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면 때마다 큰 사회적 논란 되는 경제인 사면, 사회봉사명령 받은 정몽구·김승연 회장의 사면에 관심
▣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정부가 재계에 ‘화끈한’ 8·15 선물을 내놓을 수 있을까. 경제5단체들이 최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등을 포함한 기업인 100여 명의 사면복권을 건의하고 나섰다. 정 회장은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시간을 다 채우지 못했다는 점에서, ‘보복폭행’ 사건의 김 회장은 사면 대상으로 언급되는 경제사범들과 죄질이 다르다는 점에서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또 현대건설 사장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인연이 남다른 이내흔·김윤규씨도 명단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눈길을 끈다.
△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왼쪽)과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모습. 이명박 대통령은 당선인 신분이던 지난해 12월28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경제인 간담회에서 당시 사회봉사 명령을 수행 중이던 김 회장에게 “요즘 열심히 하시더라”는 인사말을 건넸고, 정몽구 회장에게는 “여수 엑스포 유치하느라 수고 많이 하셨다”고 격려한 바 있다. (사진/왼쪽부터 한겨레 김진수 기자·사진공동취재단)
“경영 풍토 때문에 어쩔 수 없었으니…”
물밑에서 거론되던 재계 총수들에 대한 사면 논의가 공식화된 것은 지난 7월25일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의장이 제주 하계포럼 행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경제5단체가 공동으로 경제인 사면 건의를 준비 중”이라고 밝히면서부터다. 사면 건의 대상에 대해 손 회장은 “지난해 말 재계에서 사면 건의를 한 경제인이 76명인데, 이 중 8명이 사면됐다”며 “나머지 68명에다 그 이후에 형이 확정된 사람 몇 명이 추가될 것 같다”고 말했다. 올 들어 유죄가 확정돼 새로 명단에 든 재계 인사들은 최태원 SK그룹 회장, 손길승 전 SK 회장, 유상부 전 포스코 회장, 이내흔 현대통신 회장, 김윤규 아천글로벌코퍼레이션 회장 등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8·15와 연말에 경제5단체가 청원을 넣었지만 사면 대상에서 제외된 박건배 전 해태그룹 회장, 장치혁 전 고합 회장, 장진호 전 진로회장, 최원석 전 동아건설 회장, 최순영 전 신동아그룹 회장 등도 포함됐다”고 전했다.
8·15 광복절에 대규모 사면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어느 때보다 높다. 최근 경제5단체가 정부에 1차로 제출한 사면 청원 대상이 100명 가까이 되고, 지난 7월 말까지도 일부에서 ‘나도 끼워달라’는 추가 요청을 계속 넣어왔다는 점은 이런 기대 수준을 방증한다. 이현석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경제를 재생시키려면 기업 의욕을 불러일으킬 필요가 있고, 올해로 건국 60주년도 됐다”면서 “그동안 정치 자금이라든가 경영 풍토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경제사범이) 된 측면이 있으니, 사면을 통해 이분들이 전면에 나서 경륜·경험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제5단체의 핵심 관계자 중 한 명은 사견을 전제로 “국민 감정이 변수이기는 하지만 한동안 대규모 경제인 사면이 없었다는 점에서 이번 8·15에 기대가 큰 것이 사실”이라며 “마침 정부에서 오는 9~10월께 ‘기업가 정신’ 주간을 만든다는 소문이 들리는데, 정부의 대사면과 더불어 재계 총수들의 일자리 창출 약속 등이 이뤄진다면 모양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몽구, 남은 100여 시간을 다 채우지 못할 듯
중소기업계의 움직임도 예년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7월16일께 벤처협회, 중소기업기술혁신협회(이노비즈협회), 한국여성경제인협회 등 중소기업 관련 단체들은 일제히 회원사들에 공문을 보냈다. 광복절을 맞아 과거의 잘못된 관행으로 처벌받은 경제인 등에 대해 경제5단체 공동으로 특별사면복권 청원을 추진하니, 성명·회사명·처벌사유 등을 적어 7월17일 오후 4시까지 회신하라는 내용이었다. 한 중소기업 단체 임원은 “지금껏 사면 청원이 있을 때 소리소문 없이 진행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이번엔 대한상의의 요청이 급박한데다 사면 폭도 클 것으로 판단돼 ‘서류’를 남길 만큼 급히 진행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사면 청원 대상으로 꼽힌 대표적인 그룹사 총수들은 적격성에 대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이행하고 있는 정몽구 회장은 지난 6월 말 첫 봉사활동에 들어간 지 한 달여 만에 전체 봉사 시간의 절반인 150시간을 넘겼다. 매주 화·수·목요일 9시간씩 참가하는 것은 물론, 조속한 경영 복귀를 위해 ‘주말 봉사’에까지 나선 결과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바쁜 경영 일정 등을 감안할 때 8·15 특사 때까지 남은 100여 시간을 모두 채우기는 힘들 것으로 내다본다. 법적인 문제는 없을지라도 사회봉사 명령 시한을 채우지 않은 상태에서 사면 결정이 내려진다면 국민적 반감을 살 가능성이 크다.
꽃동네에서 사회봉사 명령 200시간을 모두 마친 김승연 회장은 ‘죄질’이 문제되는 경우다. 김 회장의 ‘보복폭행’은 기업 활동과 관련해 전과가 기록된 경영자의 족쇄를 풀어준다는 기업인 사면의 명분과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대한상의 관계자는 “이번 사면 청원은 특정한 경제범죄를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취지”라며 “김승연 회장의 경우에도 문제될 게 없지 않냐”고 주장했다. 그는 또 “사면복권 때 석방이 아닌 감형을 해주는 사례가 있듯, 정몽구 회장은 사면이 되더라도 사회봉사 명령을 모두 채우는 방법도 가능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놨다.
참여정부가 단행한 8차례의 사면 중 경제5단체들은 6차례 사면 건의를 냈는데, 수혜 대상자 수가 재계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했음에도 사면이 있을 때마다 기준과 범위를 놓고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지난해 말에는 대한상의 등 경제5단체가 76명에 대한 대사면을 건의해 김우중 전 대우회장, 정몽원 한라회장 등 11명에 대한 사면이 이뤄진 바 있다.
사면복권 움직임과 관련해 시민단체들은 사면심사위원회가 제대로 작동될 것인지에 주목하고 있다. 이번에는 개정된 사면법에 따라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사면심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정권의 자의적 판단에 따른 봐주기식 사면 가능성은 다소 줄었지만,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잠복해 있는 상태다.
사면심사위원회는 제대로 작동할까
경제개혁연대의 신희진 연구원은 “사면심사위원회 구성원들의 면면을 확인하기 위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고 다음주쯤 답변을 받을 전망”이라며 “사법부의 기업인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사면심사위원회까지 투명하게 운영되지 않는다면 심각한 문제라고 본다”고 밝혔다.
사면심사위원회는 위원장을 맡는 법무부장관을 포함해 9인의 위원으로 구성되는데, 이중 4인을 법학교수·변호사 등 민간인으로 위촉해야 한다. 법무부 관계자는 “사면심사위원회는 법무부 장관에게 자문을 하는 역할이지만, 사면 심사의 투명하고 공정한 운영을 위해 설치된 만큼 중요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며 “명단 공개는 못할 것은 없지만 위원들이 노출을 꺼려 공개를 안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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