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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명숙] 금메달로 간신히 끝낸 월동준비

등록 2004-11-26 00:00 수정 2020-05-03 04:23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2004 아테네 장애인올림픽 사격 금메달리스트 허명숙(48) 선수는 올겨울을 따뜻하게 날 수 있게 됐다.

허 선수는 지난 장애인올림픽 직전까지 서울 성북구 상월곡동의 14평 임대 아파트에서 살았다. 장애인 생활보호대상자에게 배정된 임대 아파트다. 그런데 허 선수의 집은 19층 맨 꼭대기에 있었기 때문에 겨울이면 강한 바람이 창문 틈으로 들어와 몹시 추웠다. 너무 추워 한낮에도 이불을 뒤집어쓰고 생활해야 했다. 그런데 지난 장애인올림픽에서 허 선수가 금메달과 은메달을 딴 이후 그의 집이 바뀌었다. 허 선수가 장애인올림픽이 끝나고 귀국하자 성북구청이 그의 환영행사를 열어줬는데, 이 자리에서 허 선수가 “생활하는 데 어려움이 없느냐”는 서찬교 구청장의 질문에 그동안의 어려움을 하소연한 것이다. 그때 허 선수의 얘기를 들은 이웃 할머니가 서 구청장한테 “이런 행사 한다고 돈 낭비하지 말고, 집이나 바꿔주쇼”라고 말했고, 이 말을 들은 서 구청장은 직원들에게 이를 해결하도록 지시했다. 성북구청은 도시개발공사의 협조를 얻어 허 선수의 집을 19층에서 2층으로 옮겨줬다. 성북구청의 ‘배려’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휠체어를 타고 사용할 수 있도록 특수 싱크대를 설치해줬고, 바람을 막기 위한 새시와 붙박이장도 무료로 제공했다.

한달 30만원 남짓한 보조금 탓에 주로 된장을 먹고 생활했던 허 선수가 금메달을 목에 걸자 언론들은 ‘된장 메달’이라 불렀다. 허 선수는 “주변에서 격려해주시는 분들이 많다.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선수 기준으로 오른 연금과 포상금을 곧 받을 예정이어서 어느 때보다 따뜻한 겨울을 보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의 가슴 한구석은 어딘가 허전하다. “이런 배려가 다른 장애인들에게도 베풀어졌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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