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한때 “너무 유명하고, 너무 돈이 많아 불행했다”고 한탄했던 영화계의 ‘대부’ 말론 브랜도가 7월1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살.
사생활을 유난히 중시했던 것으로 알려진 그는 변호사에게 사망 원인까지 공개하지 말 것을 부탁하고는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먼 길을 떠났다. 사람들은 그의 평소 지병인 폐질환이 그를 죽음에 이르게 했을 것이라고 짐작할 뿐이다. 20세기 최고, 최대의 영화배우로 불리던 그의 죽음은 전세계 영화팬들에게 큰 슬픔을 안겼다. 그는 죽기 1주일 전까지도 마지막 출연작품이 될 대본을 다듬고 있었다. 이 영화는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미국에 간 한 튀니지 남자를 통해 브랜도 자신의 삶을 그리고 있다. 그는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 후보에만 8차례 올랐고, 그 가운데 (1954)와 (1972)로 두 차례 남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그의 지나간 화려한 행적들 가운데 유난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미국 땅의 원주민이면서도 가장 소외를 받고 있는 아메리칸 인디언들의 권익 보호를 위해 애써온 점이다. 브랜도는 수십년 전부터 인디언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함께 투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말론 브랜도가 살아생전 인디언들에게 보여준 관심과 애정을 회고하며 그의 죽음을 슬퍼했다고 외신들은 앞다퉈 전했다. 1960년대 말에는 워싱턴주를 방문해 인디언들과 함께 광고에 출연하며 이들에게 낚시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또 1970년대에는 사우스다코타주 운디드니에서 인권 침해와 조약 위반을 둘러싸고 연방정부쪽과 싸움을 벌이던 인디언들을 돕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기부금을 내기도 했다. 1973년에는 오스카상 수상을 거부하며, 대신 시상식장에 사신 리틀피더(Sasheen Littlefeather)라는 여성 대리인을 보내 할리우드 영화계의 인디언 멸시를 맹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하는 등 인디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몸소 보여줬다.
무릇 유명인들의 삶이 그랬듯이 그의 인생도 그리 순탄하지 않은 듯하다. 말년에는 빚에 쪼들리기도 했고, 가정의 불행도 잇따랐다. 아들 크리스천이 1990년 이복 여동생 샤이앤의 약혼자를 살인한 혐의로 기소됐고, 이후 샤이앤이 충격으로 자살하는 비극을 지켜봐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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