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테네= 하영식 전문위원 youngsig@teledomenet.gr

일요일이나 수요일 저녁 때가 되면 어김없이 아테네 중심가인 옴모니아 지역의 과일시장터에 자리잡은 한 건물 안으로 누추한 차림의 이방인들이 총총히 걸어 들어갔다. 중동이나 아프리카에서 온 난민들임을 한눈에 알아챌 수 있다. 건물 안에는 40여명의 난민들이 자원봉사차 스위스에서 온 대학생들의 영어 강의에 열심히 귀기울이고 있었다. 낯선 그리스에서 생활하는 데 실질적 도움을 주는 영어회화 강습은 난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따라서 난민 학생 수는 나날이 늘고 있는 추세다. 식사시간이 되자 무료급식소는 난민들로 빽빽하게 붐볐다. 식탁 주위에 앉은 사람이 100여명, 밖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 100여명이나 되었다. 이곳에서 특별히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난민들이 이곳을 운영하는 양용태(49) 선교사를 ‘빠빠’(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양 선교사가 난민들과 처음 인연을 맺은 것은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터키를 통해 많은 쿠르드인들이 밀려들기 시작할 때였다. 이들이 많이 모이던 옴모니아 광장에 매주 토요일만 되면 나가서 쿠르드 난민 몇명을 집에 데려와서는 목욕도 시키고 음식도 나눠주었다. 헌 옷가지들을 모아서는 이들이 사는 곳을 방문했다. 그러다 9·11 사태가 난 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면서 아프간 난민들이 그리스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당시 아테네의 페디오아레오 공원은 거의 난민들의 숙소로 변모하다시피 했다. 이를 보다 못한 양 선교사는 아예 난민구호 사업을 전업으로 삼았다. 그는 이곳으로 매주 일요일 오후만 되면 음식을 날랐다. 한인교회에서 밥과 국을 정성껏 장만한 뒤 교인들과 함께 와서 250여명의 난민들에게 뜨거운 밥 한끼를 선사했다.
공원에서 무료로 밥을 나눠준 지 2년이 지난 뒤 옴모니아 부근에 장소를 얻었다. 좀더 안정적이고 조직적으로 난민구호 사업을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지금은 무료 식사 외에 헌 옷가지까지 나눠주고 있다. “아무것도 없는 난민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지 못할 때가 가장 마음이 아프다.” 난민들은 이제 그에게 개인 사정까지 털어놓으며 신뢰감을 표시하고 있다. 양 선교사는 곧 이들과 함께 생활공동체도 건설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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