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글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나리타 공항에 내리면 일본 여고생이 망사옷이나 세라복 입고 나와서 저를 맞이하고 그날 밤 한번 같이 자는 줄 알았어요. 한국에서 접해온 일본만 상상하다 보면 저 같은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하지 않죠.”
8월8일 정보기술(IT) 관련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도쿄 이케부쿠로의 한-일 합작회사에서 만난 김호일(29)씨는 부끄러운 듯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한국에서 평범하게 공교육을 받고 자란 평균적인 한국인이 일본에 건너온 뒤 겪게 되는 경험을 “김일성과 김정일을 승냥이로 본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 사람 전부를 쪽발이로 보게 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그는 “한국에서의 생각과 일본에 와서 본 뒤 느낌 사이의 괴리를 극복하는 것이 생각보다 무척 어려웠다”며 “솔직히 ‘제2의 사춘기’ 같은 걸 느꼈다”고 털어놨다.
‘일본은 없다’는 오만하더라
김씨가 일본에 온 것은 3년 전이다. 한국으로 돌아와 적당한 일자리를 찾기가 여의치 않았던데다 뭔가 일을 벌이려다 사기까지 당한 뒤 그는 지난해 말 미련 없이 다시 일본으로 건너왔다. 고속열차의 제어신호 시스템을 개발하는 업체에서 일하는 그는 “가능하면 일본에 오래 있고 싶다”면서 “일본 여성과 사랑하게 된다면 결혼을 해도 괜찮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가 이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는 ‘편견과의 싸움’이 필요했다.
“일본에 대한 굳어진 생각과 현실의 일본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서 그것을 극복하는 데 몇달이 필요했어요. 생각보다 순수하고 착하고 예의바른 일본인들이 많아요. 일상생활에서 한국을 적대시하는 분위기도 별로 느끼기 힘들어요. 내가 이걸로 끝장을 본다는 장인정신도 배울 만해요. 어느 날 문득 무서워졌던 적이 있어요. 일본 사람들이 저렇게 집요하고 치밀하고 체계적인데 저런 자세로 일제 때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에게 고문을 했을 것 아닌가 하고 생각하니까 소름이 확 끼치더라고요. 한국의 미디어들은 일본의 일부만을 가지고 전체인 것처럼 표현하지만, 현실의 일본은 훨씬 다양하고 복잡하죠. 전여옥씨가 여기에서 2년 살아보고 책 써서 일본은 없다고 했다는데 저는 오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런 얘기를 한국 친구들한테 하면 ‘너 쪽발이 다 됐구나’ 하면서 매국노 취급해요. 그래도 저는 꿋꿋하게 말합니다. 일본은 좋아하고 한국은 사랑한다고.”
김씨의 일본인 여성 동료 도모토 가타오카(26)는 “(김씨가) 입사할 때부터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함께 일하는데 어느 나라 사람인 것은 별 문제 없다”고 말했다. 한국에 대한 생각을 묻자, 그는 “회식 자리에서 얘기해보면 한국 사람들은 애국심이 남다른 것 같다. 축구에서만큼은 한국과 일본이 아시아의 두 왕자로서 확실한 라이벌 관계”라며 웃었다.
김씨처럼 일본 현지에 사는 대한민국 출신의 40대 이하 젊은이들은 이전 세대들과는 확연히 차이나는 ‘일본관’을 지닌 채 생활하고 있다. 일본에 대한 긍정적인 견해를 스스럼없이 밝히고 한국 안에서도 이런 문제 제기가 받아들여지기를 요구한다. 또 일본 안에서 자신의 일을 찾는 등 미래의 생활 근거지를 일본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뜻밖에 많다. 무엇보다 이전 세대보다 훨씬 짧은 기간에 일본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깬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이전 세대들은 평생 또는 몇년이 걸렸을 사고의 변화를 불과 몇달 동안에 경험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명분을 따지던 이전 시대의 일본관에서 실리와 실용을 중심에 둔 일본관을 지녔다는 점도 도드라진다.
파친코·사라킹 대신 자영업·IT 종사
이들은 민단과 총련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재일동포 사회에 편입되지 않는다는 면에서는 기존의 ‘뉴커머’(new comer)와 공통점이 있다. 뉴커머는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발효로 식민지 출신자들의 법적 지위가 외국인으로 변경된 뒤 일본으로 온 외국인들을 부르는 일본식 조어다. 대한민국 출신 뉴커머의 경우 65년 한-일 협정 체결 이후 일본으로 건너와 일본에 생활 기반을 마련한 세대를 일컫는다. 특히 80년대 해외여행 자유화가 본격화한 한국의 상황과 거품경제 시기에 이뤄진 일본의 국제화가 결합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일으켜 한국 출신 뉴커머가 급증했다.
