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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밈] 누가 이 외국인을 모르시나요

등록 2004-09-09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자신의 이름 · 나이 · 모국어에 대한 기억을 모두 상실한 채 병상에 2년 넘게 누워있는 이주노동자 샤밈 </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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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국적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외국인 노동자가 있다. 교통사고 뒤 2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는 샤밈. 이 그의 친구를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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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성=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자신의 이름도 모른다. 나이도 모른다. 출신국가도 모른다. 모국어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상실증에 걸린 이주노동자가 830일 넘게 병원에 누워 있다. 9월2일 오후 3시께, 경기도 평택시의 굿모닝병원 중환자실에는 몸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주노동자가 누워 있었다. 낯선 기자가 다가가자 그저 놀란 눈을 껌벅일 뿐이었다. 키 165cm가량, 나이 20대 후반~3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외국인 남성이다. 그는 ‘샤밈’이라고 불린다.

무의식마저 지배해버린 ‘단속의 공포’

“안녕하세요.” “….”

기자가 말을 붙이자 아예 시선을 피한다. 그를 돌보는 이영희 간호사는 “낯선 사람이 오면 몸이 더욱 굳어지고, 긴장한 표정이 역력해진다”고 전했다. 동행한 황재식 평택외국인노동자센터 공동대표는 “샤밈은 불법 체류자였을 가능성이 높다”며 “무의식 중에도 단속을 당할까봐 낯선 사람을 겁내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단속의 공포는 무의식마저 지배해버렸을지 모른다. 샤밈의 병명은 뇌좌상 뇌출혈. 처음에는 수술을 받고 의식불명이었다. 의료진은 사망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지금은 오른쪽 다리를 조금 들고, 오른손을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왼쪽 몸은 마비 상태고 자신의 모국어는커녕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최근에는 “밥 줘” “아파요” 같은 ‘생존’ 한국어는 구사한다. 샤밈은 2년 전 교통사고를 당했다.

사고 시각은 2002년 5월26일 새벽 4시께, 사고 장소는 충남 천안시 성환읍 11번 국도변이었다. 국도변의 갓길에서 자동차에 치였다. 사고를 당한 길가쪽에는 ‘영농법인 농심회’ 창고가 있고, 맞은편에는 ‘신광수출포장’ 공장이 서 있다. 사고 목격자는 없었다.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샤밈을 택시를 타고 지나던 남성이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다행히 ‘뺑소니’ 사고는 면해 보험 혜택은 받고 있다. 사고를 내고 도망쳤던 운전자는 사고 장소로 돌아와 자수했다. 샤밈은 사고 당시 평상복에 슬리퍼 차림이었다. 사고 현장에 남아 있던 전화번호 수첩이 그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단서다.

경찰이 신원확인에 나섰다. 우선 사고 현장 주변의 공장을 탐문했다. 이주노동자들에게 샤밈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허사였다.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수첩에 적힌 글씨가 방글라데시 문자라는 것을 겨우 알아냈다. 수첩 첫장에 ‘샤밈’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수첩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했다. 역시 허사였다. 모두가 모른다고 했다. 황재식 대표는 “미등록(불법 체류자) 이주노동자들이 경찰이 전화를 하니까 알면서도 모른 척했을 수 있다”고 짐작했다. 사건을 담당했던 천안경찰서 형사도 “전화를 받은 사람들이 무언가 거리를 두고 답하는 느낌이었다”고 돌이켰다. 단속의 공포는 그의 신원확인을 어렵게 했다. 혹시 한국인일지 몰라 지문을 채취해 신원조회를 했다. 역시 아니었다. 지문을 방글라데시 대사관에 보냈다. 도통 감감무소식이었다.

다음은 굿모닝병원이 나섰다. 샤밈의 딱한 처지를 외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귀국하는 방글라데시 사람을 샤밈과 만나게 했다. 샤밈의 사진을 쥐어주면서 가족을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또다시 감감무소식이었다. 병원 관계자가 방글라데시 대사관에 찾아갔다. 출입국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샤밈의 신원확인은 불가능했다. 샤밈의 사진을 대사관 게시판에 붙이고 돌아왔다. 성환읍의 출입국 관리소를 찾아갔다. 출입국 대장을 뒤졌지만 대장에 사진이 없어 확인이 불가능했다. 지역 케이블 텔레비전에 자막 방송을 내보냈다. 끝내 감감무소식이었다.

