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출판사의 책 출간을 통해 돌아본 장기수 출신 통일운동가의 열정…연대조직 찾으려 북쪽 방문한 뒤 10년, 사상범 탄압 고발하려다 10년 감옥살이
▣ 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뜨거운 열정이 사라지고 없는 시대, 우리에게 ‘통일’이란 영원히 이뤄지지 않을지도 모를 도덕책 속 당위이거나, 좀처럼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은하계 밖 초신성의 폭발처럼 생경하게 느껴진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여론조사기관 (주)메트릭스에 맡겨 2006년 5월 조사한 ‘2006년도 대학생 통일의식조사’를 보면 응답자 1031명 가운데 84.9%가 “통일은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이른 시일 내에 이뤄져야 한다”는 응답은 14.3%에 불과했다.
“공안이 평양 다녀온걸 알았다면…”
장기수 출신 통일운동가 최선웅(64)씨는 젊은 초심을 잃지 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2003년 6월9일 조선평양민족출판사에서 남쪽 출판사 ‘책만드는공장’ 쪽으로 한 통의 팩스를 보내왔다. 팩스에는 그동안 최씨가 쓴 세 권을 평양에서 정식 출판하고 싶다는 뜻이 적혀 있었다. “미안하지만 이 책 세 권의 출판을 위하여 양동훈 귀하(출판사 대표)와 최선웅 귀하 선생께서 저희들과 중국 북경 혹은 단동에서 만나 출판에 관한 상세한 면담을 하여주었으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이제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지워진 이름이 돼버렸지만, 최씨는 통일운동 과정에서 두 차례 21년 동안 옥고를 치른 장기수다.

1942년생인 그는 통일운동에 한 몸을 투신할 것을 결심한 뒤 동아대학교 정치학과를 1학년 때 중퇴하고, ‘사회민주주의 통일청년연합’이라는 결사체를 조직해 대표가 된다. 그 시절 최씨의 가장 큰 목표는 조국의 평화통일을 위해 운동을 함께할 북쪽의 연대 조직을 찾는 것이었다.
분단된 조국에서 남쪽의 젊은이가 북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일본 밀항을 통한 비밀 입국밖에 없었다. 그는 부산에서 일본 오사카로 밀항한 뒤, 도쿄에서 노동자 생활을 하다가 1967년 11월2일 청진을 통해 북으로 입국했다. 그는 평양에서 7개월 동안 머물며 김중린 당시 문화부 부장(현 통일전선부 부장)과 통일 문제에 대해 협의했다. 젊은 시절 그의 활동이 통일 논의가 진전되는 데 어떤 기여를 했는지는 알기 힘들지만, 민족을 위해 죽음까지도 불사했던 그의 의기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1960년대 공안당국의 그물망이 최씨를 그냥 지나쳤을 리 없다. 국내 활동을 위해 1968년 귀국한 그는 그해 12월19일 남산 중앙정보부 대공분실로 끌려갔다. 당시 공안당국은 일본에 머물다 돌아온 그의 행적을 의심했을 뿐, 그가 평양에까지 다녀왔다는 사실은 알지 못했다. 그는 조총련 간첩으로 국내에서 반국가 단체를 만들었다는 혐의로 기소됐고, 2심에서 반국가 단체 구성죄만 인정돼 징역 10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아마 평양에까지 다녀왔다는 사실이 알려졌다면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당시 장기수들이 집단 수용돼 있던 대전교도소 4사 상층 20방으로 배정됐고, 10년 10일이 지난 1978년 12월24일 만기 출소했다.
출판 제의 뒤 만 3년을 끌어
출소한 최씨를 맞은 것은 서울 흑석동 산 언덕 단칸 셋방에 버려진 가족이었다. 그는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했다. 사업을 시작할 밑천이 없었던 그는 계몽사의 아동도서 외판원이 됐다. 이대로는 죽을 수 없었던 그는 “사상범을 때려 죽이는 만행을 세계에 폭로”할 기회를 찾았다. 그가 가진 것은 펜과 종이였다. 그는 대전교도소 특별사 생활을 회고한 책을 일본에서 출판하려다 1986년 1월 다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됐다. 그가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1996년 12월이다. 그때 그가 쓰려던 책은 라는 이름을 달고 2000년 두리출판사를 통해 세상에 나왔고, 2003년 (책만드는공장)라는 제목으로 새로 나왔다. 책 속에는 엄혹했던 대전교도소 특별사의 생활과 그 안에서 같이 몸을 부대꼈던 양심수들의 면면이 날것 그대로 숨쉬고 있다.
북에서 출판 제의를 해왔지만, 우리 정부의 반응은 차가운 편이었다. 2003년 7월9일부터 열린 11차 남북 장관급 회담 때 남북은 방송·언론·출판 교류를 협의하기 위한 위원회 구성에 합의했지만, 최씨의 책 출판 허가는 거부됐다. 책에 욕심이 났던 민족출판사 쪽에서는 2004년 10월 다시 한 번 출판 제의를 해왔지만 다시 한 번 ‘불허’ 통보를 받았다. 통일부 쪽에서는 “국가정보원·대검찰청 공안2과·법무부 쪽에서 모두 반대 의견을 내 허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최씨는 지인을 통해 반대하는 국가기관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국정원 쪽에서는 “정부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하려 해 국내 문제는 더 이상 신경쓰지 않는다”, 검찰 쪽에서는 “우리는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없지만 결국 통일부에서 알아서 할 일”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통일부의 의지였다. 결국 통일부는 2005년 8월15일 이후에는 북한 사람과 접촉해도 되고, 12월 이후에는 평양을 방문해도 좋다고 한발 물러섰다. 책 출판의 길이 열린 것이다.
만 3년을 끌어온 책 출판 문제는 2006년 8월14일 베이징에서 마무리됐다. 애초 책을 출판하려던 민족출판사는 남쪽 정부의 잇단 ‘불허’ 통보에 책 출판을 포기했다. 새로 나선 곳은 2005년 봄 의향서를 보내온 평양출판사였다. 최씨는 앞서 민족출판사가 출판 제의를 했던 책 세 권과 시집 를 합쳐 네 권을 출판하기로 정식 계약을 맺었다. 북쪽에서는 그의 책을 권당 3만 부씩 찍어낼 예정이다.
그의 꿈을 가로막은 건 누구인가
최씨는 “지금부터라도 다 같이 뜻과 힘을 합쳐 사랑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통일을 꿈꾸며 북으로 향했던 20대 청년의 현실 인식은 40년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세계평화 증진으로 점차 확장돼왔다. 그 꿈을 가로막는 것은 누구일까. 그의 시 ‘떠날 때가 지났네’(미발표) 속에 해답이 실려 있다. “요새는 이웃의 불평도 못 들은 척/ 매일 밤 시끄러운 음악을 틀어놓고/ 병나발을 불며 술을 마시던 그가/ 혀 꼬부라진 소리로 온갖 추잡스러운 욕을 할 때/ 집은 너울너울 춤추며 타오르고// 잠시만 있다가면 될 것을/ 왜 이리 긴 세월 눌러앉았더란 말인가/ 좋은 말로 떠나달라고 했을 때/ 갔어야만 했던 거야/ 벌써 오래전에.” 긴 세월 한반도에 눌러앉아 이웃의 불평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병나발을 부는 국가는 어디인가. 미국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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