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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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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두번째 고통, 비만

등록 2005-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불어나는 살에 위협받는 정신지체 장애 아동들… 저지방 식단 짜고 지속적 운동 하도록 도와야</font>

▣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3월10일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심곡본동 혜림학교. 교실로 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누군가 툭 치며 인사를 건넨다. “안냥~하세요?” 낯선 이에게도 서슴없이 인사를 건네는 사교적인 성격, 그러나 어눌한 말씨. 다운증후군을 앓는 그 아이를 따라 친구들도 인사를 건넸다. 혜림학교는 부천·시흥 일대에 사는 정신지체아들을 위한 특수학교다. 다운증후군 같은 염색체 이상, 임신 중 질병이나 분만 중 사고로 뇌를 다친 아이들, 뇌막염 등을 앓아 뇌세포가 손상된 아이들. 장애를 가지게 된 이유도 가지각색이고 증상이나 정도도 다양하다. 하지만 이들에겐 건강을 위협하는 공통의 적이 있다. 비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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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반 작업치료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앞치마를 두르고 선생님이 흙을 나눠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10명가량의 학생들 중에서 서너명은 미처 앞치마로 가리지 못한 배가 불룩하다. “정신지체 어린이들은 운동 능력이 떨어지고 음식 섭취를 자제하지 않기 때문에 비장애아보다 비만이 상대적으로 많죠.” 혜림학교 정재옥 교장은 “79년 처음 학교에 왔을 때만 해도 비만 장애아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지금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학교 재학생 145명의 체격검사표를 살펴봤다. 과다체중(비만도 10~20%)을 넘어 ‘경도 이상의 비만’으로 분류된 아이들이 23명이나 된다. 비장애아들의 비만도가 평균 10%라고 할 때 2배 이상 높은 수치다(비만도는 (현재체중-표준체중)÷표준체중)×100으로 계산한다). 23명 가운데 6명이 경도비만(비만도 20~30%), 10명이 중증비만(30~50%), 7명이 고도비만(50% 이상)에 해당한다.

비만아 따로 관리해 효과 본다

나날이 불어가는 학생들을 보다 못해 보건교사 오현자씨는 2001년부터 비만아들을 대상으로 치료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 첫해엔 선생님이 직접 중증·고도 비만 아이들 15명을 데리고 매일 아침 1교시 수업시간에 걷기·계단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계획적인 식단이나 학부모의 배려 없이 운동량을 늘리는 것만으로는 무리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금방 싫증을 느끼고 뒤처지기 일쑤였다. 그래서 지난해부터는 경도·중증·고도 비만 아이들 3명을 골라 ‘과학적 치료’를 실험했다. 매일 60분씩 걷기·빠르게 걷기·달리기를 함께 했고 저지방 식단을 마련해 학교와 집에서도 지킬 수 있도록 했다. 오현자씨는 “비장애아 학교에선 뚱뚱한 아이들이 수치심을 느끼기 때문에 비만아들을 따로 관리하는 것이 어렵지만, 우리 학교 아이들은 반찬도 따로 주고 선생님들이 관심을 더 쏟으면 ‘특별대우’ 받는다고 생각해 호응이 좋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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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11월까지 여섯달 동안 계속된 비만 치료는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경도비만이었던 은수(가명·12)는 과체중(비만도 12.5%)으로 개선됐고, 중증비만이었던 지용(가명·12)이는 경도비만으로(29.9%) 판정됐다. 다만 ‘프라더윌리증후군’으로 알려진 경훈(가명·13)이는 도저히 식욕을 통제할 수 없어 중도 하차하고 말았다. 프라더윌리증후군은 15번 염색체 이상에 의한 질환으로 비만·저신장·당뇨병·학습장애 등을 일으킨다. 프라더윌리증후군은 비장애인보다 음식의 위장 통과 속도가 3~5배가량 빠르고 포만감을 느끼지 못해 끊임없이 먹게 된다. 경훈이 역시 치료를 받는 동안 부모님이 냉장고를 열어주지 않자 가출까지 하고야 말았다. 거리를 떠돌며 구걸해서 번 돈으로 군것질을 할 정도로 상태가 심각했다.