2004년 봄, 평택외국인노동자센터(이하 센터)가 샤밈의 사연을 알게 됐다. 역시 샤밈의 친구를 찾아나섰다. 센터로 찾아오는 이주노동자들에게 샤밈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아는 사람이 없었다. 방글라데시 이주노동자들과 샤밈을 만나게 했다. 방글라데시말을 해도 샤밈은 묵묵부답이었다. 경찰에게 샤밈의 수첩 복사본을 얻었다. 수첩 두 번째 장에 ‘차잔님’이라는 글씨와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사장님’으로 짐작됐다. 전화를 했다. 방글라데시인을 고용하고 있는 공장 사장이 받았다. 사장은 샤밈이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을 안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아는 샤밈은 현재 자신의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혹시 방글라데시 소수민족?

일말의 희망도 놓칠 수 없었다. 센터의 김우영 사무국장이 공장을 찾아갔다. 사고현장에서 차로 30분 남짓 떨어진 경기도 용인의 공장이었다. 공장의 샤밈을 만났다. 그는 수첩을 잃어버린 적이 있지만, 그 수첩이 자신의 것은 아니라고 했다. 같은 공장에서 일하고 있는 10여명의 방글라데시인들도 다가와 수첩을 보고 다친 샤밈의 사진을 확인했다. 모두들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오리무중이었다. 다시 수첩에 적힌 다른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한결같이 샤밈이라는 사람을 알지만, 자신이 아는 샤밈은 잘 있다고 답했다. 끝끝내 오리무중이었다.

이제 센터쪽은 그의 이름이 샤밈이 아니고, 그가 방글라데시인이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도 그를 모른다고 하니 수첩이 그의 것이 아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글라데시에서 샤밈은 한국의 김씨처럼 흔한 성이다. 더구나 이주노동자들은 샤밈의 생김새가 방글라데시인 같지 않다고 말한다. 센터의 황재식 공동대표는 “혹시 방글라데시 소수민족일지도 모르겠다”고 짐작했다. 방글라데시 소수민족은 한국에서도 다른 방글라데시인들과 접촉이 거의 없어 방글라데시 사람들도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시골 농장에서 고립돼 일하던 이주노동자였을 가능성도 있다. 평택과 인근 진천, 성환 등지에는 작은 농장과 공장들이 산재해 있다. 현재 평택에만 약 4천명의 이주노동자들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샤밈의 신원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미궁에 빠지고 있다.

게다가 일각이 여삼추다. 지난 8월17일 외국인 고용허가제가 실시되면서 이주노동자들이 ‘물갈이’당하고 있다. 고용허가제 실시를 전후해 불법 체류자 집중 단속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단속이 강화된 7월 이후 하루 평균 60~120명의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을 빠져나가고 있다. 샤밈의 친구들도 한국을 떠났거나 떠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2년3개월은 메우기 힘든 공백의 시간이다.

물론 샤밈의 건강을 위해서도 아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황재식 평택외국인노동자센터 공동대표는 “샤밈이 가족과 친구를 만나야 기억도 살아나고 회복도 빨라진다”고 안타까워했다. 샤밈의 사고는 샤밈 가족 전체의 고통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황 대표는 “다른 이주노동자들처럼 샤밈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었을 것”이라며 “사고 2년이 넘게 지나 샤밈 가족의 생계도 풍비박산이 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걱정했다. 이처럼 샤밈의 신원 확인은 한 사람과 한 가족의 평생이 달린 문제다.

제2의 ‘찬드라’가 될 것인가

“말해요, 찬드라.”

이란주 이주노동자문화인권센터 소장이 지난해 펴낸 책의 제목이다. 그 책에 담긴 글의 제목이기도 하다. 찬드라는 행려병자로 오인돼 2년 넘게 정신병원에 감금됐던 네팔 여성이주노동자의 이름이다. 당시 부천외국인노동자센터 사무국장이었던 이란주씨는 겨우 정신병원을 벗어나 네팔행을 기다리는 찬드라와 함께 보낸 시간을 에 담았다. 찬드라는 아무리 네팔말로 호소해도 정신나간 사람의 횡설수설로 받아들이는 한국 사회에 절망해 말문을 거의 닫은 상태였다. 이란주씨는 그런 찬드라에게 미안해하고, 한국 사회를 부끄러워했다. 그래서 제목이 (이제는) 였다. 샤밈은 또 다른 찬드라다. 단속의 공포가 그의 무의식을 압박해 말문을 닫아버렸을지 모른다. 단속의 공포 탓에 그의 동료들은 그를 외면했을지 모른다. 단속이 두려워도, 그 공포가 무의식을 짓눌러도, 제발 “말해요, 샤밈”. 빨리 “샤밈의 친구를 찾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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