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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철] 반미 방화 주역, 5·18묘지로…

등록 2004-11-12 00:00 수정 2020-05-03 04:23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광주 미문화원 방화 사건의 주역이자, 광주 민주화운동 유공자인 정순철 씨가 10월7일 지병인 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49.

광주시 동구 황금동 광주 미문화원의 기와 지붕을 홀랑 태운 방화 사건은 1980년 12월9일 밤에 발생했다. 미국 브라운 국무장관의 방한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언론통제 탓에 사건 당시 진상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5공화국 말까지 철저히 은폐돼 있었지만, 한국 사회운동에 새로운 물꼬를 튼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다. 2년 뒤인 82년 3월 김현장·문부식의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으로 이어지며 5·18 당시 미국의 역할에 대한 논의를 불러일으킨 반미 운동의 시발점 구실을 했다.

80년 당시 방화 사건 가담자는 모두 5명으로 가톨릭농민회(가농) 회원 정순철(당시 25살), 김동혁(〃44), 윤종혁(〃26), 박시영(〃22) 등 농민 4명과 당시 전남대 경영학과 2학년이던 임종수(〃21)씨였다. 정씨 등은 가농이 12월5일 5·18 이후 첫 거리시위를 계획했다가 사전 정보 누설로 실패한 데 따라 차선책으로 미문화원 방화를 감행했다.

사건 당일 정씨는 대학생 임씨와 함께 인근 오성여관 2층 창문을 통해 문화원 담장의 철조망을 자르고 들어가 지붕 위로 올라갔다. 지붕 기와 두어장을 뜯어내고 방수재를 면도칼로 찢은 뒤 휘발유와 석유 한말을 들이부었다. 도화선으로는 길고 가늘게 만 시멘트 부대가 이용됐다. 치솟는 불길을 뒤로 하고 정씨와 임씨는 광주공원쪽으로 달아났다. 정씨는 1년 반 동안의 도주 생활 끝에 체포돼 징역 5년6월을 선고받았다.

출감 뒤 정씨는 전남 여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다가 서울 가락동으로 터전을 옮겨 수산물 회사를 차려 비교적 성공적으로 운영했다.

박계동 한나라당 의원은 회고록에서 “정순철은 90kg이 넘는 거구에 전라도 사투리가 시원시원하며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하고야 마는 행동파였다”고 기억했다. 박 의원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에 휘말려 수배를 받고 있던 82년 경북 안동 마리스타 수도원에서 정씨를 만나 함께 일본 밀항을 꾀하기도 했다. 정씨는 11월10일 광주 5·18국립묘지에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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