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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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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연대, 낮은 곳에 임하다

등록 2004-01-30 00:00 수정 2020-05-03 04:23

동북아 평화 정착과 동남아 빈곤문제에 대응하는 지역 네트워크를 조심스럽게 모색

지구촌의 가난한 자들, 억압받는 자들, 소수자들 모두에게 열려진 공간. 이슬람, 불교, 기독교,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와 문화가 허용되는 공간. 흙먼지 부는 인도의 바닥에서 한껏 부딪혔던 세계사회포럼 축제가 성공적으로 끝났다.

미얀마, 티베트, 아체, 달리트…

축제 기간인만큼 군부독재 아래 국경지대로 쫓겨난 미얀마인들도, 거대한 중국 정부의 압박에 소수민족의 설움을 받은 티베트인들도, 그리고 1천여명의 못숨을 빼앗긴 인도네시아의 인권 사각지대 아체인들도, 아무도 그들과 접촉하지 않는다는 인도의 최하층 계급인 달리트들도 모두 함께 어우러져 해방의 춤을 추었다. 축제가 열린 인도 뭄바이 북부, 고레가온 지역의 네스코는 대단위 섬유공장 지대였으나 자본의 세계화에 많은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내쫓기고 결국 문을 닫은 곳으로 세계사회포럼의 상징적인 의미를 더했다.

사실 이번 세계사회포럼이 열리기 전까지는 적지 않은 우려가 있었다. 처음 세계사회포럼이 개최된 브라질 남부의 포르토알레그레는 중산층 중심의 도시이며, 참여예산을 처음 실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던 진보적이고 자치적인 도시다. 여기서 1만여명이 모여 시작된 세계사회포럼은 3년 동안 성공적으로 개최되면서, 지난해에는 무려 10만여명의 진보적인 사회운동가들이 참여해 세계진보운동의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반면 세계적으로 유명한 슬럼지역인 다라비가 있는 가난한 도시, 뭄바이에서 과연 제대로 행사를 치를 수 있을지 적지 않은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그런 우려는 오히려 가난한 아시아 대중들을 거리에서 직접 만날 수 있고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내야 한다는 포럼의 전환점을 시사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실제로 이번 포럼에 참가했던 150여명의 브라질 참가자들은 중산층의 깨끗한 도시인 포르토알레그레보다는 가난한 대중들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리우 또는 상파울루에서 다음 대회를 열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또한 이번 인도 세계사회포럼은 2006년에 아프리카에서 세계사회포럼이 열리는 등 세계사회포럼이 대륙별로 열리도록 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재정적으로 보아도 이번 대회의 재정 담당을 했던 미나르 핌플은 전체 행사 지출 예산 2400만달러에서 30만달러의 수입이 부족했음에도, 영국해외기금(DFID)과 포드재단의 지원을 거부했던 점을 자랑한다.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는 아시아 지역의 다양한 종교와 문화 그리고 경제 문제에서부터 인권, 소수민족, 갈등 등이 드러났지만 더 크게 본다면 평화와 빈곤 문제에 대한 세계사회운동 진영의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데 일치하였다. 이번 포럼이 아시아에서 열렸기에 볼 수 있었던 내용을 살펴보면 중국의 인권문제를 제기했던 중국 노동자단체들, 그리고 대회 마지막 날 파키스탄인들의 특별공연 등 인도조직위의 파키스탄 참가자들에 대한 적극적이고 다양한 배려가 보기 좋았다.

각개약진식의 논의 한자리에 모아

타이에서는 팍문댐과 관련해 아시아 환경문제에 미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문제 그리고 인도네시아, 필리핀의 개발 프로젝트에서 일본의 해외개발원조기금(ODA)과 국제은행(JBIC)의 무분별한 개발이 미치는 영향이 다뤄졌다. 인도네시아 사회포럼에서는 동남아시아 참가자들과 함께 이라크 전쟁 이후의 동남아 사회의 변화, 정치적인 개혁,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에 대해서도 폭넓게 의견을 나눴다. 인도네시아 사회포럼은 오는 6월에 처음으로 국내 전체 사회운동 진영이 함께 포럼을 열 계획이다.

