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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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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교부 1급, 조합을 말아 드시다

등록 2005-10-27 00:00 수정 2020-05-02 04:24

대한설비건설공제노동조합 윤성연 위원장이 말하는 심각한 낙하산 실태
55개 산하기관에 그물처럼 스며든 건교부 퇴직자들은 무슨 일을 하나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윤성연(40)씨는 대한설비건설공제노동조합(이하 설비공제) 위원장이다. 그는 “건교부 산하기관의 낙하산 폐해가 ‘건설오적’ <한겨레21> 10월18일치 표지기사 에 나온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그가 몸담은 설비공제의 역사는 건교부의 낙하산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비공제는 1963년 처음 생긴 건설공제조합을 모체로 태어났다. 건설공제조합은 회원인 건설사들로부터 돈을 모아 서로 보증을 서주는 일종의 보험 금융기관이다. 건설공제조합에서 1988년 전문건설공제조합이 분리·독립했고, 설비공제는 1996년에 전문건설공제조합에서 다시 떨어져나왔다. 윤 위원장은 “설립 초기부터 조합의 이사장은 건교부 1급 공무원들의 몫이 됐다”고 말했다.

“이사장 맘이 콩밭에 있으니…”

설비공제의 초대 이사장은 박원석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이었다. 설비공제가 처음 만들어질 때, 이사장에서 말단 직원까지 45%가 건교부 출신 직원들로 채워졌다. 박 이사장은 설비공제 임기가 끝난 뒤 감정평가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를 이은 2대 이사장은 정임천 전 건교부 수송정책실장. 그도 3년 임기를 꽉 채운 뒤 버스운송사업공제조합으로 떠났다. 지금 이사장은 그 뒤를 이은 이찬재 중앙토지수용위원회 상임위원으로 2002년 3월1일부터 4년째 장기 집권 중이다. 윤 위원장은 “조직의 장이 지금의 자리를 보전하거나, 더 좋은 자리로 옮기기 위해 마음이 콩밭에 있는데 직원들이 일할 맛이 나겠냐”고 말했다.

“건교부 관리관들은 조직을 발전시키기 위한 경영 마인드가 없습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이런 예가 있어요. 강남구청 앞에 있는 7층짜리 건물이 조합 소유거든요. 현재 조합이 4~5층을 쓰고, 업계 이익단체인 대한설비건설협회가 6~7층을 씁니다. 시세로 친다면 평당 임대료를 400만~500만원은 받아야 하는데, 200만원밖에 안 받아요.” 결국 설비공제는 임대료 소득을 적게 신고했다고 강남세무서에 적발돼 수천만원을 추징당했다.

감사에까지 시선을 옮기면 사태는 더 심각하다. 윤여립 전임 감사는 민주당 당료 출신으로 국일중기의 대표이사와 아태재단 중앙회원을 지냈다. 윤 위원장은 “이희호 여사의 친척이 된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감사로 부임해 별달리 하는 일 없이 곱게 떠나 직원들 입장에서는 그저 ‘감사’했다고 한다. 지금 감사인 안태환씨는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4년 후배이자, 사돈의 친척으로 알려졌다. 윤 위원장은 “현재 국적이 캐나다인이고 집도 캐나다여서 자리를 비울 때가 많다”며 “지난해에는 석 달 동안 자리를 비운 적도 있다”고 말했다.

낙하산은 단지 건설공제만의 문제일까. 건교부 혁신담당관실이 지난해 6월에 만든 ‘산하기관 임원 현황’을 보면, 55개 산하기관에 그물처럼 스며든 건교부 퇴직자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6월 현재 건교부 출신이 현직을 차지하고 있는 기관은 33곳, 임원 수는 46명이나 된다(표 참조).

건설업계로 들어간 건교부 출신 고위 퇴직자들은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에 민간위원으로 참여해 업계나 특정업체의 이익을 대변한다. 김헌동 경실련 아파트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이들은 협회 등 이익단체로 들어가 업계의 정책이나 제도 건의안을 정부에 전달하고 업계 사람을 후배 공무원에게 연결시켜준다”고 말했다. 상하관계가 뚜렷한 한국 사회에서 자신이 사무관일 때 과장으로, 과장일 때 국장으로 모시던 선배가 밥 한 끼 먹자는데 거절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난 2001년 7월18일 개정된 택지개발촉진법 시행령은 업계 이익에 맞춰 법이 바뀐 상징적인 예로 꼽힌다. 건교부는 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수의계약을 인정하는 기준 시점을 택지개발예정지구 공람공고일 1년 이전에서 예정지구 지정일 현재 소유권 이전 계약을 맺은 상태로 완화했다. 공람공고가 났다는 정보를 듣고 업체가 땅을 사들여도, 땅을 수의계약으로 넘겨받을 수 있게 만든 셈이다. 경실련이 10월12일 발표한 분석자료를 보면, 이 조처로 2000년에서 2004년 초까지 수도권에서 공급된 공공택지의 57%가 수의계약으로 공급돼 업체들이 3조6519억원의 폭리를 취한 것으로 확인된다.

