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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유출 의혹, 그냥 못 넘어간다/ 김영배 기자

등록 2004-12-23 00:00 수정 2020-05-03 04:23

공인중개사 추가시험 실시로 새 국면… 유출 정황증거 대단히 구체적이어서 검찰조사 불가피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536호(12월2일치)에서 제15회 공인중개사 시험을 둘러싼 소동을 ‘이슈추적’으로 다룬 지 10여일 만인 12월15일 시험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가 추가 시험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중개사 시험 소동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시험관리, 한국토지공사로?

건교부는 시험 사흘 뒤인 지난 11월17일 시험 난이도 조절 실패와 사전 문제 유출 의혹에 대해 사과문을 발표한 데 뒤이은 이번 조처로 시험관리의 난맥상을 자인한 셈이 됐다. 2002년부터 공인중개사 시험 출제와 관리를 맡아온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도 공신력에 큰 상처를 입었으며, 내년부터는 한국토지공사에 시험관리 업무를 넘겨줘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당시 에서 처음 제기한 대로 산업인력관리공단은 40여명의 출제위원에 대해 격리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나, 문제가 사전에 유출됐다는 의혹에 휘말려 있다.

건교부가 내년 11월 정기 시험과 별도로 5월에 15회 시험 불합격자만을 대상으로 추가 시험을 실시한다고 밝히면서 내놓은 시험제도 개선에 포함된 내용에서는 흥미로운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건교부는 “출제 기준을 표준화하고 난이도 검증 장치와 출제 비중 투명화, 부정 행위 방지대책을 12월 중 마련하겠다”며 그 방안의 하나로 “특정 ‘학설’에 치우치지 않는 일반적 문제를 출제한다”고 밝혔다. 이는 자연스럽게 부동산학 개론의 권위자로 이번 시험과 관련해 일찌감치 갖가지 구설에 휘말린 15회 시험 출제위원 ㅇ씨를 떠올리게 했다.

수험생들 사이에는 ㅇ씨와 함께 중개업법 강사로 활동 중이고, 역시 출제위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ㄱ씨를 둘러싼 유출 의혹도 널리 퍼져 있다. 건교부가 “문제 유출 위원은 고발하고 향후 위촉을 금지할 것이며, 부정 행위 응시자는 5년간 응시 자격을 정지할 것”이라는 방침을 밝힌 것도 이런 사정을 반영한다. 건교부는 또 “시험 문제 유출 의혹건에 대해선 감사를 실시해 혐의 사실을 조사 중”이라며 “그 결과에 따라 수사기관에 고발할 예정이어서 상응하는 처벌이 따를 것”이라고 덧붙였다.

건교부의 이런 방침에도 수험생들의 분노는 좀처럼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시험 당일인 11월14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근조(謹弔) 15회 공인중개사 시험’ 카페(cafe.daum.net/rmswh15)를 중심으로 모인 수험생들은 이틀 뒤인 16일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위원장 박일)를 꾸려 시험 무효화를 주장해왔다. 비대위는 전국 곳곳에서 촛불시위를 벌인 데 이어 21일 서울 종묘공원에서 또다시 대규모 시위를 열어 시험 무효화 또는 합격점수 하향 조정, 가산점 부여 등을 촉구했다.

비대위에선 “구제 조치” 촉구

박일(29) 위원장은 “건교부도 인정했듯이 터무니없는 난이도로 충분히 붙을 수 있었던 이들이 대거 떨어지게 생겼다”며 “구제 조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1~14회 시험의 평균 합격률이 15%인 데 견줘 이번 15회 시험의 경우 이보다 턱없이 낮은 1%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에 합격선 60점(과락 40점)의 기준을 낮춰 적용하는 게 적절하다는 주장이다.

이번 공인중개사 시험을 둘러싼 소동에서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문제 유출 의혹이다. 유출의 정황 증거로 제시된 몇 가지 사례(특정 학원의 모의고사 문제와 실제 시험 문제의 동일성)가 대단히 구체적이어서 그냥 넘어가기 어렵게 돼 있다. 건교부나 산업인력관리공단은 시험 직후부터 지금까지 “자체 조사 중이고, 그 결과에 따라 후속 조처를 내놓겠다”는 방침을 거듭 밝히고 있지만, 시험 주무기관으로서 공신력을 잃은 마당이어서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결국 검찰에 넘겨져 시비가 가려질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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