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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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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비가 너무 재미있다”

등록 2006-09-08 00:00 수정 2020-05-02 04:24

오리건주정부 주한대표부 대표로 일하는 ‘미국 로비스트’ 김진원씨…“브로커 행태와 구별되는 정상적 로비활동 법제화해야 게이트 해결”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근래 가장 억울한 용어는 ‘로비’(Lobby)입니다.” 김진원(58)씨는 하소연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연일 ‘바다이야기’와 관련된 보도는 온갖 것에 ‘로비 의혹’이란 제목을 달아 성인오락실의 문제점을 전파하고 있었다. 로비란 단어로 거의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무슨 ‘게이트’라는 것이 터질 때마다 있은 일이다. 대한민국에서 로비란 태생적으로 부정적인 단어다.

반평생 넘게 로비스트 한길

김씨의 직함은 미국 오리건주 정부 주한대표부 대표다. 그는 스스로를 미국에서 말하는 ‘로비스트’라고 본다. 또 로비 법제화의 전도사다. 지난 8월30일 이승희 민주당 의원이 주최한 ‘로비스트에 도전하라!’라는 토론회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지난해 란 책을 펴냈다. 책은 로비와 로비스트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바른 이해와 인식을 갖도록 돕자는 뜻에서 기획한 것이다. 그는 현재 충남도지사 국제 자문역을 맡고 있으면서 중부대에서 국제통상학을 강의한다.

로비의 이미지를 먹칠하는 바다이야기와 같은 게이트가 계속 터질수록 로비 법제화에 대한 그의 신념은 더욱 굳어졌다. “로비가 법제화됐다면 바다이야기 같은 경우 해당 로비스트 한 명을 붙잡으면 고구마 줄기처럼 다 딸려나올 거다. 로비스트가 어떤 의원과 공무원을 언제 만났고 뭘 줬는지 다 공개가 된다. 만약에 공개하지 않았다면 그것을 문제 삼아 처벌할 수 있다. 그전에 로비스트라면 안 되는 일을 부탁받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로비 법제화가 만병통치약이 아니고 불법과 비리는 언제든 예상할 수 있는 일이어서 김 대표의 주장에 100% 동의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로비 법제화의 필요성을 얘기하는 많은 전문가들이 김 대표와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 김 대표는 “정상적인 로비 활동을 아예 금지하고 있는 현실이 되레 뇌물이 오가는 등 음성 로비를 조장하고 키우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말했다.

그는 로비를 인간의 아주 자연스러운 행위의 하나로 봤다. 그는 “사람은 누구나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일에는 적극적이고 해로운 일은 피하려고 한다. 이것은 자연스럽고 당연히 살아가는 한 행위인데 이것이 바로 로비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로비스트이고 로비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반평생을 넘게 로비를 해왔다.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았다. 다행히 당시 국제 관계 및 통상 쪽 일을 하는 상사를 만나 개인적으로 도와주면서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미국으로 옮겨 전공을 살려 짧게나마 1년 반 동안 공부를 이어갔다. 경제학 박사 학위도 땄다. 기회는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고 했던가. 그는 아는 사람의 소개로 메인주 포틀랜드시와 알래스카주 밸디즈시의 ‘컨설턴트’로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참고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로비스트’란 말 대신에 컨설턴트를 쓴다. 이때부터 그는 로비에 관심을 갖게 됐고 공부를 해왔다. 그리고 1987년부터 오리건주 정부의 이익을 위해 국내에서 활동해왔다. 투자 유치와 무역 알선이 주로 하는 일이다. 그는 대한민국에서 오리건주를 제일 잘 알고 오리건주에서 대한민국을 제일 잘 아는 전문가라고 자부한다. 그런 전문성이 뒷받침됐기 때문에 주정부도 오랫동안 그를 버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그는 미국 편만 들고 미국만을 위해서 일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한국을 오리건주 제2교역국으로 키우다

