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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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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 대신 포르나!

등록 2005-06-15 00:00 수정 2020-05-02 04:24

페미니스트 저널 <이프>의 ‘선동’ 공연 ‘porNO porNA’
여성비하적인 ‘섹스사기극’을 넘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한다

▣ 글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서기 2100년. 국민 모두가 저 생긴 대로 자유롭고 행복한 성생활을 맘껏 영위하게 된 시대에 이르러, 대한민국 문화관광부 산하 ‘성의 개별성에 관한 특별연구소’도 그 소임을 다하고 문을 닫았다. 그러나 이 연구소의 자진 해체에 불만을 품은 한 직원이 있었다. 성의 개별성에 대한 연구는 쭈욱 이어져야 한다는 집념과 광기에 사로잡힌 연구원 모모다. 그는 95년 전까지 세상을 풍미했던 ‘포르노’를 남몰래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캐비닛을 뒤져 찾아낸 ‘포르노 인간 X파일’은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아 미스테리로 남아 있는 전설의 파일이다. 파일을 뒤지던 모모는 유명한 ‘아랫털게이트’ 사건의 불을 지핀 ‘비아그라’에 관한 설명을 읽다가 놀라 나자빠지는데….

열흘 앞두고 조물락거리기 맹연습 중

“이럴 수가. 죽거나 세우거나, 죽기 아니면 세우기, 죽도록 서야 했다. …이제야 이해가 가는군요. 이 시대 남성들은 사이즈와 단단함, 발기 시간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는데요. 그 스트레스 때문에 파트너의 목소리를 도통 제대로 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전문용어로 발기강박증으로 인한 남성들의 사오정 효과입니다.” 미래 시대 과학자를 연기하는 김익범(27·회사원)씨의 목소리에 점점 탄력이 붙었다.

6월8일 저녁 7시 서울 마포의 극단 독립극장 연습실. 열흘 앞으로 다가온 페미니스트저널 <이프>의 두 번째 안티페스티벌 ‘porNO porNA’(포르노 포르나) 첫 무대에 서는 참가자들이 맹연습을 하고 있다. 총연출을 맡은 이영란(배우·경희대 예술학부 교수)씨가 김씨의 옆에서 동작과 말투를 잡아주며 기운을 불어넣는다. “좋아요. 주먹 꽉 쥐고 가운데 손가락 천천히 위로 올리고! 잠깐 텀을 뒀다가 손가락을 부드럽게 조몰락거리면서∼.” 김씨가 ‘손가락을 부드럽게 조몰락거리면서’ 은밀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발기하지 않은 남성의 성기는 특별히 부드럽고 섬세해서 삽입 외에 다양한 방식의 애무에 사용될 수 있다는 사실, 어떤 여성은 발기하지 않아 부드러운 남성의 성기에 특별히 집착한다는 연구조차 없던 시절의 얘기입니다.”

이날 연습에 두 번째로 나선 ‘희자매’는 콩트 <색녀열전>을 연기하며 질펀한 육담을 풀어놓는다.

남자들의 ‘말씀’과 ‘법도’에 잘 길들여진 한 양반댁 마나님이 계셨다. 마나님은 어느 날 시동생과 그 친구들이 낄낄대는 방문 앞을 지난다. 무슨 일이기에 저리 재미있을꼬. 한데 온통 생전 처음 듣는 말들이었다. 시동생에게 뜻을 물었다. 시동생은 어리숙한 형수에게 사기를 친다. “남자들이 쓰는 문자입니다. 여자가 바느질하는 것을 ‘요분질’이라 하고 총각이 담배 피우는 걸 ‘용두질’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뼉’은 이야기한다는 뜻입니다.” 마나님은 이 말뜻을 깊이 새겼다. 어느 날 중매쟁이 김 영감이 왔다. 우리의 마나님, 배운 문자를 써먹을 기회가 왔다고 여기고 말을 꺼냈다. “아유, 우리 딸이야 흠잡을 데가 없답니다. 게다가 재주가 좋아 ‘요분질’도 잘하죠.” 옆에 있던 시동생이 당황해하며 말을 막는데 마나님은 아랑곳없다. “도련님은 여기 상관말고 가서 ‘용두질’이나 하시와요. 전 김 영감과 ‘뼉’이나 더 해야겠으니.”

어리숙한 마나님이 사기 치는 시동생 엿먹이는 장면을 능청스레 연기한 정희, 명희씨는 <이프>의 ‘열혈독자’이다. 이번 무대가 처음이다. 예술감독을 맡은 곽동철(배우·‘더 굿맨 씨어터’ 대표)씨는 “아마추어이지만 열정이 있어서 그런지 한두 마디 충고에 아주 좋아진다”고 말했다. 같은 극단의 한상훈(무대감독), 오진(조연출)씨도 연습 내내 연기는 물론 대본 수정까지 머리를 맞댔다.

