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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레미 밀그롬] 팔레스타인을 사랑한 랍비

등록 2005-09-02 00:00 수정 2020-05-03 04:24

▣ 예루살렘=글·사진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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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자지구에서의 철수는 대환영입니다. 서안지구에서도 가능하면 빨리 철수해야 합니다.”

그의 말은 마치 팔레스타인 성직자를 만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하지만 그는 유대인 중에서도 유대인인 ‘랍비’다. 다른 랍비완 달리 평상복 차림에 수염도 기르지 않는다. 이 현대적인 랍비는 차라리 60~70년대의 히피를 연상시킨다. 수십년 동안 채식주의자로 생활하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평화를 위해 헌신해왔다.

랍비 제레미 밀그롬(53)은 15살이 되던 해인 1967년,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건너왔다. 유대교에 심취한 그는 예루살렘의 유대교 신학교를 거쳐 유대교 지도자인 랍비로서 삶을 살아왔다. 이스라엘군에도 입대해 7년 동안 무수한 전투를 경험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면서 마음 속에서는 평화에 대한 갈망이 싹텄고 군에서 제대한 뒤 본격적으로 팔레스타인과의 연대를 모색하며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일에 나섰다. ‘인권을 위한 랍비’라는 단체도 그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그는 10년째 일주일에 한두번씩 옷가지와 장난감을 챙겨 서안지역으로 향한다. 그가 가는 곳은 아무 것도 없이 살아가는 ‘사막의 방랑자’ 베두인족 마을이다. 팔레스타인 곳곳에 살고 있지만 팔레스타인도 유대인도 아닌 그들은 잊혀진 존재들이다. 제레미 랍비가 방문할 때마다 베두인 어린이들은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그는 거창한 구호와 시위보다는 이런 작은 실천에서 평화가 쌓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는 3년 전에 일어난 제2차 인티파다가 유대인 랍비들과 팔레스타인 성직자들간의 신뢰를 무너뜨렸다고 안타까워했다. 인티파다 기간 동안 군사적인 무력이 우위를 점해버렸기 때문에 양쪽간의 대화의 장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그의 노력도 순식간에 무너지는 듯했지만 “가자지구에서의 철수는 다시 그 가능성을 열어놓았다”고 했다. 수많은 차량들이 가자 철수에 반대한다는 것을 나타내는 오렌지색 깃발을 휘날리며 질주하는 예루살렘 거리에서 수심에 찬 표정으로 시대를 아파하는 그의 모습에서 시대의 성직자상을 엿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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