그가 성공시킨 가장 큰 로비는 1997년 하이닉스(옛 현대전자) 공장을 오리건주에 유치한 일이다. 미국의 8개 주가 덤벼들 만큼 경쟁이 치열했다. 하이닉스는 13억달러(1조3천억원)에 달하는 D램 반도체 공장을 오리건주에 지었다. 주에서 해외 직접투자로는 역대 가장 큰 규모였다. 공로를 인정받아 ‘한국에 있는 오리건의 야전사령관’이란 별칭과 별이 달린 헬멧을 주정부로부터 받기도 했다. 대한민국은 오리건주의 두 번째로 큰 교역 상대국이다. 현재 워싱턴주 등 미국의 주정부 12~15곳이 우리나라에 사무실을 내고 주정부의 이익을 관철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다.

오리건주는 일본과 중국, 대만 등지에 우리나라와 같은 무역대표부를 두고 있지만 김 대표만큼 오랫동안 활동한 인물은 없다. 그는 오리건주에서 ‘대사’로도 불리지만, 자신을 미국의 공무원이라기보다 현지 채용인이라고 말한다. 그는 20년 동안 주정부로부터 일정 금액의 보수를 받을 뿐, 성과급을 받은 적이 없다. 이 지점에서 로비스트와 이른바 ‘브로커’의 경계선이 존재한다. 그는 “로비스트는 정해진 돈을 실패나 성공에 상관없이 받는다. 그러나 브로커는 실패하면 못 받고 성공하면 성과급을 받는다. 돼야 할 일을 되게 하고 안 될 일은 안 하는 게 로비스트다. 1%의 가능성이라도 있으면 면밀히 분석하고 계획해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로비이지만 설령 99%의 가능성이 있더라도 돼서는 안 되는 일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로비”라고 말했다. 문제가 될 일은 로비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찰·검찰·법원에 걸려 있는 사건 해결을 청탁받는 것은 로비라고 할 수 없다. 그는 각종 이권을 따내기 위해 ‘커미션’을 받고 일하는 사람들도 엄밀한 의미에서 로비스트로 보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의회 등에 의뢰인의 정치적 입장을 대변해주고 로비스트가 받는 수임료는 시간당 415달러이며, 2년 동안 계약할 땐 매월 약 2만달러를 받는다고 한다. 보통 1급 변호사들과 비슷한 금액이다. 발이 넓은 로비스트는 연봉이 30만달러에 달하며, 전직 의원이나 고위 관료 출신은 200만달러 이상을 받기도 한다. 어쨌든 윤리위원회에 보고된 공개된 금액 이외에는 받지 못하는 것이 원칙이다. 미국에서는 2005년 6월 말 현재 3만4750명의 로비스트가 등록돼 있다. 이들 중 약 60%는 로비를 전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대부분 변호사, 협회의 간부 등 다른 직종에 종사한다. 예를 들어 콜로라도주에는 약 500명의 로비스트가 등록돼 있지만 이 가운데 100여 명만 주의회 소집 기간에 나와 활동한다. 그도 미국에서 활동한다면 로비스트로 등록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지방자치단체들도 중앙정치 무대인 워싱턴에 로비스트를 고용하고 있다. 그는 로비스트로서 갖춰야 할 것이 평판과 신뢰, 정보 제공 등 크게 세 가지라고 말했다.

‘선샤인 로비’를 위하여

그가 로비 만능주의자는 아니다. 그는 로비 법제화가 시대적 요구라고 보면서도 “엄격한 규제와 제도적 장치, 그리고 투명한 정책 결정 과정이 따라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바라는 것은 투명한 로비(또는 ‘선샤인 로비’)일 뿐이다. 그는 지금 일이 너무 재미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다. 그래서 정치권의 유혹이나 사업을 같이 하자는 주위의 제안에도 흔들림 없이 외길을 걸어왔다. 그는 “로비를 제도화하자는 곳에서 부른다면 어디든 가서 얘기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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