일본 외무성 자료를 보면 일본에 있는 재일 한민족 수는 61만여명. 이 가운데 50만여명이 식민지 시대 일본으로 건너온 재일동포들과 이들의 후손으로 이른바 ‘특별영주외국인’(‘뉴커머’와 대비해 ‘올드커머’로 부르기도 함)으로 분류된다. 나머지가 대한민국 국적으로 65년 이후 일본으로 건너온 뉴커머로 분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숫자에도 포함되지 않는 불법 체류자들도 있다. 도쿄에 있는 한국대사관쪽에서도 그 수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있지만, 불법 체류자를 포함한 뉴커머는 20만~30만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보석가공 분야의 불법 체류자는 특히 많아서 한국인 보석가공 기술자가 없으면 도쿄 긴자의 보석상이 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말도 있다.
오사카 이쿠노구 코리아타운이 ‘올드커머’들의 거리라면 도쿄 신주쿠구 쇼쿠안도리의 코리아타운은 ‘뉴커머’의 거리다. 뉴커머의 3분의 1 이상이 도쿄에 살고 있다고 한다. 올드커머들이 파친코, 야키니쿠(불고기식당), 사라킹(샐러리맨 금융의 약칭으로 사채놀이와 비슷한 대금업) 등에 종사했다면 뉴커머들은 다양한 자영이나 컴퓨터 관련 업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다.
뉴커머 가운데 김씨처럼 한국에서 고등학교나 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으로 바로 건너오거나 일본 현지에서 대학을 나오고 일본 사회에 적응하고 있는 40살 이하의 새 세대 뉴커머들은 ‘뉴뉴커머’(new new-comer) 정도의 신조어가 어울린다. 이전 세대와는 질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기 때문이다. 이전 세대들은 주로 일본에서 경제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즉 돈을 벌려는 목적으로 일본으로 건너온 데 비해, ‘뉴뉴커머’들은 삶의 터전으로 일본을 받아들이고 경제적 가치를 넘어선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는 편이다. 특히 이들은 집단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한국 사회에 비해 개인주의가 확고한 문화로 정착돼 있는 일본 사회가 일상생활을 하거나 인간관계를 맺는 데서 더 편한 면이 있다고 여기기도 한다.
“겸손한 부자 나라지만 재무장화 걱정”
프로그래머로 도쿄에서 일하고 있는 김영삼(28)씨는 “일본의 젊은 친구들은 역사나 사회보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관심에 몰두한다. 예를 들어 하와이 여행상품 가운데 파격적으로 싼 것이 나왔다더라 하는 게 주된 대화 내용”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정말로 놀라운 일이지만 한국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같은 또래의 친구들도 있다. 국사와 세계사 가운데 하나만을 선택해서 공부해 그렇다지만 좀 심하다”고 덧붙였다.
도쿄 아사가와역 근처에서 한국 식당을 운영하는 현석현(38)씨.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스즈키셔터라는 일본 회사에 입사하면서 일본으로 건너와 자리를 잡았다. 그는 일본 여성과 결혼한 뒤로 1년에 한번 정도는 한국 가족을 만나러 귀국할 정도로 생활이 안정돼 있다. 현씨는 “일본에 건너와 17년째 도쿄에서 살다 보니 한국과 일본의 차이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며 “한국은 전체적인 사회 시스템이 너무 극단적이고 일처리도 세련되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극단적이지 않고 합리적인 일본에서 사는 게 여러모로 편하다”고 털어놨다.
“한국의 대기업들은 사실 국민들이 키워준 거잖아요. 그런데 한국 기업들이나 부자들은 겸손하지 않고 오만한 것 같아요. 일본 부자들은 상대적으로 겸손합니다. 뻐기지도 않습니다. 우리 식당에 오는 한 일본인 갑부가 있는데 필요하면 손수 넥타이를 풀고 주방에서 일을 돕습니다. 한국 부자들이 그런 모습 보였다는 얘기 못 들었습니다. 그런 모습이 전체적인 사회의 수준을 보여주는 것 아니겠어요.”
현씨는 일본의 긍정적인 면은 칭찬하지만, 일본의 모든 면을 긍정하는 건 아니다. 독도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는 여러 번 도쿄도청에 전화해 식당이 떠나갈 정도로 큰소리로 항의하기도 했단다. 일본의 재무장화와 군국주의화에 대한 주변국들의 우려에 대해 그는 “앞으로 50년 정도는 주변국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봐야 한다”고 동의했다. ‘중국이 일본을 칠지 모른다’거나 ‘피해를 당한 경험이 있는 한국이 북한과 손잡고 일본을 칠지 모른다’는 걱정이 평균적인 일본인의 정서에 깔려 있는 것 같다고 현씨는 전했다.
박철현(29) <오마이뉴스> 도쿄 주재기자도 일본 여성 다카하시 이와코(30)와 결혼한 뉴뉴커머다. 그는 2001년 일본에 와 컴퓨터 관련 업체를 다니다 아내를 만났다. 시민단체에서 외국인에게 일본어를 가르치던 아내와 연애를 시작한 지 8개월 만에 현지에서 결혼한 것이다.
