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환경부가 댐 건설을 통해 기후위기에 대응하겠다는 정책을 내놓아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2024년 7월30일 김완섭 환경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14개 기후 대응 댐 건설 후보지(안)를 발표했다. 극한 홍수와 가뭄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키고, 국가 전략산업의 미래 용수 수요를 뒷받침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국가 주도로 대규모 댐을 짓지 않겠다고 선언한 지 6년 만의 일이다.
이번에 발표된 후보지는 연천 아미천 등 경기 1곳, 양구 수입천·삼척 산기천 등 강원 2곳, 청양 지천 등 충남 1곳, 단양 단양천 등 충북 1곳, 화순 동복천·순천 옥천·강진 병영천 등 전남 3곳, 청도 운문천·김천 감천·예천 용두천 등 경북 3곳, 거제 고현천·의령 가례천 등 경남 2곳, 울주 회야강 등 울산 1곳이다.
강 유역별로는 낙동강권 6곳, 한강권 4곳, 섬진강권 2곳, 금강권과 영산강권 각 1곳이다. 댐 용도별로는 홍수조절댐 7곳, 용수댐 4곳, 다목적댐 3곳 등 14곳이다. 14개 댐의 총저수량은 3억2천만t이고, 물 공급량은 2억5천만t이다. 이 가운데 8곳은 지방정부의 신청에 따랐고, 6곳은 환경부가 스스로 선정했다. 또 5곳은 기존 댐을 재개발하고 9곳은 새로 건설한다.
저수량으로 보면 양구 수입천 댐이 1억t으로 전체의 3분의 1에 가깝고 청양 지천, 연천 아미천, 화순 동복천, 단양 단양천, 울주 회야강, 김천 감천 등이 1천만t 이상이다. 나머지 7개 댐은 1천만t 이하 규모다. 환경부는 2024 년 8 월 21 일 예천 용두천부터 지역 설명회를 열고 , 지방정부나 관련 기관과도 협의한다 . 또 하천유역수자원관리계획에 댐 건설을 반영하고 국가물관리 기본계획과 부합하는지도 심의받는다 . 이어 댐별로 기본구상 마련 , 타당성 조사 , 기본계획 수립 등 절차를 밟는다 . 이 과정에서 댐의 위치 , 규모 , 용도 등이 확정된다 . 환경부는 2027 년 착공이 목표라고 밝혔다 .
환경부의 일방적인 발표에 대해 환경단체들은 강하게 반대하고 나섰다. 수십 개 환경단체로 이뤄진 5개 환경 연대단체들은 8월1일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유럽은 하천에서 댐과 같은 불필요한 구조물을 해체하고 하천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 정권은 기후위기 대응을 가장해 토건 세력의 먹거리를 늘리려 하고 있다. 기후변화에 무지한 윤석열 정부의 댐 신설 계획을 막고 물관리 정책의 정상화를 위해 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가장 저수량이 큰 수입천댐이 들어설 양구군은 군수와 주민들이 함께 반대하고 나섰다. 서흥원 군수는 “양구군은 화천댐, 소양강댐, 평화의댐 등으로 둘러싸여 육지 속의 섬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또다시 댐을 건설한다면 사지로 내몰리게 된다. 이번 정부의 발표는 지방 소멸을 막기 위한 노력에 역행하는 것으로 전면 백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양구군은 1944년 화천댐 건설로 북부 일부가, 1973년 소양강댐 건설로 남부 일부가 수몰됐다. 국내 최대 규모의 소양강댐 건설로 상수원 보호 등 규제를 받고 있고 질병 증가, 농작물 피해, 소득 감소 등 어려움을 겪어왔다. 소양강댐 건설로 양구 등 주변 지역 주민 2만여 명이 고향을 떠났고, 지난 50년 동안 주변 지역에 최대 10조원의 피해가 일어났다고 강원연구원이 밝힌 바 있다.
단양군의회도 임시회까지 열어 ‘단양천댐 건설 반대 건의문'을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군의회는 “정부의 댐 건설 후보지 발표는 주민의 정서나 (단양천) 선암계곡의 가치, 사회경제적 영향 등에 대한 고려 없이 일방적이었다. 단양천댐 건설 계획을 전면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또 청양 지천댐이나 화순 동복천댐 후보지에서도 주민이나 환경단체의 반대 목소리가 쏟아졌다.
환경운동가들과 전문가들은 이번 환경부의 14개 댐 건설 발표가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가장 먼저 절차적 문제점이 있다. 하천 정책과 관련해 한국에서 가장 중요하고 상위에 있는 계획은 2021년 국가물관리위원회가 세운 ‘국가물관리 기본계획’(2021~2030)이다. 그런데 이 계획엔 기후위기에 대응해 댐을 건설한다는 내용이 전혀 없다.
