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지은이 유현씨… “중독성 더 강한 담배의 대체재로 쓰게 해야”
▣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대마초를 흡연한 혐의(마약류 관리에 의한 법률 위반)로 구속됐던 영화배우 김부선(42)씨가 8월10일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다음날 TV를 보니, 이날 법원에 출두하던 김씨에게 기자들이 몰려들어 “기분이 어떻냐”고 묻고 있었다. 김씨는 다소 연극적인 제스처로 이렇게 받아쳤다. “(당신이라면) 기분이 어떠실 것 같으세요? 네?” 하지만 질문이 연달아 터지자 그는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울먹였다. “너무 잔인한 것 같지 않나요?” 확실히 그도 변해 있었다. 1983년 대마초사범으로 처음 잡혀갈 때만 해도 그는 카메라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세운 채 호기심과 비난이 뒤섞인 세상을 지긋이 노려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그가 재판정에 출두하기 전 (유현 지음, 실천문학사 펴냄)을 읽었더라면, 어쩌면 그는 잔인한 물음표 앞에서도 눈물을 훔치지 않았을는지 모르겠다.
‘대마초. 환각을 일으키는 마약의 일종으로 대마의 잎과 꽃에서 얻는 물질. 학명 cannabis satiba(*이탈리아어체로). 마리화나라고도 한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마약’
대마초의 사전적 정의는 이렇다. 하지만 의 지은이 유현(43)씨는 대마초는 이처럼 간단히 ‘마약’으로 정의내릴 수 없으며 훨씬 더 정교하고 복잡한 국가의 억압장치(특히 미국!), 자본주의의 질서에 의해 ‘마약’으로 굳어졌다고 말한다. “본래 대마는 질기고 튼튼한 범선의 돛과 종이의 원료로서 유럽국가들에게는 전략적인 작물이었다. 19세기 들어 대마의 약리적 효과가 알려졌으며 기호품으로서 인기를 누리게 됐다. 담배와 다름없이 상용되던 대마가 일거에 철퇴를 맞은 건 듀폰 등 화학섬유회사와 목재펄프를 가공해 종이를 만들려는 제지회사의 로비에 의해 불법화됐다.” 그는 심지어 “1960년대 이후 미국과 유럽에서 진보세력들이 대마초를 피우며 보수권력에 대항했던 것도, 대마초가 평화를 상징하는 풀이었던 것도 우연이 아니”라며 “마리화나는 진보와 혁명의 상징”이었다고 주장한다.
담배가 죄악시되는 세상에서 왜 굳이 또 다른 ‘중독물질’을 옹호하는가. 세상이 온통 불만투성이인 호사가의 위악적인 외침인가, 아니면 대마에 진정 애정을 품고 있는 이론가인가. 참을 수 없는 궁금함에 8월12일 유현씨가 살고 있는 서울 강남 개포동의 아파트를 찾았다.
방안의 공기는 다른 집과 다름없이 ‘청결’했으나, 대신 재떨이엔 담배꽁초가 고슴도치처럼 우수수 꽂혀 있었다. 한눈에 봐도 그는 골초였다.
“왜 대마를 변호하기로 맘먹으셨습니까?” 20살 때부터 담배를 피워온 그는 22년간 담배와 뗄려야 뗄 수 없는 애증 관계로 묶여 있었다고 했다. “금연 성공률은 300분의 1입니다. 국가에선 공포를 주입해 담배를 끊으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론 국가적 산업으로 관리하고 있죠. 왜 이처럼 끊기 힘든 담배는 합법화하는데 대마초는 금지하는지 의문이 생겼고, 대마초가 언제부터, 왜 불법화됐는지 연원을 캐보게 됐습니다.”
