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여성노조 이혜순 사무처장… ‘주변부 여성노동자 보호’ 기존 노조엔 무력감 느껴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최저임금을 둘러싼 공방이 또 시작됐다. 최저임금 싸움은 2002년 이후 6월만 되면 해마다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고 있다. 2002년부터 그래왔듯 한국노총·민주노총·참여연대·전국여성노조 등 23개 노동·사회단체들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는 지난 5월20일 “법정 최저임금 현실화(월 76만6140원·시간급 3390원)”를 요구하며 행동에 들어갔다. 노동부 직할기관인 최저임금위원회는 올해 9월부터 내년 8월까지 적용되는 2004년 최저임금 심의를 6월부터 시작한다.
최저임금 적용 대다수가 여성노동자
서구에서는 대통령 선거 때 최저임금 인상이 주요 공약으로 떠오르곤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이 저임금 노동자들의 실제 생계비에 견줘 얼마나 턱없이 낮은지, 최저임금을 어느 정도 올려야 노동자간 임금차별을 줄일 수 있는지에 대한 진정한 사회적 논의도 거의 없었다. 기존 노동조합운동 안에서조차 최저임금은 주요 사업대상이 아니었다. 최저임금이 청소년 아르바이트생한테나 적용되는 것으로 여길 정도로 유명무실화된 건 ‘절망적으로 낮은’ 최저임금 수준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2002년 최저임금연대가 발족하면서 최저임금은 사회적 쟁점으로 본격 등장했다. 지난 2000년 전국여성노조가 인천지역의 대학교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임금실태 결과가 밝혀지면서 최저임금에 대한 ‘뒤늦은 관심’을 불러일으켰고, 최저임금연대까지 발족한 것이다. 지난 1999년 설립된 전국여성노조(www.kwunion.jinbo.net)는 여성만을 가입대상으로 하는 전국 수준의 노동조합으로 조합원은 5천여명에 이른다. 전국에 각 지부가 있고 △중장년 청소용역 여성노동자 △학교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여성노동자(영양사·사서 등) △골프장 경기보조원 △방송사 구성작가 등이 가입하고 있다. 지난 5월28일 이혜순(40) 전국여성노조 사무처장을 만나 최저임금과 여성노동자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2000년 당시 인천지역 대학교에서 건물 청소하는 여성노동자들의 임금을 조사해봤는데, 용역회사가 재계약을 하면서 기본급을 당시 최저임금 42만1천원에 맞춰놓고서 대신 그동안 주던 상여금과 식대 3만원을 삭감했더라고요. 저임금 노동자들의 최소한의 생계임금을 보장해준다는 게 최저임금제도의 취지인데, 법이 정한 최저임금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 보니 오히려 저임금을 더 밑으로 떨어뜨리는 역할까지 하고 있던 겁니다.”
사실 최저임금은 중소영세·비정규 노동자들의 임금 가이드라인으로 악용되고 있다. 절대적으로 낮은 최저임금을 위반하지 않는 수준, 예컨대 현행 법정 최저임금(56만7260원·시간급 2510원)보다 100원 더 높은 임금을 주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들이 법을 안 지킬 수 없으니까 최저임금 수준에서 임금을 결정하는데, 청소일하는 중년 여성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받고 있는 최저임금 수준의 월급을 ‘최고임금’이라고 말해요. 그 이상 임금이 올라갈 수 없다는 겁니다.”
그런데 왜 ‘여성노조’가 다른 노동단체보다 더 적극적으로 최저임금 현실화 투쟁에 나서는 것일까?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임금격차도 문제이지만 사실 여성노동자의 저임금은 훨씬 더 절망적인 수준입니다. 남성 정규직 임금을 100%로 봤을 때, 남성 비정규직은 임금수준이 52%이고 여성 비정규직은 38%에 불과해요. 여성은 결혼 뒤 30대 중·후반으로 가면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취업하게 됩니다. 결혼·임신·출산·육아 때문에 노동시장에서 빠져나왔다가 다시 취업할 때 갈 수 있는 곳이 비정규직밖에 없어요. 한마디로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 중 대다수가 ‘여성노동자’예요.” 저임금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전체 여성노동자 중 70%가 비정규직이고, 1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 종사하는 여성이 69%를 넘는다는 수치가 그대로 보여준다.
