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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카데쉬] 체스 챔피언의 장기 기증

등록 2004-12-31 00:00 수정 2020-05-03 04:23

▣ 델리= 우명주 전문위원 greeni@hotmail.com


인도에서 안락사와 장기 기증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전 국가대표 체스 챔피언 벤카테시(25)가 12월17일 숨을 거뒀다.

오랜 기간에 걸쳐 근육·심장·허파의 기능이 저하되는 뒤센형 근위축증과 싸워온 그는 자신의 장기가 손상되기 전에 기증하고자 생명유지 장치들을 제거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나 병원측은 안락사는 불법이며 뇌사 상태의 환자만이 장기 기증을 할 수 있다는 인도 법률을 근거로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그는 자신이 입원한 주, 안드라 프라데시주의 고등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 탄원서마저 사망 이틀전에 기각됐다. 결국 그의 소원은 사망 직후에야 이뤄져 안구가 적출될 수 있었다. 그러나 생전에 기증하고 싶었던 심장·신장·간은 이미 기능이 떨어져 기증하기엔 너무 늦은 상태였다.

아들을 대신해 법적 투쟁을 벌여온 그의 어머니 수자타는 앞으로도 아들의 마지막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투쟁을 계속할 것을 다짐했다. 그는 뇌사자가 아닌 경우라도 장기 기증을 할 수 있도록 ‘장기이식법’을 고치고, 장기기증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안락사를 허용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어머니가 직접 자신의 장례식을 치러주기를 바랐던 벤카테시의 다른 마지막 소원 또한 들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이 힌두 전통에 어긋나는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수자타는 “나는 내 아들이 말한 것밖에 모른다. 그 애가 ‘엄마,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말했다. 힌두 계율, 그런 것은 나는 모른다”라고 말했다.

벤카테시 사건으로 인도에서는 안락사와 장기 기증 문제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벌어졌다. 장기 이식을 기다리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뇌사자가 아닌 경우, 즉 실질적인 심장 사망자의 경우에도 장기 기증을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오래 다뤄온 사람들은 인도의 현 상황에서 야기될 수 있는 문제점들을 지적한다. 즉, 현재 인도의 사회적 환경에서 장기 기증을 할 수 있는 대상이 넓어지면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의 장기를 약탈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장기를 구하는 부자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매수해서 생존 가능성이 있는 경우에도 빨리 죽음을 재촉하려 들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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