포르나가 전하는 ‘엉터리 매뉴얼’

‘과학자’ 역을 맡은 김익범씨는 지난 5월 초 학교(서강대 생명과학부) 연구실 회식에 동석했다가 역시 우연히 동석했던 김재희 <이프> 편집인의 눈에 띄어 전격 발탁됐다. 이른바 ‘술자리 캐스팅’이다. 김씨는 “밝히는 친구와, 같이 볼 수 있는 장소, 지속적인 노출이 ‘포르노 중독’의 조건인데, 나는 학창 시절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지 못했다”면서 “심하게 길들여진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고 딱하다”고 말했다. 성에 대한 일방적인 편견과 왜곡된 환상을 심어준다는 점에서 김씨는 기존의 포르노가 불편하고 싫단다. ‘포르노 포르나’는 김씨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진 이들이 만들어내는 공론의 장이자 놀이터다.

계간 <이프>가 올 봄호와 여름호에 집중 조명한 포르노의 첫 번째 문제는 그것이 지나치게 ‘여성 비하적’이라는 점이다. 강간당하고 학대당해도 좋아라 하는 여자를 그려, 여성을 비천한 물건으로 취급해버린다. 포르노의 시선이 흥분하는 여자의 표정과 여성 몸의 각 부위를 집중적으로 훑어내는 것만 봐도 그렇다. 두 번째 문제는 그것이 ‘섹스 사기극’이라는 점이다. 지나친 과장·반복·확대로 점철된 포르노를 보면서 남자들도 무의식적인 강박을 갖는다. 적잖은 남자들이 ‘만족시키지 못하면 어쩌나’ ‘왜소할까봐, 조루일까봐’ ‘발기의 강도가 약한지, 사정의 세기가 약한지’ 등의 이유로 전전긍긍한다. 포르노가 전하는 ‘엉터리 매뉴얼’에 길들여진 탓이다. 세 번째 문제는 그리하여 제2, 제3의 ‘밀양 남고생’들을 양산할 위험이 높다는 사실이다. 2004년 내일청소년상담소 조사를 보면 19살 미만 청소년 56.3%가 성지식을 포르노를 통해 얻는다. 그리고 포르노를 접촉한 남학생의 61%가 여성을 보면 ‘음란한 장면’을 떠올리게 된다고 응답했다.

20년 전 미국 위스콘신대 심리학자 에드워드 도너스테인은 남자 대학생들을 세 집단으로 나눠 실험했다. 집단1에는 섹스에 대해 난상토론하는 필름을, 집단2에는 폭력이 배제된 섹스 장면을, 집단3에는 폭력적인 하드코어 포르노를 보여줬다. 그런 다음 학생들이 조교에게 질문을 하고 조교는 답변을 하는데, 답변이 신통치 않으면 조교에게 전기자극을 실시할 권한이 주어진 것처럼 설정했다(학생들은 전기자극이 가는 줄 알지만 실제 조교에게 자극이 가지는 않는다). 집단3의 반응이 놀라웠다. 이들은 비슷한 답변에도 다른 집단에 견줘 훨씬 더 세게 단추를 눌러대며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조교가 여성이면 눈에 띄게 폭력적으로 굴었다. 그 뒤 많은 연구자들은 포르노가 뇌에 끼치는 자극과 영향은 헤로인이나 코카인 등 마약 중독과 같은 현상을 보인다고 보고하고 있다.

여성과 친한 포르노는 없나요?

그렇다면 포르노를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전세계 여성주의자들 사이에서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무조건 반대해야 하나? 고상한 검열관, 도덕주의자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생뚱맞은’ 상황을 만들 우려가 있다. 표현의 자유로 봐야 하나? 여자를 비천한 물건으로, 남자를 강박의 노예로, 많은 이들을 중독자로 몰아대는 포르노가 과연 지구법적 권리로 옹호될 수 있을까.

‘포르노 포르나’ 페스티벌은 이런 모든 문제들을 ‘밝은 곳’으로 꺼내 따져보자는 ‘선동’이다. 일반 참가자들의 무대에 이어 깜짝 초청 공연들이 이어진다. ‘고!고! 포르노 속으로’를 앞세운 개그우먼 강유미·안영미씨와 ‘알까리라 뉴스’의 김세아씨도 함께한다. 이번 페스티벌은 포르노의 여성형 명사 ‘포르나’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남녀,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성애자와 성적 소수자들을 성적으로 억압하고 차별하지 않는, 관능과 성애의 개념이 담겨 있다는 게 기획팀 고주영씨의 설명이다. 6월18일 저녁 6시 서울 서강대 메리홀과 그 앞 야외공간에서 열린다(www.antifestiva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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