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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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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규현] “하루만 쉬어도 서각이 그립습니다

등록 2006-06-09 00:00 수정 2020-05-02 04:24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곽윤섭 기자 kwak1027@hani.co.kr

한자한자 나무판에 정성스럽게 글씨를 새기는 서각가 조규현(46)씨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우와~ 신기하다. 아저씨 멋있어요.” 지나가는 꼬마들이 신기해하자, 조씨는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쓱 닦고 작은 친구들에게 씩 웃으며 다시 작업에 전념한다. 달마대사 조각, 성경 구절, ‘지란지교를 꿈꾸며’ 등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글귀가 새겨진 작품들이 눈에 띈다. 서울 시청역 덕수궁 돌담길이 그의 작업장이자 전시장이 된 지 어느덧 22년. 비가 와도 눈이 내려도 조규현씨는 작품활동을 쉴 줄 모른다. 비를 맞으며 밤을 새운 적도 있다.

“나에게 서각은 애인이자 소중한 벗입니다. 하루만 쉬어도 애인이 그리워지는걸요.” 그러나 서각을 만나기 전까지 그의 인생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10살 때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팔을 잃으면서 깊은 좌절감을 맛봐야 했다. 급기야 가출했고 신문팔이, 구두닦이, 트럭 운전수 등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고생했다. 성격이 점점 괴팍해지는 자신을 느낀 그는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1985년 서예를 배우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서예를 배우러 간 조씨는 엉뚱하게도 서예가 아닌 서각을 배우게 됐다.

“서예학원 원장이 서각하는 모습을 보고 첫눈에 반했죠. 그때부터 사부님께 1년 정도 배우고, 10년 정도 독학을 했어요.” 그러나 오른팔이 없는 조씨가 서각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잘리고 남아 있는 팔에 조각 망치를 붕대로 감아 붙이고 조각을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망치 끝이 연한 살을 파고들면서 피가 나 작업을 10분도 할 수 없었다. 지금은 굳은살이 박여 피는 나지 않지만, 여전히 일이 끝나면 팔이 퉁퉁 붓고 물집이 잡힌다. 육체적으로는 고통스러워도 조씨는 “서각을 할 때 제일 행복하다”고 말했다.

조규현씨는 “20년 동안 많은 작품을 만들었지만 손꼽을 수 있는 것은 3점뿐”이라고 말했다. 그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민생수복 국조애심’(民生受福 國祖愛心). 조씨가 지어낸 이 말의 뜻은 ‘백성으로 태어나 복을 받으면서 나라와 겨레를 위해 살자’로 그의 좌우명이다. 여기서 말하는 나라와 겨레는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국가’가 아닌, ‘사회적 약자’다. 그는 “가난하고 몸이 불편한 사람을 위해 살고 싶다”며 “좋은 작품을 만들어 국가에서 설립할 ‘장애인 복지대학’에 운영자금으로 기증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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