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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항] 연극이냐 병원이냐, 문제로다!

등록 2004-12-17 00:00 수정 2020-05-03 04:23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우리의 짧은 인생사/ 그나마 대개는 가시밭길/ 게으름 피우면서/ 세월이나 죽이면서/ 천천히 즐기면서/ 욕망을 채워보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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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12일까지 서울 대학로 학전 소극장 블루에서 공연한 는 국내 유일의 류트 연주자 김영익씨의 반주에 맞춘 이항(62·한양대병원 소아과 교수)의 이색적인 노래로 극을 시작한다. 절세미인을 가로채려 한다는 스토리를 관객의 입장에서 비웃는 듯한 노래극은 막간에 다섯번이나 이어진다. 그때마다 객석에서는 어김없이 환호가 터져나온다.

애당초 의 마키아벨리가 쓴 창작 희곡에는 ‘요정’들이 등장해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것을 서울 경기고 연극부 동문 극단 ‘화동연우회’가 국내에 초연하면서 ‘노배우’가 인생을 달관한 듯 노래와 시를 들려주는 것으로 바꾸었다. 이항씨는 시를 읊조리는 한명수(숭실대 사회과학대학장)씨와 함께 등장해 르네상스 류트의 라이브 공연을 선보인다. 이색 시도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관객들은 최음제로 쓰이는 약용식물 ‘만드라골라’에 관한 스토리보다도 노래극에 흠뻑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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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노래를 부르는 배역을 맡으라는 말을 듣고 황당했죠. 어쩔 수 없이 맡았는데 연습할 때 어찌나 구박을 하던지…. 사실 중세 스타일로 노래를 하는 게 성악가들도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공연 뒤에 ‘죽 쒀서 개 줬다’네요.” 그만큼 의 노래극이 관객들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났을 때 가장 많은 박수를 받은 사람도 노래극의 주인공이었다. 연극 경력 50년을 바라보는 이씨는 새로운 출발을 할지도 모른다. 뮤지컬계의 캐스팅 요청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기에.

사실 이씨는 소아혈액 종양학의 권위자로 진료실을 비울 수 없는 처지다. 그러면서도 연극계에서 종횡무진 활약한다. 화동연우회의 공연뿐만 아니라 한양레퍼토리의 2인극 를 이끌고, 극단 돌곶이의 에서 신비한 노인 역을 맡기도 했다. 지금은 내년 1월 말에 공연하는 서울대 의대 동문 ‘의극회’의 의 총연출을 하면서, 영화 에서 ‘잘린’ 필름을 ‘복구’하려고 강제규&명필름의 촬영장인 전북 남원을 오가고 있다. 이제 뮤지컬 무대에서 이씨를 만날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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