자폐아들에게도 비만이 적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모습과는 달리, 자폐아들에게도 비만이 적이다. 자폐아들을 위한 주간보호시설에서 일하는 복지사 이영철씨는 “11명의 아이 중에 절반 가까이가 비만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말한다. “자폐아들은 식욕 같은 원초적 욕구가 굉장히 강한데 이런 욕구를 곁에서 누르면 난동을 부리거나 계속 울기 때문에 부모님들이 어쩔 수 없이 먹을 것을 주게 된다”고 말했다. 식욕을 과도하게 억누르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이영철씨는 한 아이의 물안경을 들어 보였다. “고무를 뜯어먹은 자국 보이시죠? 배고프면 눈에 보이는 아무거나 먹거든요. 린스도 먹고 플라스틱도 씹고 쇠도 삼켜요. 정말 배고프면 제대로 표현을 하지 못하고 자해까지 합니다.” 그래서 자폐아들에게는 식욕 통제보다도 수영·인라인스케이트·등산 등 운동을 통해 스트레스를 줄이고 활동량을 늘리는 것이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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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아직 실증적 통계가 없지만 외국에선 비장애 아동보다 정신지체장애 아동이 비만 발생률이 높다는 연구가 이미 나와 있다. 특히 중증지체보다는 경도정신지체아들이 비만이 더 많은데, 이는 자기가 배고프다는 것을 표현할 수 있어 음식을 얻기 쉽고 허기를 달래려고 여러 가지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질환의 특성상 키가 작고 뼈가 약하고 지방질이 두꺼운 다운증후군의 경우도 비만의 경향을 보인다. 비만은 당뇨 등 합병증을 불러 수명을 단축시킨다.

교통사고·뇌졸중 등으로 중도장애인이 된 경우에도 비만은 참을 수 없는 고통이다. 1994년 친구가 운전하던 차에 탔다가 사고를 당한 김성관(34)씨도 사고나기 전엔 키 172cm에 몸무게 70kg의 표준이었지만 침상에서 꼼짝없이 누워 있는 동안 12kg이나 불었다. 퇴원 뒤 병원에서 먹던 식단 그대로 먹어도 살은 늘기만 했다. “체중이 늘면 본인뿐 아니라 보호자들도 힘들기 때문에 좋아하는 고기도 맘껏 못 먹인다”고 가족들은 안타까워한다. 용인대 특수체육학과 최승권 교수는 “앉아서 생활해야 하는 척추손상 환자, 식습관이 통제가 안 되는 정신지체·발달지체인, 운동량이 충분하지 않은 시각장애인들이 비만의 위협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뇌성마비처럼 칼로리 소모가 많은 경련이 자주 일어나고 숟가락질도 어려워 섭취량이 적은 경우는 상대적으로 비만으로부터 자유롭다.

기숙사 생활 학생들의 비만도가 낮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규칙적 운동과 계획된 식사는 비만을 막는 정답이다. 2001년 혜림학교 체육교사 김명식씨가 경기도의 정신지체 특수학교 5곳의 학생 159명을 조사한 결과,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집에서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보다 비만도가 낮았다. 특히 여학생의 경우엔 차이가 확연했는데, ‘기숙사 거주’ 학생들의 체지방률이 25.31%인 데 반해 ‘가정 생활’ 학생은 35.54%였다. 또래 비장애 여성의 평균 체지방률이 25~32%인 것과 비교해볼 때 집에서 생활하는 장애학생이 훨씬 비만한 셈이다. 김명식씨는 “가정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은 방과후 집 안에서만 머물기 때문에 몸을 움직이는 것은 적은 반면 음식물을 눈에 보일 때마다 먹지만, 기숙사에서 사는 학생은 미리 계획된 식단과 규칙적인 식사시간, 통제된 간식, 넓은 활동공간 때문에 살이 덜 찐다”고 설명했다.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의 물리치료사 조상현씨는 “비만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뇌졸중을 앓은 중도장애인들의 경우엔 운동에 매우 열정을 보인다. 하지만 재발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강도가 높지 않고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운동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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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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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재활운동으로 가벼워진다</font>

