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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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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 바~람이 머물다간 평택에~

등록 2006-04-26 00:00 수정 2020-05-02 04:24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동요 <노을>의 고향은 이곳 평택의 너른 들이다. 노래에서처럼 평택의 들에는 서해에서 침범해온 바람이 자주 머물고, 저물 무렵 서쪽 하늘은 붉은 노을로 새빨갛게 타들어간다.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하고 허수아비와 초가지붕 위의 둥근 박은 이미 사라졌는데, 한-미 두 나라 정부는 그 드넓은 들판을 송두리째 미군 기지로 바꾸겠다고 농민들에게 으름장을 놓고 있다.
노래의 작사가인 이동진(61)씨는 “노랫말을 붙인 지 벌써 22년이 지났다”고 말했다. 그는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나 대구에서 자랐고, 평택 한광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때 나에게 배웠던 최현규라는 제자가 곡을 쓰고 내가 가사를 붙였죠.” 지금 노래 설명을 보면 작곡가가 다른 이름으로 나온다. “그때 참가한 대회 규정에 작곡가는 반드시 초등학교 교사여야 한다는 항목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아는 선생님 이름을 잠시 빌렸죠.” 최현규(46)씨는 "노래를 만들어 선생님을 찾아갔더니 좋은 노래말을 만들어 줬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에서 음악을 전공한 뒤 지금은 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평택은 아름다운 노을을 가진 고향이었다. “뛰어난 절경이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지만 자연환경이 잘 보전되고, 들판이 참 넓고 좋았거든요.” 그때도 평택 주민들은 미군부대가 들어오면 지역이 발전한다는 말을 믿지 않았다. 이씨는 “부대가 들어오면 미군 범죄가 끊이지 않고 주변 환경이 파괴된다”며 “이 들판마저 나중에 미군들에게 내주는 게 아니냐며 현규와 걱정했던 기억이 새롭다”고 말했다.

그는 업계에서는 이름난 동화 삽화가다. 지난해까지 몇몇 대학에 강의를 나갔지만 이제는 홍익대 앞에 작업실을 마련해두고 그림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동진체’라는 한글 글꼴을 만들었고, 그림책 <노랑나비 내 친구> 등 수십 권의 동화책에서 배경 그림을 그렸다. 이씨는 “뉴스에서 평택 주민들이 국방부를 상대로 몸싸움하는 모습을 보며 큰 슬픔을 느꼈다”고 말했다. “노을이 낀 다음날은 날씨가 맑쟎아요. 노래에서는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지만 노을 진 다음날 처럼 다음 세대가 맑고 밝게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담았습니다. 평택에서 그 노을을 다시 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서글프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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