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우리는 더 이상 뒷골목의 아이들이 아니다.” 비보이(B-boy) 김근서(29)씨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당당함이 느껴진다. 힙합 리듬에 빠져 거리에서 춤을 추기 시작한 지 11년.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으로 춤만 한 게 없었다. 그가 음악에 맞춰 다이내믹한 동작을 보여줄 때마다 터져나오는 환호에 몸고생을 잊을 수 있었다. 근육이 단련되고 묘기가 속출하면서 국내외 대회 수상자 목록에 빠짐없이 올랐다.
“그야말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날들이었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을 하는 팬들도 생겼다. 비보이를 장래성 있는 직업으로 여길 수 있었다.” 하지만 대회장 밖에서 비보이들의 자리는 초라하기만 했다. 국제적인 명성도 ‘백댄서’라는 선입견을 깨뜨리지 못한 것이다. 결정적 시기는 우연치 않게 찾아왔다. 배우 이근희씨가 예술감독을 맡아 비보이들을 무대의 주인공으로 내세우기로 한 것이다.
이미 <프리즈>라는 공연에 참가한 경험이 있는 그였다. 당시 공연은 스토리 없이 비보이들의 춤판에 그쳐 아쉬움이 많았다. 이번엔 비보이들의 동작에 ‘느낌’을 담기로 했다. 그렇게 만든 공연이 ‘SJ 비보이스’의 창작 넌버벌 퍼포먼스 <비보이를 사랑한 발레리나>다. 그는 고급문화를 상징하는 발레리나의 마음을 빼앗는 주인공으로 무대에 오른다. “문화예술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다는 자부심을 느낀다. 비보이들의 몸짓을 예술적 가치로 평가받고 싶다.”
<비보이를…>은 지난해 12월부터 세계 최초의 비보이 전용극장으로 개관한 ‘비보이 씨어터’에서 관객을 만난다. 90여 분에 걸친 공연 내내 박수와 환호를 보내는 관객은 유치원생부터 중년 신사까지 세대를 초월한다. 입소문을 타고 ‘한류 관광객’들도 공연장을 찾고 있다. 외국인들의 관심이 늘면서 아시아를 공략할 문화상품으로 육성될 조짐도 보인다. 비보이 한류스타를 예감케 하는 대목이다.
“백댄서가 아닌 아티스트로 대접받고 싶다. <비보이를…>은 완성본이 아니다. 오픈런으로 공연을 계속하면서 완성도를 더욱 높이려고 한다. 비보이들이 대한민국 대표상품을 만들 것이다.” 그는 비보이 대회 심사위원으로도 활동하며 방송과 CF 등에 출연하고 VJ로 모습을 드러내기도 했다. 먼 훗날 전문 직업인으로서 “아빠의 직업은 댄서라고 말하고 싶다”는 비보이. 그의 고공비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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