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파 뛰어넘어 한국에 함께 온 이라크 수니파 살람과 시아파 하이셈, 그들이 전하는 이라크의 실상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시아파와 수니파.
‘적’이라고 알려진 이슬람 두 종파의 이라크인이 11월30일 나란히 입국했다. 수니파 살람(42)과 시아파 하이셈(36)은 알려진 바와 달리, 종파를 뛰어넘어 한목소리로 “미국은 이라크를 떠나라”고 요구했다. 두 사람은 12월7일부터 11일까지 서울에서 열리는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 민중재판’에서 이라크의 참상을 알리는 증언을 한다. 이에 앞서 12월2일부터 5일까지는 대구, 서울 등지를 돌며 ‘이라크전쟁 증언대회’를 열어 이라크의 실상을 알렸다. 이들은 입국 다음날인 12월1일, 서울 합정동의 예수살이 공동체에서 과 인터뷰를 가졌다. 살람은 전쟁피해 어린이 구호단체인 ‘국경 없는 어린이’의 활동가이고, 하이셈은 이슬람권의 적십자 단체인 적신월사에서 자원봉사을 하고 있는 의사다. 우선 후세인 정권에 대한 이야기부터 물었다. 형이 후세인 정권에 의해 살해당한 살람이 먼저 말문을 열었다.
- 후세인 정권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 살람: 물론 싫어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보장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이라크에 왔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미군이 들어온 지 1년10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후세인 시절에는 그나마 학교를 다니고 직장에 나갈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밖에 나갈 수조차 없다. 안전이 영원히 사라졌다. 이제는 절대 다수의 이라크인이 미군뿐 아니라 미국을 미워한다.
=하이셈 : 나는 지난 4월 팔루자에서 미군의 총에 맞아 죽고, 불에 타 죽은 수많은 이라크인을 똑똑히 보았다. 팔루자만이 아니다. 바그다드에서는 미군 탱크가 내 친구 세명이 탄 자동차 위를 타넘고 지나가 친구들이 죽는 모습도 봤다. 그들은 외출하러 나온 민간인이었다. 이라크에서는 이런 일이 매일 일어나고 있다. 미군이 떠나지 않는 한 이라크의 평화는 없다.
팔루자는 이라크의 광주다. 팔루자의 비극을 이야기할 때 두 사람의 눈에는 물기가 스쳤다. 이들은 지난 4월 팔루자 학살이 끝난 뒤 팔루자 외곽에서 구호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11월 미군의 팔루자 공습 때는 발만 동동 굴렀다. 미군은 구호요원들의 팔루자 진입조차 가로막았다.
- 팔루자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나.
=살람 : 팔루자에서만 지난 2~3주 동안 4천여명의 사람이 죽었다고 확신한다. 그곳에서는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죽어가고 있다. 세계인이 팔루자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 한다.
- 미국은 알 자르카위가 이끄는 ‘유일신과 성전’ 같은 테러조직 소탕을 팔루자 공습의 명분으로 내세웠다.
=하이셈 : 자르카위가 팔루자에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외국인을 공격하는 테러에는 반대하지만, 그런 테러의 근본 원인은 미국에 있다.
하이셈은 알 자르카위를 “미국이 만들어낸 가장 훌륭한 발명품”이라고 말했다. 알 자르카위의 존재조차 의심하는 것이다. 그는 또 “이제 이라크인들은 미국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 이라크인 전체를 상대로 전면전을 하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라크인의 미국에 대한 불신은 극에 달하고 있다. 유일신과 성전은 김선일씨를 참수했다고 알려진 조직이다. 한국인 참수 사건 얘기를 꺼내자 살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을 도운 인연으로 살람은 지난해 8월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살람은 참수 사건 때 “어린이처럼 울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방문 때와 차이를 느끼나.
=살람 : 김씨 사건 이후에 한국인들이 많이 냉담해졌음을 느낀다. 한국인의 이라크에 대한 연민도 사라지고 있고, 이라크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이 사라지고 있다. 참 슬픈 일이다.
- 한국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 하이셈: 미군은 석유를 차지하기 위해 왔다지만, 한국군은 도대체 무엇을 하러 이라크에 와 있는지 모르겠다. 재건을 돕기 위해서 왔다고? 이라크 사람들은 그렇게 믿지 않는다. 앞으로 한국군이 할 수 있는 일은 기껏 이라크인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일뿐일 것이다.
- 한국의 국회의원 다수는 이라크 파병 연장 동의안에 찬성하고 있다.
