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형석 기자/ 한겨레 문화생활부 nuge@hani.co.kr

박이소(본명 박철호). 1990년대 ‘박모’란 필명으로 국내 미술판에 구미 포스트모던 예술론을 본격적으로 소개했으며, 요사이 청년 작가들에게 개념미술 열풍을 몰고 온 비주류 스타작가의 이름이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작가로 출품하며 입지를 다진 듯했던 그가 지난 4월26일 새벽 심장마비로 외롭게 숨졌다는 사실이 한달여 지난 지난 주말에야 전해진 것이다.
46살에 맞은 작가의 죽음은 다분히 극적이다. 유족들의 말을 들어보면 고인은 서울 청담동 누나 집 2층 작업실에서 평소 좋아하던 재즈 음반과 포도주 병이 놓인 탁자 옆 소파에 잠자듯 앉아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주검은 화장했으나, 유골은 장지를 구하지 못해 지난 6월2일에야 경기도 파주시 기독교 묘지 안 가족묘에 안장됐다. 고인이 평소 유족들에게 미술계쪽 얘기를 하지 않아 컴퓨터 메일을 정리하다 뒤늦게 미술인들의 주소를 보고 연락했다는 저간의 사정이 미술판을 우울하게 했다. 비보를 접한 동료 작가와 기획자들은 6일 낮 파주 기독교 공원묘지에 있는 고인의 묘를 찾아 비석을 세우는 추모식으로 예의를 차렸다. 추모식에는 작가 안규철·김범씨 등 30여명이 참석했다. 기획자 이영철씨는 “작업에 관한 한 철저한 프로이던 그는 작가 지원 시스템이 취약한 우리 미술제도에 대한 번민에 늘 싸여 있었다”며 “건강이 몹시 좋지 않은 상황에서 베니스·이스탄불 비엔날레 등의 국제전 준비로 무리한 것이 명을 재촉한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홍익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 뉴욕 프랫 예술학교에서 회화를 전공한 그는 1995년 귀국 즈음엔 국내에 다문화이론과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을 선구적으로 소개하며 참여미술 진영과의 논쟁에 자양분을 제공했다. 이후 1997년 광주비엔날레 본전시와 2001년 대안공간풀 개인전, 2002년 에르메스상 수상기념전 등을 통해 냉소적인 한국적 개념미술의 전형을 개척했다. 작업실 한구석에서 발견된 작업노트에는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서쪽을 동쪽으로, 위를 아래로 만드는 것을 꿈꾸며 기존 가치 체계를 교란하는 것이 나의 관심사”라고 쓰여 있었다. 그러나 작가는 관심사를 온전히 펴보지도 못한 채 훌쩍 생을 등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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