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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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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준영] 임진각에 평화를, 뚜뚜빵빵!

등록 2004-09-09 00:00 수정 2020-05-03 04:23

아줌마 조준영씨가 대형면허를 따고 중고버스를 사 ‘그림책버스 뚜뚜’를 몰기까지

▣ 글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너른 주차장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림책버스 뚜뚜’. 먼 길을 달리느라 뽀얗게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었지만 버스에 알록달록 그려진 동화 속 주인공들을 모른 체할 순 없었다. 움직이는 도서관. 버스 안엔 1500여권의 그림책이 빼곡했다. 슬라이드를 볼 수 있는 환등기와 스크린도 있어 맘만 먹으면 순식간에 이동극장으로도 변했다. 33인승 버스가 요모저모 쓸모 있기도 하구나!

전국 공원의 폐차를 평화의 기지로!

9월2일 경기도 파주 임진각에서 그림책버스 조준영(40) 대표를 만났다. ‘뚜뚜맘’이라고 불리는 부천 일대의 어머니 자원봉사자 4명과 어린이 8명도 함께였다. 사는 곳이 부천이고, 그림책버스의 주무대도 부천인데 이들이 임진각까지 온 이유는 명료했다. “분단의 상처를 가장 뚜렷하게 느낄 수 있는 곳 중 하나인 임진각이 관광유원지로 변하면 안 되지요. 이곳에 평화공원과 평화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뚜뚜의 꿈입니다.”

지난해 ‘개관’한 이동도서관 그림책버스 뚜뚜는 올해 들어 한달에 2~3차례 전국 각 도시를 찾아다니며 그림책 전시, 슬라이드쇼, 퍼포먼스 등을 선보여왔다. 공원·광장 등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너른 공간에 버스를 주차해놓고 잠깐이나마 작은 도서관을 차린 셈이었다. 길게 보자면, 사람들이 뚜뚜의 아이디어를 이해하고 받아들여 전국 공원에 폐차된 버스를 재활용한 도서관을 많이 만들어내길 바라는 뜻이었다. 전국을 누비던 중 지난 6월엔 6·25의 아픔과 분단의 비극을 기억하자는 뜻에서 뚜뚜는 임진각을 찾게 됐다. 조준영씨는 놀랐다. “바이킹이며 범퍼카며 통일·전쟁·평화와는 상관없는 놀이기구들이 펼쳐져 있었고, 놀이동산 옆에는 멈춰진 열차가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카페로 변해 있었어요.”

파주시는 2001년 임진각관광지 조성공사를 벌였다. 놀이기구 10여종을 갖춘 놀이동산, ‘평화랜드’도 만들었다. 임진각을 찾은 사람들이 즐기고 돌아갈 만한 시설을 만든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것만으로 끝나지 않아, 경기도는 2005년 임진각 옆에 청소년수련관을 만들고, 파주시는 장단콩갤러리와 야외공연장 등을 조성할 계획이다.

그러나 조씨의 생각은 달랐다. 그리운 고향과 헤어진 가족을 목놓아 부르며 속절없이 애만 태우는 실향민들을 떠올리며 놀이공원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이곳이야말로 평화를 되새기는 공원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작은 실천이나마 이 생각을 구체화해나가야겠다고 맘먹었습니다.”

임진각을 돌아본 뒤 조씨는 동화작가 권정생씨를 찾았다. 평화공원 운동에 힘이 되는 말씀을 듣기 위해서였다. 권정생씨는 아름다운 시 한편을 선물했다. “우리 모두 가슴에 꽃씨를 심어요. 어머니, 아버지 우리들 가슴이 따뜻해지도록. 흙 속에 해바라기 꽃씨를 심듯이 흙 속에 채송화 꽃씨를 심듯이 우리 모두 가슴에 꽃씨를 심어요. …산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피기 때문이에요. 나무가 자라기 때문이에요. 풀이 자라기 때문이에요. 아름다운 산에는 새들이 날아오지요. 토끼들이 노루들이 모여들지요. 우리모두 산처럼 살아요. 한 그루 나무가 되어 한 송이 꽃이 되어 새들이 날아오도록 사슴과 노루들이 모여오도록 다람쥐도 토끼도 모여오도록. 그래서 함께 살아요.”

