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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쑨헝] 노래하리, 농민공을 위하여…

등록 2004-05-13 00:00 수정 2020-05-03 04:23

베이징= 박현숙 전문위원 strugil15@hanmail.net

쑨헝(孫恒·29)은 베이징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최고의 스타로 불린다. 5월1~7일의 긴 노동절 연휴에도 그는 쉴 새 없는 공연 요청에 행복한 비명을 질러야 했다. 연휴 중에도 하루에 몇 차례씩 ‘농민공’(농촌에서 도시로 돈벌러 올라오는 농민들)들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불렀다.

쑨헝은 지금 ‘농민공 친구들의 집’(農友之家)이라는 중국의 비정부기구(NGO)에서 전업간사로 일하고 있다. 1998년 베이징에 오기 전까지 고향인 허난 카이펑(河南 開封)의 한 중학교에서 음악교사를 했다. 사범대학에서 음악교육을 전공한 그의 원래 꿈은 베이징에서 ‘폼나는’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2년 만에 교사 생활을 접고 기타 하나 달랑 메고 무작정 베이징으로 상경했다. 그 뒤 그는 술집 밤무대 가수 생활도 하고 지하도 유랑가수 노릇도 해보았다.

하지만 어느 날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농민공들을 위해 노래 공연을 한 이후 그의 인생은 ‘확’ 달라졌다.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자신의 노래에 열광하는 그들을 보며 쑨헝은 문화생활에 목말라하는 농민공들을 위한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다. 그는 2002년 5월1일 ‘일하는 청년들의 문예연출단’을 만들었다. 자신들도 먹고살기 위해 막노동을 하면서 틈틈이 농민공들을 위해 노래와 연극 등 문화공연을 펼쳤다. 이들에 대한 입소문이 나면서 공연 요청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홍콩의 유명한 빈민구제 NGO인 러스후이(樂士會)는 쑨헝과 그의 문화연출단을 후원하기로 결정했다. 올해 2월에는 당국으로부터 ‘농민공 친구들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NGO 비준을 받았다.

주말과 밤에는 농민공들을 위해 법률지식과 컴퓨터를 가르치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은 작은 신문도 창간했다. 곧 농민공들의 애환과 권익 향상을 담은 전문 노래 음반도 나온다. 쑨헝은 이를 첫 ‘문화상품’이라고 말한다. 올해 1월 인도에서 열린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해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일하는 많은 세계 시민단체들을 만났다. 쑨헝은 앞으로 자기가 걸어가야 할 길이 무엇인지 명확히 깨달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농민공들을 위한 자원봉사자, 그들을 위해 노래하는 문화선봉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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