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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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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밥값이 우리 제작비

등록 2001-01-03 00:00 수정 2020-05-02 04:21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인디 레이블이 선택한 험난한 여정… 획일화된 유통구조가 가장 큰 장벽

9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시장은 도박판과 비슷하다. 대형기획사들은 패가 되는 음반에 최대한 베팅을 한 다음 잭팟이 터지기를 기다린다. 승자, 즉 대박이 되는 한해 대여섯장의 음반은 1천억원대에 이르는 판돈의 80% 이상을 가져간다. 전체 음반의 0.1%도 안 되는 대박음반을 터뜨리기 위한 대형기획사들의 베팅은 천정부지로 올라가 이제 음반 한장의 평균 제작비용이 1억원을 훌쩍 넘었고 최근에는 뮤직비디오 한편 찍는 데 억대를 투자하는 가수들도 늘어나고 있다. 통상 대박의 기준이 됐던 30만장이 이제는 손익분기점에 가까워졌다.

사명감 하나로 버티다

그러나 1만장이면 대박이 되는 음반사들도 있다. 이른바 인디레이블이라고 불리는 저예산 독립레이블들이 그들이다. 상업적인 논리로만 따진다면 가내수공업이라고 할 만큼 이들의 덩치와 제작여건은 초라하다. 그러나 메이저레이블들의 제작과 유통방식에 반기를 든 이들의 게릴라전은 작지만 의미있는 성취들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홍익대 앞 산울림소극장 맞은편 건물 지하에 있는 카바레사운드. 인디문화의 개념이 형성될 무렵인 96년부터 활동해온 레이블로, 언론의 반짝경기를 탄 인디레이블들이 대부분 문을 닫은 지금까지 든든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저예산레이블의 맏형격이다. 카바레사운드는 레이블로 출범한 98년부터 7장의 앨범을 제작했다. 이 가운데 외부의 지원을 받은 음반은 하나도 없다. 기획에서 녹음, 마스터링, 앨범 디자인까지 순수 카바레사운드표 음반을 만들어왔다. 카바레사운드의 타이틀 앞에는 언제나 로파이(Lo-fi)라는 단어가 붙는다. 원음 그대로 재생하는 녹음기술인 ‘하이파이’에 반대되는 일종의 안티개념이다.

“비싼 장비를 쓰면 더 좋은 음질이 나오는 건 당연하겠지만 반드시 모든 음악에 하이파이가 필요한 건 아닙니다. 저희들은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주보다는 느낌이 좋은 연주를 만들어내려고 노력합니다.” 카바레사운드의 이승호씨는 “카바레사운드라는 말이 전하는 오래된 느낌처럼 4트랙이 가진 매력을 새롭게 해석하는 것이 우리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만드는 음반 제작비는 메이저레이블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때로 400만∼500만원으로 음반 한장을 만든다. 외국제 벤을 타고 다니는 메이저 레이블 가수들이 몰고 다니는 팀의 몇끼 식사값에 해당하는 돈이다. 그러나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단지 ‘가난해서’만은 아니다. “내 음악은 내가 만든다는 아티스트들의 생각이 저예산을 가능하게 합니다. 일단 메이저음반사들이 수천만원씩 쏟아붓는 작사·작곡비가 들어갈 일 없고 프로듀싱과 음반디자인까지 뮤지션들이 직접 참여하니까 메이저에서는 수십 단계로 분화되는 작업이 대여섯 단계로 압축되는거죠.” 카메라플래시의 세례를 받으면서도 ‘붕어’라는 조롱에서 자유롭지 못한 메이저 시장의 많은 가수들과 비교할 때 이들의 가난은 자부심으로 변한다.

카바레사운드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활동하는 저예산레이블들이 있다. 강아지문화예술도 그 가운데 하나다.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각자가 갖고 있던 장비들을 모아 녹음스튜디오를 만들면서 시작”된 강아지문화예술은 벌써 18장에 이르는 카탈로그를 보유한 중견(?) 저예산레이블로 자리를 굳혔다. “처음에는 멤버들이 다른 생업을 가지고 제작비를 조달해야 할 만큼 힘들었죠. 그렇지만 우리가 문닫으면 대중음악의 작은 가지가 또 하나 부러질 거라는 일종의 사명감으로 버텨왔습니다.” 강아지문화예술의 변영삼 대표는 “돈 벌면 더 좋겠지만 우리는 하고 싶은 음악을 하고 수용자들에게는 선택적 대안의 폭을 넓혀줄 수 있으니까 즐거운 거죠”라고 자신들의 작업의 의미를 이야기했다.

