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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아] 빨치산의 피가 낳은 ‘행복’

등록 2004-07-09 00:00 수정 2020-05-03 04:23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아버지는 전남도당, 어머니는 남부군 소속 빨치산이었다. 1990년 로 문단에 얼굴을 내민 뒤, 최근에야 첫 소설집 을 펴낸 소설가 정지아(40)씨. 원체험을 부정할 순 없지만, 이제는 ‘빨치산의 딸’이라는 ‘딱지’를 떼야 하지 않겠냐는 그에게 ‘지겨운’ 이야기들을 캐물었다. 소설이 아니라 육성으로 그의 삶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전라남도 구례군 문척면,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동네가 그의 고향이다. 무기수였던 아버지는 4·19의 열기가 뜨겁던 1960년, 밖에 나가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에 일부러 위장을 망가뜨려 병보석을 받았다. 5·16 군사 쿠데타로 꿈이 좌절된 뒤 아는 사람의 소개로 어머니를 만났다. “자본주의 질서에 적응 안 되는, 꿈은 여전하고 해볼 여력은 없는, 돈 버는 일에 관심 없고 장사해도 나쁜 물건은 안 파는” 부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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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씨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보석 기한을 넘기고 도망다니던 아버지가 체포되면서, 어머니의 삶은 더욱 무거워졌다. 정씨의 삶이라고 평탄했을 리 없다. 형사들이 뻔질나게 학교로 집으로 찾아오고, 교실 친구들의 놀림을 받으면서 ‘빨치산의 피’를 확인했다. 그러나 부모님 덕택에 글쓰기의 재미도 알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호남예술제에 시를 내라고 하는데, 시가 뭔지 알아야죠. 자식 공부를 위해선 뭐든지 하는 엄마가 대신 써줘서 뽑혔어요.” 그 다음부턴 행사만 있으면 학교에서 정씨에게 글쓰기를 시키는데,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쓰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결국 이 극성스런 교육열 때문에 동네에서 유일하게 4년제 대학에 들어갔다. 80년대 학생운동에 열중하던 정씨에게 부모님은 “네가 걸리면 운동 전체가 피해를 받는다”며 조용한 충고를 건넸다.

어머니는 요즘 “내가 왜 후회하는 것처럼 나오냐”고 따진다고 한다. 부모님과 정씨의 ‘소설관’은 많이 다르다. 부모님이 좋아하는 소설은 ‘감정의 사치’ 없는 사회주의 리얼리즘이다. 어쨌든 “현실사회주의가 몰락했다고 해서 사회주의로 대변되는 더 나은 세상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부모님의 꿈은 아직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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