처음엔 딸아이를 위해서 시작한 일

8월14일 정식으로 첫 삽을 떴다. 서울 종묘공원에 모여 서명운동을 벌였다. “장소를 잘못 고른 탓에” 서명에 응한 이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만족했다. 함께 5m짜리 대형 그림을 그렸다. 평화공원이라는 것이 할머니·할아버지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개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공원과 관련해 조씨의 수첩에 적힌 일정은 빽빽하다. 9월8일엔 조씨로부터 독서지도를 받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해 임진각을 평화공원으로 만들자는 내용의 엽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청와대에 들르기 전엔, 아이들이 용돈을 모아 마련한 ‘평화로운 세상 만들기 기금’을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또 9월12일엔 인천 연수시민연대가 마련한 ‘북한 빵공장 건립을 위한 평화장터’에도 출동해 평화공원의 의의를 알린다. “학생 때도 운동을 안 했고, 지금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조준영씨는 “일단은 기회만 닿는다면 어디든지 달려갈 작정”이라고 말했다.

이 조그만 몸에서 어떻게 이런 힘이 솟을까? 돈 안 되는 뚜뚜를 운영하는 것만도 힘에 부칠 텐데. 궁금했다. “처음엔 단순히 제 아이를 위해서 시작한 일이었어요.” 그는 12년 전의 이혼이 계기가 됐다고 했다. 네살배기 딸과 둘만 남겨지자 외로웠다. 아이도 풀이 죽은 것 같았다. 딸애에게 신나는 일을 만들어주자는 생각에, 대학 때의 전공(사진)을 살려 그림책을 슬라이드필름으로 옮겼다. 동네 아이들에게 아파트 거실을 개방하고 그림책 슬라이드를 보여주기 시작했다. 이렇게 생겨난 간이 거실극장엔 ‘파란나라’라는 이름도 붙였다. 그림책 슬라이드를 만들다 보니 어린이책에도 슬슬 관심이 가기 시작했다. 어린이도서연구회에 참여해 어린이책 공부를 시작했다. 이웃의 주부들과 함께 ‘파란어머니모임’을 만들어 동화책을 함께 읽었다. 집을 작은 도서관처럼 꾸며놓고 아이들과 엄마들을 수시로 초대했다.
그러나 경제적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한곳에만 머물러 사는 것이 힘들었다. 서울 사당동에서 분당으로, 수원으로, 부천으로 자주 이사를 다녀야 했다. 그때마다 정든 이웃과도 금세 이별해야 했고, 공들여 가꿔놓은 가정도서관도 문을 닫아야 했다. “이처럼 자꾸 이사를 다닐바엔 차라리 도서관을 이동식으로 꾸며보면 어떨까?”
버스도서관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 떠오르자 그는 당장 1종 대형면허를 땄다. 1998년이었다. 마침 적당한 중고 버스가 눈에 띄자 앞뒤 가리지 않고 덜렁 사버렸다. 2000년이었다. 그리고 함께할 사람들이 모였다. 동화그림 작가인 오치근씨가 사무국장을 맡기로 했다. 드디어 2003년. 꿈꿔온 도서관버스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지금까지 버스는 달리고 있다.

실크로드 거쳐 유럽 평화순례 꿈꾼다

“생각나는 것이 있으면 함께 참여할 사람을 찾고, 그 사람들과 같이 행동하고, 이런 일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됐어요. 우리 아이도 엄마의 이런 모습을 곁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배우나봐요. 초등학생 때 전학간 학교에서 인라인스케이트 동호회를 만든다며 회원 모집 알림판을 만들더라고요.”
그는 요즘 또 다른 꿈을 꾸고 있다. 내년에 뚜뚜를 몰고 실크로드를 거쳐 유럽까지 평화순례를 떠나는 것이다. “마침 2006년엔 세계도서관 대회가 우리나라에서 열려요. 그에 앞서 뚜뚜가 먼저 외국에 나가서 우리나라를 알려주고 싶어요. 이런 도서관이 있다는 것도 보여주고, 좋은 그림책이 많다는 것도 소개하고 싶어요. 무엇보다 분단의 상처를 안고 있는 대한민국 사람들이 얼마나 평화를 간절히 원하는지 보여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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