“경제지표 버리고 절대적 액수 보장하라”
최저임금 현실화는 갈수록 심화되는 ‘여성 빈곤화’에 대한 대안 성격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여성가구주 비율은 1990년 15.7%에서 2003년 19.1%로 크게 증가했고, 2002년 기초생계비를 받고 있는 가구 가운데 55.5%가 여성가구주로 나타났다. “중장년 기혼여성 대다수가 비정규직으로 이들 상당수가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어요. 용역업체나 영세사업장들이 최저임금을 용역 낙찰가격이나 임금인상의 기준으로 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최저임금 인상은 여성에 대한 성차별을 완화하는 역할도 하게 됩니다.”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직 급증이 사회적 문제로 제기됐지만, 여성노동자의 경우 비정규직 비율은 외환위기 이전에 이미 50%를 넘었다. “80∼90년대 산업 구조조정으로 섬유·전자산업에서 여성노동자 해고가 다반사로 일어났잖아요. 그러면서 여성 비정규직은 전 직종에서 빠른 속도로 확산됐어요. 은행만 봐도 처음에는 남성과 같이 뽑아놓고도 여성은 창구업무 등 비교적 단순업무에 투입해놓고 나중에 구조조정이 닥치면 가장 먼저 해고했죠. 특히 1998년 근로자파견법이 도입되면서 제조업·사무업종 여성노동자들이 대거 파견근로로 전환돼 근로조건이 후퇴하고 고용이 불안해졌습니다. 최저임금 수준의 여성노동자가 급증한 겁니다.”
현행 법정 최저임금은 최저생계비는커녕 5인 이상 상용직 노동자 전체 임금의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그래서 최저임금 영향률(전체 노동자 대비 최저임금 적용 대상자)도 2.2%(약 30만명)에 그치고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결정한 최저임금 인상률은 노동조합의 평균 임금인상률보다도 낮아요. 국민소득 대비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수준입니다. 그러다 보니 최저임금 영향률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합니다.” 최저임금연대가 요구하는 월 76만6140원은 5인 이상 상용직 노동자 월평균 정액급여 153만원의 50% 수준이며, 통계청 3인 가구 생계비 211만원의 26.8%에 해당한다. 최저임금을 이 수준으로 올릴 경우 영향률은 8.7%(약 120만명)로 확대된다.
최저임금 현실화를 위해서는 적정 최저임금 수준에 대한 사회적 기준(5인 이상 사업체 노동자 임금의 2분의 1)을 마련해야 한다. “다른 나라는 최저임금을 전체 노동자 임금의 50% 수준으로 정하고 있어요. 우리도 최저임금에 대한 이런 기준을 우선 정해야 합니다. 경제성장률이든 물가상승률이든 경제지표들은 그 뒤에 고려해야 최저임금을 현실화할 수 있습니다. 또 지난해 대비 몇%를 인상할 것인가를 놓고 노·사·공익위원들간에 절충이 이뤄지는 논의 테이블 속에서는 최저임금의 근본 취지인 최저생계비 보장, 절대적 저임금 해소 같은 문제가 사라지고 맙니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공익위원 9명은 노·사가 각각 제출한 최저임금 요구안이 팽팽히 맞설 때 절충을 시도한다. 하지만 막판에 공익 조정안을 내놓고 표결을 통해 최저임금을 결정하기 때문에 사실상 최저임금을 결정하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한다. “공익위원들을 보면 상당수가 노동자 빈곤이나 임금격차 해소 같은 최저임금의 의미에는 별 관심이 없어요. 물가상승률 등 몇 가지 경제지표만 갖고 최저임금을 생각하기 때문에 최저임금이 이렇게 낮은 수준에서 정해지는 겁니다. 공익위원 선출 권한을 정부에서 노사단체로 바꿔 노사단체가 공익위원을 추천해야 중립성을 보장할 수 있습니다.”
기존 노동조합이 여성노동자들을 가입대상에서 빼고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여성노조를 따로 만들었을까? “임금·노동 조건이 열악한 주변부·취약 노동자들은 대다수가 여성입니다.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여성을 우선 해고하는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등장했지만 기존 노동조합이 있어도 이를 막아내지 못했고, 그런 상황에 대해 여성노동자들이 무력감을 느끼다가 결국 여성노조를 조직하게 됐습니다.” 이씨는 대학졸업 직후인 1986년부터 노동운동에 뛰어들어 전국노동조합협의회 산하 서울지역노동조합협의회(서노협)에서 일하다 민주노총 서울본부를 거쳐 전국여성노조로 옮겼다.
모성보호 놓고 정부와 한판 붙자?
“현재 노동조합에 가입한 여성노동자는 5∼6%에 불과합니다. 여성노동자는 여러 곳에 흩어져 있고 모여봤자 영세사업장에 있어요. 특히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임신·출산휴가·육아휴직 도중에 계약 해지가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휴가를 쓰는 도중에 재계약 기간이 되면 ‘계약 만료’를 이유로 해고당하는 겁니다. 모성보호의 경우 산전·산후 휴가(90일)도 비정규직은 계약 해지가 뒤따를까봐 사용하지 못하고, 영세사업장 여성노동자들도 사용자들이 기피해 못 쓰는 형편이죠.”
잠시 생각하더니 그가 말을 이었다. “노동조합 활동가들이 회의를 하다 보면 가사·육아 등을 구체적인 의제로 꺼내기가 무척 힘들어요. 남성 중심 노동조합의 ‘조직문화’ 때문인 것 같은데, 그러다 보니 여성노동자 모성보호를 놓고 정부하고 한판 붙는 일도 별로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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