인도 사회운동의 내부 사정을 돌아보면, 그동안 노동운동에서부터 대중운동 내부에서 갈라질 때로 갈라진 대중운동 내부와 사회운동을 다시 연결하는 고리가 필요하다는 것이 절실해 보인다. 인도의 대표적인 사회운동 연대체계인 인도사회포럼(INSAF)은 그동안 다양한 목소리에 눌려 오히려 침체되었었다. 그러나 이번 포럼을 통해 노동대중운동과 지역사회운동이 어떻게 만날 것인가에 대해 다시 토론할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번 사회포럼의 특징으로는 이라크 전쟁 이후에 열린 탓에 어느 때보다 전쟁 반대의 목소리와 미국의 일방적 독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한국, 일본의 참가자들이 동북아 평화 정착을 위한 전쟁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고, 또한 세계화가 아시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집중적인 논의가 주류를 이루었다. 그러나 동시에 일주일 동안의 짧은 축제는 곧 아시아 사회운동이 향후 다양한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논의하는 출발점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동안 남미, 유럽, 아프리카에 비해 세계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는 아시아는 세계화에 맞서는 지역블럭 네트워크를 논의하는 데 한계를 보여왔다. 동북아, 동남아 그리고 서남아시아가 각개약진식의 논의를 간헐적으로 해왔지만, 거대 중국과 경제대국 일본을 중심으로 아시아 경제권을 묶으려는 논의 속에 정작 실속 있는 대화를 아시아 차원에서 해왔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다행히 ‘포커스’에서 준비한 세계화와 아시아개발은행에 대한 다양한 문제제기는 아시아 지역 사회운동에 새로운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동시에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3(한국·일본·중국)’을 축으로 하는 동아시아 경제 공동체에 대한 아시아 시민사회운동의 대응 또한 주요한 과제로 드러났다. 또한 기존의 말잔치 포럼 형식을 넘어서 새로운 대화와 토론, 그리고 대중문화가 어떻게 사회포럼에 자리잡아야 할 것인지도 해마다 있는 아시아포럼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동남아 중심의 동아시아 포럼으로

이번 세계사회포럼을 계기로 아시아포럼에 대해 소극적인 입장을 취했던 아시아의 주요 사회단체들이 다양한 형식의 모임이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동남아시아 포럼을 중심으로 아시아포럼의 논의가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중국 사회가 아직은 시민사회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고 일본의 각개약진식의 운동이 지속되는 한 사회운동의 포괄적인 단위로의 동북아 포럼은 당분간 이뤄지기 힘들어 보인다. 반면 인도네시아, 필리핀, 타이 등 이미 지역사회운동이 깊게 뿌리를 내리고 있는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동북아를 포함한 동아시아 포럼이 자리잡는 게 순서일 듯하다. 이렇게 본다면, 주요 과제는 당분간 동북아의 평화정착 논의와 동남아의 세계화에 따른 빈곤 문제가 공동의 관심사로 떠오를 전망이다.

또한 자연스럽게 동북아의 평화 정착을 위한 한반도 문제 그리고 동남아시아에서는 버마 문제가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버마 국경지대의 난민들 지원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던 국제 흐름이 최근에는 버마 내부의 민주화와 함께 6개 종족간의 분쟁을 어떻게 풀 것인가도 주된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번 인도 포럼은 진정한 의미의 ‘피플 포럼’(People Forum)이라 불릴 만큼 인도의 다양한 계층의 참여가 돋보였다. 미흡한 시설과 복잡한 교통, 흙먼지가 하루 종일 부는 거리가 오히려 정겹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야말로 가난한 민중들의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인도의 모습에서 세계사회포럼이 진정 출발해야 할 바닥의 모습을 그대로 증언한 셈이었다.

브라질의 깨끗한 도시 포르토알레그레에서 수많은 석학들과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사람들을 만나는 것에 들떠 있거나 좀더 편한 호텔에서 국제회의를 했던 이들에겐 그리 달갑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진정 아시아 사회운동의 연대는 이렇게 ‘낮은 곳’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뭄바이= 글 · 사진 나효우 전문위원 nahyowoo@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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