그러나 박 기자는 결혼 사실을 2년 동안 숨겨야 했다. 일본 사람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 한국에서 벌어질 ‘사태’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지난해 추석 때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고향인 경남 마산을 찾았다. 처음에는 마음의 문을 열지 않던 박 기자의 어머니는 자신이 일하는 어시장 좌판에서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함께 일하는 며느리를 보고 반해버렸다. 박 기자 부부는 한국에서 한번 더 결혼식을 올렸다.
한국 남자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다카하시 이와코는 “모든 일을 꼼꼼하게 처리하지 않고 서둘러서 대충대충 끝내는 것 같아서 불만이지만, 대신 카리스마와 결단력이 있는 것 같다”면서 “한국인이라서 특별한 감정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내 또래의 일본 여성들도 한국 남자를 다른 외국인 남성들과 마찬가지로 인식하지 특별히 달리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박 기자는 한국과 일본이 관계를 정상화하기 위한 전제조건 가운데 하나로 일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한쪽으로 쏠려 있는 점을 꼽았다.
왜 한국언론은 <산케이신문>만 인용하나
“일본에는 여러 종류의 인간군상이 있습니다.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다 찬성하는 것도 아니고요. 두 나라의 미디어들이 잘못하는 측면이 크다고 봐요. 너무 극단적인 것을 부각시켜 전부인 양 보도하는 것은 두 나라가 계속 평행선을 유지하도록 할 뿐입니다. 한-중-일 3국의 공동 교과서인 <미래를 여는 역사>가 한국에서는 판매가 부진하다고 하지만 이곳 일본에서는 스테디셀러 목록에 들어가 있습니다. 한국 언론 가운데 보수적인 곳에서는 <산케이신문>을 많이 인용 보도하지요. 그런데 부수가 150만~200만부 정도 됩니다. 실제 합리적인 여론을 반영하는 곳은 1천만부 안팎의 <아사히신문>이나 <요미우리신문> 등입니다. 왜곡되게 반영하는 겁니다. 산케이의 구로다 지국장 같은 이는 일본 안에서는 전혀 주목받지 못하는데 한국에서는 일본을 대표하는 언론인처럼 돼 있잖아요. 답답합니다.”
박 기자는 임신 5개월째인 아내와 함께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이미 지었다. 남자 아이라면 ‘세준’(世俊)이라고 하고 여자아이라면 ‘미우’(美宇)라고 하기로 했다. 뜻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발음만 신경쓴 이름들이다. 일본과 한국 모두에서 무난히 받아들일 수 있는 발음이라고 한다. 박 기자는 “한류 현상이 일시적이지 않고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은 것도 한국에서 오는 젊은 세대들의 일본 사회 진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생활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 유학생의 경우에도 가까운 미래에 일본 사회에 진입하는 것에 큰 거부감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노정은(25)씨를 만난 건 도쿄의 명동이라고 할 수 있는 긴자 거리의 긴자미쓰코시 백화점 지하 2층 식품매장의 김치 판매 코너에서였다.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2년 동안 의류업체 디자이너로 일하다 전공인 의상디자인을 더 공부하기 위해 2년 일정으로 도쿄에 왔다. 원룸에 2단침대를 들여놓고 2명이 사는데도 숙박비가 5만5천엔(50만여원)이나 되지만 “기회가 닿는다면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방학을 맞아서 학비에 보태기 위해 김치 판매 아르바이트까지 하는 그는 “허황된 꿈을 꾸면서 일본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향수병 같은 건 없다”며 “대학 다닐 때부터 한국 안에서 접할 수 있는 일본 문화를 접해왔기 때문에 이질감은 별로 없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보다 디자인 분야에서 한발 앞서 있는 이곳에서 일자리를 얻고 싶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노씨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던 장현주(22)씨는 부산 부경대 일어과 3학년을 마치고 ‘워킹비자’(일을 하면서 어학연수도 할 수 있는 비자)로 일본에 왔다. 장씨는 “같은 대학 같은 과에서 현재 10명 정도가 같은 종류의 비자를 받고 일본에 와 있다”면서 “2, 3년 전부터 이런 식으로 일본에 오는 것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앞에서 대놓고 얘기하지 않고 뒷담화를 잘하는 일본인들의 성격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도 “서비스 정신이 투철하고 노인분들한테도 24시간 편의점 일자리 같은 걸 많이 제공하는 것은 좋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본 무시하는 나라는 한국 뿐?
장씨의 같은 과 선배로 현재 도쿄에 머물고 있는 조성욱(25)씨는 “일본에서 오래 살지는 못했지만 지금까지 본 바로는 세계에서 일본을 무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는 것 같다”면서 “한국은 일본을 너무 지나치게 신경쓰지만 정작 일본은 한국을 경쟁 상대로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북한(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제대로 알려면 북한바로알기운동을 통해 ‘친북’해야 하듯이 일본을 제대로 알려면 ‘친일’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뉴뉴커머들은 일본 현지에서 몸으로 배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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