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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그라질 수 없는 ‘싱크홀의 공포’

서울시 ‘석촌 지하차도 도로함몰’ 중간조사 결과 발표 “싱크홀 원인은 제2롯데월드 공사 아닌

9호선 지하철 공사 때문”… ‘싱크홀 집중 발생’ 송파구 일대에 대한 정밀조사와 안전대비책 필요해
등록 2014-08-20 14:51 수정 2020-05-0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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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복판에 동굴이 나타났다.

도시 괴담이 아니다. 서울시가 지난 8월14일 내놓은 ‘석촌 지하차도 도로함몰’ 중간조사 결과를 보면 그렇다. 앞서 8월5일 서울 송파동 지하철 8호선 석촌역 부근에서는 석촌 지하차도 주변 도로가 주저앉는 일이 벌어졌다. 갑작스러운 땅 꺼짐 현상인 이른바 ‘싱크홀’(Sinkhole)의 등장이었다. 도로 한가운데 나타난 가로 2.5m, 세로 8m, 깊이 5m의 싱크홀에는 곧바로 덤프트럭 11대 분량의 토사(약 140t)가 채워졌다.

그러나 주민들의 ‘공포’는 토사로도 채울 수 없었다. 서울시는 곧바로 박창근 관동대 토목학과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는 전문가·학자 등 10명의 조사단을 꾸렸다. 차량이 달리던 석촌 지하차도 일대를 막고 진행한 조사에서 조사단은 길이만 80m, 폭 5~8m, 깊이 4~5m에 이르는 빈 공간을 발견했다.

토사 140t으로 채운, 도로 한복판 ‘동굴’

지하차도에서 약 4~5m 아래에 생긴 이 공간은 조사단이 발견했을 때 이미 천장 부분이 주저앉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일반적인 싱크홀 발생 원인으로 지목돼온 상하수도관부터 살펴보던 조사단은 별다른 원인을 발견하지 못하자 지하차도 밑바닥의 시추 조사를 벌여 이 공간을 찾아냈다.

이날 조사단은 약 일주일에 걸친 현장 조사 결과 “(싱크홀 발생 원인이) 지하철 9호선 3단계 건설을 위해 석촌 지하차도 하부를 통과하는 실드(Shield) 터널 공사가 원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실드 공법은 터널을 뚫는 공법 가운데 하나로, 원통형 강재를 회전시켜 굴처럼 땅을 수평으로 파 들어가면서 이때 나온 토사·암석도 잘게 부숴 내보내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석촌 지하차도가 지나가는 송파구 백제고분로 구간에는 삼성물산이 시공사로 참여하고 있는 지하철 9호선 3단계 건설 공사가 진행 중이다. 조사단은 “동공이 발생한 석촌 지하차도 구간은 지하수에 취약한 충적층(모래·자갈)이 두껍게 자리한 구간으로 수위 저감시 침하(내려앉거나 꺼짐)가 발생할 우려가 높은 지역인 것으로 확인됐다. 조사가 끝나지 않아 정밀한 추가 조사를 시행할 계획이다”라고 덧붙였다.

비록 중간조사 결과이긴 하지만, 정작 서울시 발표로 ‘공포의 싱크홀’에서 벗어난 건 롯데였다. 서울 잠실역사거리에 지하 6층, 지상 123층 규모의 국내 최고층 건물인 제2롯데월드 타워를 짓고 있는 롯데는, 지난해 말부터 공사현장 주변에 있는 석촌호수에서 나타난 물 빠짐 현상과 최근 송파구 일대에서 연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지반 침하 현상의 주요 원인으로 의심받아왔기 때문이다. 석촌 지하차도에서 싱크홀이 발견된 다음날, 롯데건설은 기자들에게 제2롯데월드 타워의 하층부를 공개하고 “공사현장 주변에서 잇따라 발생한 싱크홀과 석촌호수의 수위 저하 등에 대한 우려가 있어 원인을 밝히고자 3개 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긴 상태이며, 그 결과가 나오면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씻기지 않는 제2롯데월드 논란