물에선 공처럼 둥둥 떠다니더니 풀 밖에 나오자마자 털썩 주저앉았다. 1974년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머리에 총알을 맞은 공석용(54)씨는 다리를 쓰지 못한다. 2년 넘게 병원 신세를 지다 퇴원했을 때만 해도 꼼짝할 수 없었던 그가 조금씩이나마 혼자 움직일 수 있게 된 건 10년밖에 되지 않았다. 몸의 움직임이 적어지자 몸도 마구 불어나기 시작했다. 사고 전엔 65~70kg이었는데 어느새 90kg에 이르렀다. 끼니마다 딱 밥 한 그릇만 먹고 주전부리는 입에 대지 않으며 음식량을 절제하고 윗몸일으키기 등을 열심히 했지만, 하체를 전혀 쓰지 못하기 때문에 칼로리 소모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공씨가 ‘물’을 알게 된 것이 7년 전. 수중재활운동을 하면서 체중이 더 이상 늘지 않고 천천히 줄어들기 시작했다. 매주 세 차례 1시간씩 물에서 걷고 뛰면서 몸의 움직임도 자유로워졌고, 몸무게도 5kg 줄었다. 곁에서 공씨의 수발을 들던 동생은 “사고를 당했던 당시와 비교하면 지금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동구 고덕동 서울장애인종합복지관 ‘리포츠센터’는 장애우들의 재활을 위한 스포츠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가장 역점을 두고 있는 사업은 수중재활운동. 질병·사고 등으로 근골격계·순환계·신경계가 손상된 사람들이나 정신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치료·운동요법들을 가르쳐 운동 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12명의 수중재활운동사가 한달 평균 500명가량의 장애인을 지도한다.
훈련받지 않은 비장애인들은 물이 무섭지만, 지상에서 몸을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사람들은 물이 반갑다. 리포츠센터 김준호 팀장은 “물 속에 들어가면 지지면이 무한대로 넓어져서 몸을 받쳐주기 때문에 자유로이 움직일 수 있고 부력 때문에 관절에 미치는 압력이 현저히 감소한다”고 설명한다. 가령 목까지 물에 잠길 경우 체중의 90%가 감소하고, 어깨 정도 물 높이에 들어가면 70~80%, 허리 높이에선 50% 감소하기 때문에 이동에 어려움이 적다. 반면 운동량은 많다. 물의 저항 때문에 같은 동작을 지상에서 할 때와 비교해 칼로리 소모가 2배 이상 많다. 또 수압은 장기를 조여주고 호흡근을 발달시켜준다. 하체에 미치는 수압은 정맥혈을 위로 짜올려서 혈액순환을 도와주며 위·간 같은 장기를 위쪽으로 떠올려줘서 흉곽은 그만큼 압력을 더 많이 받는다. 물에 들어가 숨을 들이쉴 경우 땅 위에서보다 힘든 이유가 이 때문이다. 김 팀장은 “보통 체격을 가진 사람들이 물 속에 들어가면 수압이 장기를 팽팽히 조여줘 보통 허리 사이즈가 2인치 정도 줄어드는데, 이 압력 때문에 호흡 근육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리포츠센터에서 장애인들을 대상으로 운영하는 프로그램은 수중치료와 수중재활운동이 있다. 수중치료는 풀 안에서 1대1로 지압 등을 통해 근육을 활성화시키는 것으로 할로익·바드라가지·왓추 등의 요법이 있다. 수중재활운동은 풀 안에서 여럿이 함께 모여 여러 가지 동작들을 훈련하며 운동 기능을 향상시키는 것이다.
김 팀장은 “장애인들은 몸을 그냥 내버려두면 살이 찌고 합병증이 겹쳐 점점 상태가 안 좋아진다. 수중재활운동은 6개월 정도 계속하면 기초대사량 등이 확 올라가며 눈에 띄는 효과가 나타나지만 이를 계속 유지시켜 큰 통증 없이 편안하게 생활하기 위해선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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