=하이셈 : 이라크에 한번이라도 와봐라. 감히 연장한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이셈의 생각과 달리, 자이툰 부대가 주둔 중인 아르빌을 다녀온 국회 국방위 조사단은 12월3일 파병 연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여야는 파병 연장 동의안 통과에 잠정 합의한 상태다. 올 연말에 끝나는 파병 시한은 연장될 가능성이 높다. 3600명을 파병한 한국은 미국, 영국에 이어 제3위 파병국가의 위치를 ‘지킬’ 가능성이 크다.
- 1월에 치러질 예정인 총선에 대한 생각은.
= 살람: 선거가 두달밖에 안 남았는데, 사람들은 누가 후보로 나오는지조차 모른다. 웃기는 일이다. 게다가 투표하러 투표장에 갈 수도 없을 만큼 불안한 상황이다. 이라크인을 위한 선거가 아닌,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선거다.
- 시아파와 수니파로 나뉘어 서로 싸우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셈 : 미국이 이라크인을 자기 편으로 만드는 데 실패하자, 종파와 종족을 나누어 분열을 부추겼다. 과도정부를 구성하면서 시아파 30%, 수니파 25%, 이런 식으로 지분을 나누어주면서 분열시킨 것이다. 우리는 수천년 동안 평화롭게 공존해왔다. 시아파와 수니파가 쉽게 결혼할 정도다. 나는 평생 아무에게도 당신이 시아파인지, 수니파인지 묻지 않았다.
마지막 한마디를 부탁하자, 살람은 “우리에게 필요한 사람은 총이 아닌 꽃을 들고 오는 이”라며 “가족을 잃은 이라크인과 함께 슬퍼해줄 사람만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이셈은 “민중재판을 통해 부시의 미국이 전쟁범죄를 저지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러 왔다”고 덧붙였다. 그들은 “우리 손으로 우리의 평화를 만들 수 있도록 모든 외국군은 제발 돌아가달라”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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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의 힘으로 부시·블레어·노무현을 심판한다.”
3천여명의 시민이 기소인으로 참여한 ‘이라크 전쟁범죄 민중재판’이 열린다. ‘부시·블레어·노무현 전범 민중재판 준비위원회’는 12월7일부터 9일까지 서울 연세대 백양관 대강당에서 세 차례에 걸쳐 민중재판 공판을 열고, 11일 서울 경희대 크라운관에서 최종 선고를 내릴 예정이다. 3천여명의 기소인은 스스로 기소 이유서를 썼고, 각자의 아이디어로 풀뿌리 평화행동을 벌여왔다.
민중재판의 판사단은 홍세화(한겨레 기획위원), 변연식(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장), 류은숙(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씨 등 각계 인사로 구성됐다. 기소인단이 뽑은 각 지역의 시민 20여명도 배심원으로 참여한다. 배심원에는 이주노동자,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도 포함됐다. 증인으로는 이라크인 살람과 하이셈, 이라크 참전 미군의 어머니 킴 너살리오, 이라크에서 피격당해 숨진 오무전기 김만수씨의 딸 영진씨, 베트남전 참전 군인 김영만씨 등 전쟁 피해자 12명이 나선다.
민중재판 준비위는 2일 발표한 선언문을 통해 “미·영의 이라크 전쟁이 인류의 보편적 양심과 국제법적 기준을 위반하는데도 이를 처벌할 어떠한 공식적 국제기구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입법부는 전쟁범죄의 공범이 됐고, 사법부는 전쟁범죄의 동조자가 됐다”고 주장했다. 민주노동당, 참여연대, 민변 등은 올 초 이라크 파병이 모든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위반한다는 헌법소원을 냈지만 기각당했다. 민중재판 준비위는 이날 재판부가 발부한 소환장을 청와대에 전달하려 했으나 청와대쪽은 수령을 거부했다. 민중재판 재판부의 수석판사인 이덕우 변호사는 “국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파병을 했다면 노 대통령은 소환장을 받고 법정에 출석해 파병 이유를 당당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중재판은 한국뿐 아니라 일본, 미국 등 세계 각국에서 열리고 있다. 각국 민중재판의 열기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 2년째가 되는 날인 2004년 3월20일 터키에서 열리는 전세계 민중재판으로 모아진다. 3천여명의 기소인은 한국 정부를 향해 “우리는 전범국가의 국민이 될 수 없습니다”라고 호소하고, 이라크인을 향해 “살람 알라이쿰, 알라이쿰 살람”(당신에게 평화를)이라고 외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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