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 내 성경험 얘기 나눈 동성애자들… “남성간 성관계 무조건 처벌은 무리”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로맨스냐 성폭력이냐’
동성애자의 군대 내 성경험을 둘러싼 논란이다. 5월16일 서울 낙원동 민족예술인총연합 강당에서는 동성애자들이 스스로의 목소리로 군대 내 성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가 주최한 토론회 ‘군(軍) 로맨스-친밀성과 폭력의 경계짓기’였다. 발제는 성폭력 상담소 권김현영 활동가가 맡았다. 그는 올해 국가인권위의 의뢰로 벌어진 ‘군대 내 남성간 성폭력·성의식 실태조사’에 참여했다.
커밍아웃했다고 정신병원 보내
권김 활동가는 우선 군대 내에 뿌리 깊은 동성애 혐오증과 성폭력 피해자 되기의 어려움에 대해 설명했다. 동성간 성폭력 가해자들이 대부분 스스로를 이성애자라고 ‘떳떳하게’ 주장하는 데 비해, 피해자들은 피해 사실을 말하기를 꺼릴 뿐 아니라 성폭력 당시 자신의 몸의 반응을 돌아보면서 성 정체성에 대한 고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성폭력을 ‘성군기 문란 또는 위반사고’로 보는 관점에 대해 비판했다. 현재 군대 내 성폭력 문제가 ‘인권’의 관점이 아니라 ‘성군기 문란 또는 위반사고’ 차원에서 다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성군기 문란’이라는 관점으로는 강제적인 성행위와 동의에 기반한 성관계를 ‘추행’으로 차별 없이 처벌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고 강조했다. 현행 군형법은 이른바 ‘계간’ 조항을 통해 남성간 성행위를 ‘동의’ 여부에 관련 없이 처벌하게 돼 있다.
권김 활동가의 발제에 이어 남성 동성애자들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순서가 이어졌다. 닉네임이 ‘피터팬’인 30대 남성은 “나의 군대 경험을 돌아보면 성폭력 가해와 피해의 경험이 함께 있다”며 “초년병 시절 피해 경험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가해를 할 때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휴전선 최전방의 감시초소(GP) 부대에서 근무했다는 박아무개(33)씨는 “군대 내 성관계에 모두 폭력이 개입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나 자신도 군대 안에서 애틋한 로맨스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오히려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더 조심하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최준원(29)씨는 자신을 챙겨주던 고참 사병이 어느 날 자신의 성기에 손을 대 당황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그는 “동성애자이기 때문에 오히려 동료 사병과 친밀한 관계를 만들지 않으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부대에서 동성애자라는 사실이 알려져 성희롱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닉네임이 ‘핑크로봇’인 20대 중반의 남성은 “커밍아웃을 하자 정신병원에 보내졌다”며 “부대에 돌아와서도 상관으로부터 ‘어떻게 남자들끼리 성관계를 맺느냐’ ‘나는 네 마음에 드느냐’ 등 지속적인 성희롱을 당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동성애자의 군대 ‘추억’은 매우 다양하다. 지난 4월 남성 동성애자 사이트 ‘이반시티’에서 벌어진 라이브폴은 군대와 동성애자의 관계를 유추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가장 그리운 시절은’이라는 질문에 대해 ‘군대시절’(15%)이라는 응답이 ‘고등학교 때’(35%)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뜻밖에 군대에 관해 ‘좋은’ 추억을 가진 동성애자들도 적지 않은 것이다. 이날 토론에 참석한 한 동성애자는 “남성 동성애자에게 군대는 천국 아니면 지옥”이라며 “하지만 군대 안의 동성애 혐오적인 문화 속에서는 어떤 동성애자라도 상처를 받기 마련”이라고 지적했다.
“외국엔 동성애자 군인 안내서 있다”
동성애자들의 사례를 들은 권김 활동가는 “성폭력이 친밀감으로 포장돼서는 안 된다”면서도 “동의에 기반한 로맨스와 강제적인 성폭력은 구분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동성애자가 문제가 아니라 성폭력과 폭력의 ‘경계’조차 설정하지 못하는 군대가 문제라는 것이다. 하지만 국방부는 지난해 성폭력 문제가 불거진 이후 ‘성적 이상성향자’ 색출을 내용으로 담은 성군기 위반대책을 내놓았다. 권김 활동가는 “네덜란드의 경우는 동성애자 군인을 올바르게 이해하도록 돕는 가이드북까지 제작해 배포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