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조선시대 도화서 화원들은 국가의 크고 작은 행사 사진을 그렸어요. 국가기관에 종사한 직업 화가였던 셈이죠. 이들을 통해 궁화와 민화가 풍성해졌어요. 그런데 지금은 있는 궁화와 민화마저도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고 있지요.” 전통회화 모사(중모)화가 윤문자(56)씨는 베껴 그리는 ‘업’을 숙명으로 삼으면서도 널린 ‘일감’ 앞에서 한숨을 짓기 일쑤다. 정부 관계자들이 '문화강국'을 지향한다면서도 전통 회화를 보존하는 데는 한없이 인색하기 때문이다.
그런 정부의 무대책을 홀로 돌파하겠다고 나선 게 30년 전의 일이다. 그야말로 평범한 주부였던 그가 인사동에 있는 한 허름한 화랑 앞에 걸린 민화에 홀리고 말았다. 호랑이와 까치를 소재로 삼은 (虎鵲圖)라는 전통 회화였다. “울 듯, 웃을 듯한 호랑이에 마음을 빼앗겼어요. 곧바로 민화를 베껴 그리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혔어요. 아무런 자료도 없기에 박물관을 뻔질나게 드나들며 모사의 기초를 다졌어요.”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지만 문화재는 수명이 있게 마련이다. 대부분의 회화는 시간이 지나면 다양한 요인으로 훼손되기 일쑤다. 그것을 복원하는 것은 후대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도화서의 맥이 끊긴 상태에서 모사 전문가는 어디에도 없었다. 복원을 위해서라도 모사가 필요했다. 원형을 살리려다 작품을 망가뜨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모사의 기본을 세웠을 땐 또 다른 문제가 도사리고 있었다.
전통 회화 모사는 재료가 중요하다. 그런데 맥이 끊긴 탓에 국내엔 재료가 없다. 1g에 3만원 하는 금가루나 그보다 비싼 천연 석채 ‘군청’ 같은 재료를 일본에서 들여와야만 한다. 올해 모사를 끝낸 창덕궁 대조전 서쪽의 벽화 (群鶴圖)에는 군청 수백만원어치를 썼다. “어떤 이는 외화 낭비라고 하더군요. 기술과 인력을 육성하면 문화상품 구실을 할 수 있어요. 최근 들어 고궁 박물관이나 서울대 규장각 등지에서 관심을 가져줘 다행스러워요.”
사실 모사 작업은 엄청난 노동력에 그림과 글씨 등의 자질까지 필요로 한다. 서울대 규장각에 꼭꼭 숨어 있던 2권 2책(217쪽 분량)의 모사 작업은 꼬박 3년 걸렸다. 그는 등 전통 회화 모사 작품 53점을 선보이는 두 번째 전시를 7월14일까지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연다. “무형문화재 기능장에 응모하라는 권유를 받기도 해요. 그런데 심사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일단 문화재청 관계자가 모사 작품을 살펴보기라도 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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