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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이리] 등축제와 대장금의 만남

등록 2006-02-24 00:00 수정 2020-05-03 04:24

▣ 청두=모종혁 한겨레 통신원 jhmo71@chinawestinfo.com


“중국 고대 의상에서부터 최신 유행하는 치파오(旗袍), 탕좡(唐裝)까지 모두 만들어봤지만 한국의 전통의상을 만드는 건 제게 또 다른 도전이었죠.” 등축제 의상 제작자 허이리(賀伊利·60)는 중국 쓰촨성(四川省) 쯔궁(自貢)에서 열린 2006년 쯔궁 국제공룡등축제에 낸 자신의 작품 ‘대장금’ 조형물 앞에서 떠날 줄 몰랐다. 그의 얼굴에는 만족감이 넘쳤다. “지난해 12월 말 쑹량시(宋良曦) 등축제 총설계사가 한국 전통의상을 10일 안에 제작해야 한다고 말을 처음 꺼냈을 때는 눈앞이 깜깜했어요. 28년 동안 중국, 일본, 서양의 전통의상을 만들어 왔지만 한국의 의상은 처음인데다가 쯔궁에는 관련 자료가 전무했거든요.” 드라마 <대장금>을 세 번이나 봤다는 허씨는 “드라마에서 받은 감동을 이번 한복 제작에 나타내고자 혼신을 다했다”며 활짝 웃었다.

1월21일부터 2월21일까지 벌어지는 쯔궁 국제공룡등축제는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역사가 오래된 등축제 행사다. 기원전 2세기에 시작된 등축제는 중국의 민속축제로 8세기에 이르러 매년 춘절마다 치러졌다. 도시와 농촌 곳곳을 등의 물결로 수놓던 등축제는 공산당 집권 이후 고상한 전통놀이로 몰려 명맥이 끊겼다. 이를 1962년 작은 도시 쯔궁이 시 차원에서 행사를 대규모로 복원하면서, 오늘날 쯔궁은 중국 등축제의 메카로 성장했다. 1990년대 초 국제 행사로 확대된 쯔궁 등축제는 올해도 16개의 등 제작회사가 만든 106개의 화려한 등 조형물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1979년부터 등축제 의상 제작자로 참여해 수만벌의 의상을 제작한 허씨는 동서양의 신화, 민간설화, 종교를 아우르며 시대와 인물을 소화해낸 축제의 산증인이다. 허씨는 “지금까지 12명의 제자를 길러냈지만 처음 시도하는 의상은 디자인과 옷감 선별부터 마무리 바느질까지 내 손으로 해야 직성이 풀란다"고 말한다. 이번에도 한복 제작을 위해 청두의 쓰촨성 도서관에서 한국 의상서적을 뒤적이고 항저우에서 최고의 비단 원단을 주문해 며칠 밤을 새워 만들었다. 13살 때 병든 쌍둥이 동생을 돌보기 위해 잡기(雜技)공연단에 들어가 10여 년 동안 활동한 허씨는 오랫동안 꿈꿔온 의상 디자이너가 되고자 서른 살 경부터 등축제 의상 제작을 배우기 시작했다. “70년대 말, 등축제 행사는 일관된 제작 프로그램이 없이 정부 주문 의상만 제작하는 데 급급했다”고 회고한 허씨는 자신이 “개혁개방 이후 지식인과 전문가를 우대하는 정책 아래에서 배출된 첫 번째 등축제 전문가 세대”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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