패션만 찾는 매체의 시선

허리띠를 졸라매는 나름대로의 노하우를 터득하면서 저예산레이블들은 자체제작시스템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지만 음반들이 만나는 유통시장에서는 아직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유통회사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초창기에는 오토바이에 몸을 싣고 전국 음반가게를 찾아다니면서 일일이 설명을 하며 받아주길 ‘애걸’해야 했던 적도 있다. “대중음악의 장르가 다양한 외국 같으면 마니아들을 위한 숍에만 깔아도 최소한의 수익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댄스나 발라드 외에 다른 시장이 전무하다시피한 우리나라 시장에서는 음반을 배포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죠.” 너명의 인기가수 음반만 골라 파는 소매상은 말할 것도 없고 대형가수의 음반이 몇십만장씩 ‘밀어내기’를 할 때면 도매유통으로부터 거부당할 때가 많다. 그래서 한명의 고객이 아쉬운 이들이 가장 많이 받는 전화내용은 정작 “음반을 구할 수가 없다”는 소비자들의 불만이다.

결제방식도 보통의 시장관행인 선납금이 아니라 후불제를 요구받는 등 여전히 불공정경쟁 속에서 고군분투한다. 영세한 상황에서는 마이너레이블 전문유통기관이 생기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몇번의 시도가 실패로 돌아갔다. 그래서 대형유통과 손을 잡기도 하는데 이 과정에서 크고 작은 문제들이 생긴다. 올 6월 외국계 대형음반사에 유통을 의뢰했던 MP의 이종현 대표는 “이틀 만에 3만장이 팔렸다며 흡족해 하던 유통사가 나중에는 전체 판매량이 3만장이라고 말하더군요. 이틀 만에 3만장 나간 앨범이 더이상 팔리지 않았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이야기잖아요. 그러나 판매량 집계를 확인할 수 없으니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는 꼴이죠”라고 말했다. 결국 덤핑 처리하는 현장까지 목격돼 MP는 다른 유통사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매체들의 무관심도 이들의 걸음을 더디게 하는 한 요소다. “노브레인 1집을 만들면서 뮤직비디오도 두편이나 찍는 등 홍보에 공을 많이 들였어요. 그런데 공중파는 말할 것도 없고 음악채널에서도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까운 비디오 제작비만 날린 거죠.” 펑크전문레이블인 문화사기단의 김재준 대표는 “인디음악은 이제 한물 간 것 아니냐”며 음악이 아닌 패션을 찾는 매체들의 시선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음악채널의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종현씨 역시 “저희 레이블의 대표 뮤지션을 방송사에 데려가면 심부름을 시켜요. 반면에 유명하지 않아도 ‘뽀시시한’ 걸그룹이 오면 PD들의 태도가 금방 달라지죠”라며 방송사의 편향을 꼬집었다. 그러나 매체들의 고집스런 외면에도 불구하고 MP 홈페이지의 하루 조회수는 8천회를 넘겼고 문화사기단은 지난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 공연 때 자리가 없어 100여명의 관객을 돌려보내야 했을 정도로 지지군단을 얻어가고 있다.

장밋빛 미래는 없어도…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재생산 구조을 위태롭게 하는 경제적 어려움이다. “만성적자죠. 물론 제작비 자체가 메이저보다 작기 때문에 실패해도 존립이 위태로울 만큼 타격을 받지는 않지만요.” 강아지문화예술의 경우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쌓은 지명도를 통해 개인 후원을 받는 형식으로 돈문제를 일정 정도 해결하고 있다. 다른 마이너레이블보다 사정이 낳은 MP의 경우도 세명의 공동대표가 여전히 건강식품을 팔거나 리스회사에 다니면서 살림을 보태고 있는 형편이다. “저희들의 바람은 이번 음반이 크게 터지는 게 아니라 다음 음반을 무사히 끝마치는 겁니다.” 카바레사운드 이승호씨의 바람은 모든 저예산레이블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분명 이들은 양쪽 다리에 모래주머니를 서너개씩 매달고서 날렵한 운동복을 입은 메이저레이블들과 시장이라는 트랙에서 경쟁하고 있다. 자금력을 무기로 내세운 메이저레이블들을 상대하는 이들의 무기는 ‘음악’이다. “지금도 풍요롭지 않지만 앞으로도 장밋빛 미래가 펼쳐지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아요. 그렇지만 즐겁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음악을 만들고 있으니까요.” 이들은 즐겁기 위해서 음악을 하고 음반을 만든다. 그 즐거움은 잠시 거품처럼 일었던 인디음악 바람 때의 유폐적인 자족의 울타리를 넘어 팬들과의 은근하고 지속적인 끈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김은형 기자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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