롯데가 송파구 싱크홀 발생의 원인이라는 의혹을 받게 된 건, 앞서 2009년 3월부터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에서 25~37m를 굴착하는 터파기를 시작한 뒤부터다. 당시 공사현장에서는 하루 평균 지하수가 300t가량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애초 롯데 쪽이 제2롯데월드 건축 허가 과정에서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에서 “흙막이 공법을 시행하면 지하수 유출을 하루 최대 163t까지 줄이고 주변 지반 침하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본 것보다 훨씬 벗어난 내용이었다. 서울시가 의뢰해 지난해 12월 학계가 작성한 ‘석촌호수 수위 저하에 대한 전문가 자문회의 결과 보고서’를 보면, 한강에서 끌어온 석촌호수의 수량이 2011년 연간 47만7390t에서 2013년 1~10월에만 65만3330t으로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지하수의 흐름을 통해 제2롯데월드 공사현장으로 석촌호수의 물이 빠져나간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올 법했다. 당시 자문단은 “분석자료 근거는 롯데 쪽에서 제공한 것으로 신뢰성이 낮으므로 정밀조사와 함께 석촌호수·제2롯데월드 주변 지역의 유출량 등을 송파구가 직접 확인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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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서울시의 중간평가가 그동안 제2롯데월드를 둘러싼 논란을 누그러뜨리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석촌 지하차도의 싱크홀에 대한 조사만 이뤄졌기 때문에, 최근 벌어지고 있는 싱크홀 현상을 파악하려면 송파구 일대에 대한 면밀한 조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서울시 조사단 위원장을 맡은 박창근 교수는 “석촌호수의 수위에 따른 지반 침하 영향에 대해서는 거리 등을 감안하면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앞으로 조사단이 정밀조사를 해서 명확한 관련성을 밝힐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최근 벌어지는 싱크홀 현상이 제2롯데월드를 짓는 롯데, 또는 지하철 9호선 공사를 시공하고 있는 삼성물산의 실수인지를 따지기보다는, 송파구의 지질 특성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공사 허가를 해온 서울시의 안일함을 지적해야 한다는 비판도 있다. 과거 한강 본류가 지나가는 지역이던 석촌호수 인근에는 모래과 자갈이 두껍게 쌓여 있기 때문에 제2롯데월드·지하철 9호선의 굴착 공사가 이어지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충분히 내다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1998년 서울시의 의뢰로 서울 전역의 지반 지질 상태를 조사해 ‘서울의 지반정보 관리시스템 개발연구 종합보고서’를 만든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서울시가 싱크홀이 발생한 서울 송파구 지역의 지질 자료를 충분히 가지고 있었음에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제2롯데월드나 지하철 9호선 공사만 본다면 독자적으로 완벽해 보이는 공사라도 이러한 공사가 중첩될 때 연약한 지반에서 나타날 현상에 대비해야 한다. 송파구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어쩌면 그동안 제대로 된 자료 없이 진행한 난개발의 결과로 볼 수 있다.”

최근 송파구에서 발견된 싱크홀만 5개

그동안 서울에서 싱크홀이 등장한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서울시가 집계한, 최근 4년 동안 발생한 가로·세로 각각 2m가 넘는 싱크홀은 모두 13개에 이른다. 상하수도 누수·파손, 도로의 장기간 압력 등 그 원인도 다양했다. 그러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최근 송파구 일대에 발견된 싱크홀만 5개에 이른다는 점이다. 이처럼 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싱크홀이 나타난 경우는 없었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수많은 경미한 사고 또는 사고의 징후가 반드시 존재한다는 ‘하인리히의 법칙’을 떠올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석촌 지하차도의 동굴이 보내는 경고를 제대로 읽을 때다.

김성환 기자 hwan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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