대마초 허용하자 흡연률 더 낮아져
그는 특히 암스테르담을 여행하며 ‘선진적인’ 대마초 정책을 접한 뒤 3년 넘게 각국의 대마초 관리 실태와 이미 나와 있는 대마의 성분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조사·연구해왔다. 그렇다고 그가 마리화나만 ‘직업적’으로 파고 있는 건 아니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2002년 10월 정보기술(IT)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 소설가로 변신했다. ‘유재현’이라는 필명으로 2권의 소설과 최근엔 라는 열대과일 맛기행기를 펴냈다. 그러니까 ‘유현’이라는 이름은 진짜 그의 이름인 셈인데, 왜 은 유독 실명을 썼냐는 물음에 그는 “이런 책일수록 맘먹고 진짜 이름을 써야 할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대마초에 대한 그의 변을 간추려보자. “보통 마리화나의 해악에 대해서는 고전적인 이론이 있다. 이른바 ‘관문이론’이라는 것인데, 마리화나 자체가 다른 약물에 비해 위험한 것은 아니지만 마리화나를 피우게 되면 결국 다른 약물, 코카인이나 헤로인과 같은 ‘강력한 약물’(hard drug)에 손을 대게 될 것이기 때문에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실제로 헤로인 사용자가 마리화나를 피운 적이 있다고 해서 마리화나 때문에 헤로인을 복용하게 된 것은 아니다. 이를 통계적으로 뒷받침하는 근거는 없다.” 그렇다면 마리화나는 ‘어느 정도로’ 위험한 것일까. 유씨는 각국의 연구사례를 인용하며 담배나 술보다 마리화나가 중독성이 낮다고 말한다. 가령 1999년 미국 의약연구소(AMI) 보고서는 담배와 술이 각각 중독 비율이 32%, 15%인 데 비해 대마초(해시시 포함·대마 암그루의 꽃 이상과 상부의 잎에서 채취한 것)는 9%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중독성이 약하다면 ‘대마초사범’들은 왜 반복해서 잡히는 걸까? 김부선만 해도 전과 5범인데? 이 대목에서 그는 다소 알쏭달쏭한 답을 들려주었다. “우리의 욕구 중엔 담배처럼 금단 증상 때문에 계속 찾게 되는 중독성 욕구도 있고, 밥이나 물처럼 자연스런 욕구도 있다. 대마초로 긴장을 완화하려는 욕구 또한 자연스러운 욕구가 아닌가?”
좋다. 그래도 그 자연스런 욕구, 게다가 담배보다 덜 위험하기까지 한 물질을, 우리나라를 포함해 대다수 국가들이 불법으로 규정하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는 거 아닌가. 혹 네덜란드의 특수 사례를 확대해석하는 것은 아닌지? “대마를 전세계적으로 불법화하는 데는 미국이 앞장선 거다. 하지만 대마에 대해 가장 너그럽다고 하는 네덜란드도 100% 합법화된 것은 아니다. 강력한 약물은 처벌을 중시하되 대마초 같은 가벼운 약물은 반(半)합법의 형태로 허용하고 있다. 하지만 ‘금지를 금지한다’는 철학에 따라 대마초를 허용하면서 오히려 네덜란드에서 대마초 평생 사용률은 5%대로 떨어졌다. 네덜란드식 모델에 자극받은 베네룩스 3국을 포함해 포르투갈, 스위스 등에선 대마초를 점차 ‘소프트 드러그’로 규정하고 단속을 하지 않거나 체포돼도 기소하지 않는 등 가벼운 처벌을 내린다.”
그는 대마초를 ‘하드 드러그’와 동일한 반열에 놓을 것이 아니라, 담배와 함께 놓아 담배의 대체재로서 합법화하는 것이 옳다고 결론지었다.
대마를 손에 들 때의 마음가짐이 중요
마지막으로, 과연 대마초를 히피들이 신봉하듯 ‘기쁨과 행복, 깨달음의 풀’로 믿고 있는지 궁금했다. “대마의 성분은 어떤 상태를 증폭해주는 것이다. 나쁜 기분을 좋게 돌려주는 것이 아니라, 나쁜 기분은 더 나쁘게, 좋은 기분은 더 좋게 확장시킨다. 그러므로 대마를 손에 들 때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선 깨달음을 준다고 할 수 있다.”
아, 진짜 마지막으로! 취재원 보호를 기사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기자는 행여 이 인터뷰가 그를 곤경에 빠뜨리지 않을까 근심이 됐다. 그러나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대마를 소지·복용·유통시키는 자는 처벌하지만, 대마를 고무·찬양하는 이에 대해선 처벌 근거가 없다. 그래도 혹시 염려스러워 물었더니 그는 “혹 미풍양속법엔 걸릴지 모르겠다”며 이렇게 덧붙였다. “행여 이런 글을 쓰는 걸 보고 아무래도 의심스럽다며 경찰이 들이닥쳐 (약물 검사를 위해) 모근 채취를 해간다면 정말 그건 내 양심과 신체를 고문하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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