공직자윤리법은 어디로 갔나

당시 업무의 실무를 총책임졌던 사람은 최재덕 주택국장으로 그는 건교부 차관을 거쳐 현재 건설산업연구원장으로 재직 중이다. 건설산업연구원은 업계 제일의 이익단체인 대한건설협회의 산하기관이다. 김성달 경실련 시민감시국 간사는 “건설업계들이 모여 자신들의 이해에 맞는 연구결과를 내놓는 업계 연구기관이라고 보면 맞다”고 말했다. 연구원이 지난해 10월 발표한 ‘아파트 분양가격의 상승 원인과 가격 결정구조 분석’에서 “분양원가 공개는 주택가격의 불안정성을 지속시킬 가능성이 높고 주택 공급 감소를 초래해 주택가격을 상승시키는 역효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결론을 냈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는 취업제한제도가 규정돼 있지만, 대부분 사문화된 상태다. 재취업 이후 활동에 대한 검증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공직자윤리법은 4급 이상 고급공무원에 대해 퇴직한 날로부터 2년 동안은 퇴직 전에 3년 동안 근무한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리 사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도록 하고 있지만, 법이 적용되는 예는 극히 드물다.

건교부 출신 산하기관 임원 현황

대한주택공사 서영 감사 부산항공청장

한국도로공사 손학래 사장 철도청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조우현 사장 차관

유석종 건설본부장 공항시설과장

한국공항공사 성시철 관리본부장 교통부 장관 비서관

교통안전공단 김종희 이사장 수송정책실장

부산교통공단 이향열 이사장 차관보

한국철도시설공단 정종환 이사장 철도청장

정수일 부이사장 수송정책실장

류직형 비상임이사 기획관리실장

한국시설안전기술공단 박영일 감사 한강홍수통제소장

한국감정원 이상욱 이사 부산지방국토관리청 진영국도유지소장

대한주택보증 권오창 사장 기획관리실장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 강윤모 이사장 차관

대한건설협회 남동익 부회장 광역교통기획단장

허기석 기술본부장 익산청 하천계획과장

대한전문건설협회 이은식 상임부회장

정한규 산업정책본부장 건설경제과 서기관

윤수일 산업지원본부장 건설교통부 정보화담당관실

대한설비건설협회 홍창기 부회장 이리지방 국토관리국장

대한건축사협회 윤준섭 상근부회장 도시건축심의관

한국감정평가협회 이평호 부회장 건교부 부이사관

한국주택협회 김종철 부회장 원주지방국토관리청장

대한주택건설협회 민태정 부회장 국립지리원장

김홍배 이사 주택정책과 서기관

한국건설기술인협회 황호근 감사 중토위 사무국장

강세인 이사

임한진 이사 행정관리담당관실

한국건설감리협회 김영복 부회장 국토정책과

한국건설기계정비협회 김영훈 전무이사 비상계획관

대한선설기계매매협회 최종필 이사 건교부 서기관

건설공제조합 박동화 이사장 차관보

허재준 전무이사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전문건설공제조합 박찬범 전무이사 감사담당관

대한설비건설공제조합 이찬재 이사장 중토위 상임위원

김용도 기획이사 국립지리원 서기관

정태봉 관리이사 도로건설과 서기관

전국자동차매매사업조합연합회 김인기 전무이사 중앙해심행정실장

전국고속버스운송사업조합 김석균 이사장 육상교통국장

한국항공진흥협회 이상일 기술본부장 항공국 운항과장

전국화물자동차운송사업자공제조합 김대중 이사장 연수원장

전국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공제조합 정임천 이사장 수송정책실장

국전세버스운송사업조합연합회공제조합 박천용 이사장 도시철도과장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공제조합 김병운 이사장 건교부물류심의관

김형휘 상무이사 제주공항관리소장

전국개인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공제조합 허영선 이사장 서울지방항공청 관리국장

* 자료; 건설교통부 혁신담당관실



건교부의 ‘소박한’ 항의

‘건설오적’ 기사 중 뇌물 혐의자 수에만 항의 전화, 낙하산 인사나 택촉법에는 침묵

지난 10월18일치(제580호) <한겨레21> 표지기사 ‘건설오적’을 내보낸 뒤 건설교통부에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건교부는 1995년부터 지난 3월까지 건교부에서 퇴직한 3급 이상 고위 공무원(177명)의 재취업 현황 분석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기사에는 “177명 가운데 6명이 업계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불명예 퇴진했다”고 적었는데, “6명 가운데 2명은 대법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것이다.
건교부 관계자는 퇴직한 고위 공직자들이 산하단체에 내려가 업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로비스트로 활동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택지개발촉진법을 제멋대로 바꿔 공공택지를 건설업자의 돈벌이 수단으로 변질시켰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참여정부 출범 이후 강남의 아파트 평당 가격이 43% 올랐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별다른 의견을 밝히지 않았다. 전화를 걸어온 관계자는 “그런 부분은 내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문제는 건교부 관계자들이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 부분에서 발생한다. 정말 무서운 것은 그들이 저지르는 실수나 비리가 아니다. 그것은 그들의 침묵이다. 건교부는 지난 5월 판교개발 이익의 정확한 규모를 묻는 경실련의 진지한 공개 질의에 대해 2쪽짜리(표지 포함 3쪽) 답변서를 보내왔다. 건교부는 문서에 “지금 단계에서 정확한 개발이익을 논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적었다. 시민사회의 문제제기에 애써 등을 돌려 그들이 지키려는 것은 누구의 이익일까. 건교부의 이익일까, 국민들의 이익일까. 김성달 경실련 시민감시국 간사는 “주택정책을 담당하는 외국의 비슷한 기관과 비교 분석을 벌여, 건교부 개혁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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