 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러자 류씨가 다니던 학교의 생활정보 공유 사이트에 “과외비 얼마 이하는 받지 맙시다”라는 제안이 올라왔다. 류씨는 “실제 담합이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가려운 데를 긁어준 것처럼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대학생들로서는 과외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줄어드는 부작용이었지만, 수요자인 중·고등학생과 학부모들은 싼 비용에 대학생 과외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난 셈이다.
학사관리 엄격하게 하면 크게 반발
한국은행이 작성한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통계에서 사교육비는 8조원으로 계산돼 있다. 2006년 정부 예산(202조원)의 3.96%에 이르는 규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통계를 보면 2002년 기준 한국의 사교육비 지출은 GDP 대비 2.9%로 OECD 평균(0.7%)의 네 배를 웃돈다.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사교육비 지출 1위다.
대학생의 취업 사교육은 대학 교육의 공동화를 부른다. 경상대 정진상 교수(사회학)는 “학생들이 학교 수업보다 학원 수업에 열중하는 경향이 강하다”며 “이는 학생들이 취업을 더욱 중요한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의 ‘대학생 사교육비 지출 현황과 사교육 학습 비율’이라는 조사 결과를 보면, 2006년 대학생들이 연평균 188만원의 사교육비를 지출하고, 55%가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표 참조).
대학생 수는 꾸준히 증가하는 데 반해 20대 취업자 수는 1997년 경제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것도 대학생들이 취업 사교육에 매달리는 이유다. 종업원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체 종사자 수도 2004년에 1997년의 80%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일자리는 부족한데,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대학생들의 수만 늘어난 것. 불이 났는데 출구가 막히자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려는 상황이 연상되는 모양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03년 펴낸 ‘청년층 노동시장 분석’ 연구보고서는 청년 취업난의 원인에 대해 “경제위기 이후 청년 일자리의 지속적인 감소, 기업의 경력 중시형 노동력 수요로의 변화 그리고 청년층이 전통적으로 선호하는 대기업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 ‘건널 수밖에 없는 다리’라 해도 ‘대학교육 공동화’란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대학이 졸업장을 따기 위한 곳으로 전락하고 있다. 중등과정의 사교육, 취업 사교육 두 가지 문제 모두에서 핵심은 대입이다. 대학이 서열 체제로 돼 있어 정점을 향한 경쟁이 치열하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대학에 들어왔기 때문에 학사관리를 엄격하게 하면 학생들이 크게 반발한다. 그러니 기업이 대학을 신뢰하지 못해, 공인 영어점수를 중시하고 별도의 입사시험을 치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취업 사교육이 양산된다.
정진상 교수는 “중등 공교육은 대학입시 때문에, 대학은 취업 문제 때문에 각각의 학교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며 “근본적으로 대입은 자격시험만 보는 유럽식 개방입학 체제로 가야 하고, 취업에서는 기업이 영어점수를 중시하며 별도의 시험을 보기보다 대학시절의 성적과 활동 내용을 중요하게 반영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라고 말했다. 대입의 문턱을 낮추고 엄격한 학사관리를 통해 대학 내에서 경쟁을 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공공 영역 일자리 창출을
강내희 중앙대 영문과 교수(문화연대 공동대표)는 “현재 한국 사회의 인재교육은 대학교육 중심이 아니라 시장의 요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며 “대학생들이 부당하게 경쟁에 내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대학생들이 사교육 시장 문을 두드리는 것은 섶을 안고 불로 뛰어들 순 없으니 준비를 위해 개인적인 자구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는 경쟁의 심화만 낳을 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강 교수는 공공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기른 능력을 발휘해서 충분히 생활이 가능한 구조로 변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공공 영역에서 일자리가 획기적으로 창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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