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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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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촛불이여, 제발

등록 2005-01-25 00:00 수정 2020-05-03 04:24

지율 스님 위한 촛불 집회 곳곳에서 열려… 생명의 열쇠를 쥔 청와대는 아직도 묵묵부답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어느덧 90일이 가까워지고 있지만, 지율 스님의 단식이 계속되고 있다(<한겨레21> 544호 ‘지율 스님의 목숨이 기운다’ 참조).

스님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상황은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스님은 지난 1월13일 기자회견을 가진 뒤 홀로 서울 통의동 거처에서 단식을 하고 있다. 곁에서 돌보아주던 동생마저 돌려보내고, 외부와 접촉을 일절 끊었다. 스님이 가끔 지인들에게 보내는 이메일을 통해서만 안부를 확인할 수 있다. 18일 스님은 “정신력으로 잘 버티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라”는 내용의 메일을 보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생도 도롱뇽 접으며 1인 시위

사람들은 스님의 단식에 촛불 집회로 공명하고 있다. 도롱뇽의 친구들과 지율 스님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매일 저녁 전국 거리에서 생명의 촛불을 밝히고 있다. ‘지율 스님과 천성산의 생명을 살리는 촛불문화제’가 지난 14일부터 매일 저녁 서울·부산·대구·광주·대전·청주 등지에서 열리고 있다. 이들은 천성산(cheonsung.com) 홈페이지를 통해 자발적으로 모였다.

20일 저녁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앞에서 열린 촛불 집회에도 30여명의 사람이 참석했다. 이날 집회에는 어른들뿐 아니라 부모의 손을 잡고 나온 어린이들도 눈에 띄었다. 새만금을 지키는 사람 등 스님의 건강이 걱정돼 지방에서 올라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제주도에서 올라온 ‘풀꽃 세상을 위한 모임’ 회원은 “스님처럼 수도의 길과 더불어 사는 길을 함께 가는 분을 본 적이 없다”며 “우리 모두 스님의 뜻을 알리고 천성산을 살리는 풀꽃이 되자”고 말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참가자들은 촛불을 들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천성산을 살리고 지율 스님을 살리는 일이었다.

지율 스님의 동생도 지난 15일부터 청와대 앞 ‘효자동 사랑방’ 근처에서 도롱뇽을 접으며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동생 조경자(36)씨는 “스님의 건강이 너무도 걱정되지만 곁에 오지 못하게 해 이렇게 거리에서 도롱뇽을 접고 있다”며 “종이학 1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데 도롱뇽 100만 마리를 접으면 우리의 소원도 이루어질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전국의 도롱뇽 친구들도 천성산 환경영향평가 재실시라는 ‘소원’이 이루어지기 바라며 도롱뇽을 접어 보내오고 있다. 모아진 도롱뇽은 천성산 터널공사 재판이 계류 중인 대법원에 보낼 예정이다. 조씨는 “스님의 요구는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해달라는 것뿐”이라며 “약속을 어긴 청와대가 이 정도 단식을 했으면 사과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1분1초가 급한 상황

청와대는 아직도 묵묵부답이다. 지난 17일 당시 문재인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지율 스님의 거처를 방문해 3시간여 동안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날 자리에서 지율 스님은 “저도 단식을 그만하고 싶지만 나갈 문이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수석은 “단식을 그만하는 것이 나가는 문 아니겠느냐”고 대답했지만 스님을 설득하지는 못했다. 문 수석은 환경영향평가를 약속해 이미 두 차례 스님의 단식을 중단시킨 바 있다. 문 수석은 이번 방문에 대해 “업무적인 것이 아니고 부산에서 스님과 친분이 있어 방문한 것”이라고 밝혔다. 문씨는 20일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에서 민정수석으로 자리를 옮겼다.

문제는 스님이 단식을 풀고 나갈 문을 마련해주는 것이다. 열쇠는 청와대가 쥐고 있다. 스님이 살아계실 때 문을 열어야 한다. 1분1초가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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