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순종과 성 개방의 여신?

등록 2005-11-23 00:00 수정 2020-05-02 04:24

재일 조선인 만화가가 말하는 한국인의 일본 여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
남녀 평등과 옷차림을 중시하는 그녀들은 한국 남자에 어떤 동경을 가질까

한-일 간의 문화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서로에 대한 궁금증도 더해간다. 그러나 일본인, 특히 일본 여성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이해는 아직도 편견에 갇혀 있다. 한국에서 활동 중인 재일 조선인 2세 만화가가 일본 여성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관한 글을 보내왔다. / 편집자

▣ 정구미/ 만화가·재일 조선인 2세

한국에서 대학을 다닌 지 2년 정도 됐을 때, 한 남학생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일본 여자들은 <오! 나의 여신님> 만화에서 나오는 베르단디같이 생겼나요?’ 베르단디는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누구든지 상냥하게 대하는 아름다운 여신 캐릭터입니다. 무슨 캐릭터인지 몰랐던 저는 설명을 듣고 놀랐습니다. “아니, 그런 여자가 있으면 내가 사귀고 싶다!”

야마토 나데시코의 정신

한국에 알려져 있는 젊은 일본 여성의 이미지는 크게 나누어서 ‘순종적인 이미지’와 ‘성 개방적인 이미지’인 것 같습니다. 대부분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고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은데 모든 일본 여성이 그렇다면 겸손하고 배려심이 있는 ‘욘사마’가 일본에서 대박나기 힘들 것입니다.

일본 여자에 대한 편견은 한국 남성들이 가지고 있는 이상형이 영향을 주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일본 여성이 한국 남성에 가지고 있는 편견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 여성을 이해하려면 한 가지 단어의 뜻을 새겨봐야 합니다. 과거 일본에서는 인내심이 강하고 남자를 세우는 여성을 여자답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50, 60대인 일본 여성들은 그런 정신을 가진 사람이 많습니다. ‘야마토 나데시코’라는 단어가 있는데 ‘야마토’는 일본을 나타내고 ‘나데시코’는 패랭이꽃입니다. 청초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성을 가리킵니다. 여성들은 이 정신을 지키려고 노력해왔는데 요새 들어 젊은 사람들은 이 단어를 다른 개념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것은 ‘아름다운 나를 위한 미용관리 정신’입니다.

현대 일본 사회에서는 남녀평등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여성이 꼭 가정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이 약해지고, 결혼을 하더라도 제한은 있지만 자신에게 돈이나 시간을 투자하는 사람이 많아졌습니다. 또 남자들도 여자를 이끌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기 때문에 서로 편하게 지내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가끔 젊은 여성들에게 불만이 되기도 합니다. 나를 평등한 관점으로 보는 것은 좋다, 하지만 지켜야 하는 부분에서는 남자가 지켜주면 안 될까.

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다! 일본에서 이렇게 말해주는 남자를 찾기는 일반 사람이 산삼을 발견하는 것만큼 어렵습니다. 물론 진짜로 여자 때문에 죽으면 안 되죠. 여성들도 그것을 원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한마디라도 진심으로 말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기에 한국 남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한국 남자는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하는데다 군대에 가서 훈련도 받기 때문에 정신력이 강할 것 같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니 여성들을 에스코트하는 것도 잘한다. 무엇보다 언제나 나를 지켜줄 것 같다….” 이런 생각을 일본 여성들이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면서 사람들이 외국을 인식할 때 ‘이상형’이 크게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깨닫고 깜짝 놀랐습니다.

일본 여성의 옷차림에 대해서도 편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의 젊은 여자는 옷차림으로 사람의 성격을 구분할 때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옷을 얼마나 멋지게 입는가에 관심이 많습니다. 제 친구 중에는 모델 활동을 하는 이가 있는데 옷차림이 항상 섹시합니다. 그래서 보기에는 위험한 향기가 나는 ‘누님’ 같지만 성격은 오히려 현실적이고 성실합니다. 가끔 깔끔한 옷차림을 할 때도 있는데 순수한 나를 표현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렇게 또 다른 나를 즐길 때가 있습니다. 사람에게 좋은 평가를 받고, 자신의 가치를 찾으려고 합니다. 이 부분은 기술을 중요시하는 국민성과 관련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유행을 따르느냐 아니냐에 따라 사람들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일본에서 치마를 짧게 입은 고등학생들도 이유는 비슷합니다. 남자를 유혹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교복이지만 다리를 길게 보여줄 수 있는 옷차림을 동경하기 때문입니다. 굵은 다리를 감쌀 수 있는 루즈 삭스도 필수죠. 이것이 오히려 굵은 다리를 강조한다는 말도 있었는데 이미 스타일이 고정됐기 때문에 지금도 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면 일본 여성들은 점점 자신에게 신경을 쓰기 시작합니다. 사회와 나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가족보다는 남들을 강하게 의식하죠. 어떤 사람은 대학 진학을 위해 공부에 집중하고, 놀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놀기도 합니다. 그중에는 원조교제도 포함되죠. 젊음은 금방 가니까 ‘놀 때 놀아야지’라는 정신을 투철하게 지키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일부 사람들입니다.

성문화의 개방성도 한국에서 과장돼 있습니다. 일본 여자는 성에 대해 개방적이라고 한국인들은 말하지만 이것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역시 보수적인 시대를 살아온 50, 60대 사람은 숨기려 하고 그런 가정에서 자란 젊은이들도 대부분 보수적입니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성관계를 커뮤니케이션의 일부로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쪽에서 이끄는 게 아니라 남녀 간 평등한 위치에서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상업적 이익을 위해서 여성의 노출이 심한 광고나 프로그램 때문에 부정적인 이미지는 있지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일본에서도 쓴소리가 많습니다. 하지만 한번 개방한 것은 주워담기가 힘든 것 같습니다.

일본엔 없는 것을 한국은 갖고 있나

그러던 중 한국 드라마가 나타났는데 마음이 따뜻해지는 소박한 생활 이야기, 정이 있는 인간관계의 이야기를 보고 사람들이 감동했습니다. 현대 일본 사회는 많이 발전했고 사생활 보호도 중요시해서 살기는 좋아졌지만 이웃의 정이나 가족관계 등 잃은 것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일본에 없는 것을 갖고 있는 한국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런 이유로 한류 열풍이 크게 일어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가까이에 살고 있지만 실은 잘 모르는 것도 많습니다. 하지만 이해를 하고 서로 부족한 것들을 채우면 앞으로 큰 일들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