오히려 기본계획에선 물 부족과 관련해 수요 관리, 수원 다변화, 합리적 물 배분 등 새로운 방식을 제시했다. 홍수와 관련해서도 다목적댐의 홍수 조절 용량 확대, 하천시설 안전기준 강화, 홍수 방어 기준 상향, 예보 체계 고도화 등을 제시했다. 기본계획에 댐 건설 방안이 포함되지 않은 것은 2018년 9월 환경부가 ‘지속 가능한 물관리’ 정책을 발표해 “국가 주도의 대규모 댐 건설을 중단하고, 중·소 규모 댐은 유역 협치(거버넌스)로 추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번에 정부가 스스로 선정한 6개 댐 건설 계획은 2018년 환경부의 정책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6개 후보지는 연천 아미천, 양구 수입천, 청양 지천, 단양 단양천, 화순 동복천, 청도 운문천으로 이 가운데 운문천을 뺀 5개 지역에서 반대 목소리가 나온다. 또 운문천을 뺀 5개 댐은 저수량 1천만t 이상의 대규모다.
허재영 전국지속가능발전협의회 상임회장(국가물관리위원회 전 위원장)은 “한국의 물관리 정책은 국가물관리 기본계획의 범위 안에서 수립돼야 한다. 환경부가 발표한 내용은 기본계획에 포함되어 있지 않아 내용이나 절차상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 결정된 금강·영산강 보 처리 방안을 졸속으로 취소하고, 관련된 기본계획도 역시 졸속 변경한 바 있다.
또 환경부가 제시한 총저수량과 물 공급량에 대해서도 의문이 나온다. 2021년 국가물관리 기본계획에서 예상한 물 부족량은 2030년 최대 가뭄 기준으로 1년에 660만t이었다. 14개 댐의 저수량 3만2천t과 물 공급량 2만5천t은 2030년 최대 물 부족량의 각각 48배, 38배에 이른다. 어떻게 불과 3년 만에 물 부족량이 이렇게 급증한 걸까?
염형철 사회적협동조합 한강 대표(국가물관리위원회 전 간사위원)는 “지난 몇 년 사이 물 부족량이 크게 늘었다면 환경부는 어느 지역에서 얼마나 부족해졌는지 먼저 밝혀야 한다. 물이 부족한 것이 확인되지 않는데, 근거 없이 이렇게 많은 물을 확보하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에 발표된 가장 큰 다목적댐인 양구 수입천댐, 연천 아미천댐, 청양 지천댐은 용수의 목적이 대부분 주변 산업지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수입천댐의 하루 공급량은 70만 명분인데, 정작 양구군의 인구는 2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수입천댐과 아미천댐의 물은 앞으로 증설될 용인의 반도체 공장으로 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지천댐의 물도 38만 명에게 공급할 수 있는 양인데, 청양의 인구도 3만 명에 불과하다.
과장된 물 부족과 물 확보 사례로는 4대강 사업이 꼽힌다. 11억7천만t의 저수량을 계획했고, 9억~10억t을 실제 확보했으나 거의 사용하지 못하고 있다. 2018년 감사원도 “4대강 사업으로 1년에 1700만t의 생활·공업·농업 용수를 사용했다. 물 부족 지역이 대부분 도서, 해안, 산간으로 4대강 사업처럼 본류의 수자원 확보로는 물 부족을 해결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홍수 조절도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다. 예를 들어 16개 4대강 보 가운데 13개의 저수량이 1천만~1억t이었지만, 홍수 조절 능력은 거의 없었거나 오히려 홍수를 유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2월 나온 환경부의 ‘4대강 보의 홍수 조절 능력 실증 평가’ 보고서를 보면, 16개 모든 보 상류에서 보 구조물로 인한 홍수위 상승 효과가 나타났다. 특히 한강의 강천보와 낙동강의 달성보는 홍수위가 1m 이상 높아져 홍수 위험이 매우 커졌다. 또 미리 보를 비웠다가 일시 물을 가두더라도 홍수 저감 효과는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홍수량에 비해 저수량이 미미하기 때문이다. 홍수 때 수문을 열지 않는 경우에도 모든 보에서 홍수위가 올라 홍수 위험이 커졌다.
이철재 생명의강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은 홍수 대책으로 자연 기반 해법을 제시했다. “유럽에선 이미 ‘하천에 공간을’이란 운동을 벌이고 있다. 하천에 좀더 넓은 홍수터(둔치)와 저류지, 습지를 확보하고 하천의 홍수 위험을 높이는 댐과 보 등 불필요한 구조물을 제거하며, 직선화한 강을 과거의 사행천으로 되돌리는 것이다.” 이 밖에 도시에서 시멘트나 아스팔트 포장을 벗겨내고 공원을 늘려 빗물이 땅으로 스며드는 양을 늘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천 생태계가 파괴되는 것도 이번 댐 건설의 문제점 중 하나다. 수입천 상류엔 국가지질공원인 두타연이 있고, 두타연의 물은 금강산 자락에서 흘러온다. 두타연은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 있으며 휴전선에서 10㎞도 떨어져 있지 않다. 수입천엔 멸종위기 1급인 수달과 사향노루, 산양, 멸종위기 2급인 열목어, 돌상어, 가는돌고기 등이 산다. 수입천에 댐이 건설되면 하천의 깊이와 온도, 주변 환경이 달라져 멸종위기 어종들은 대부분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후위기 대응 댐’이란 말이 무색하게 느껴지는 대목이다.
물 부족 규모가 과장됐다는 환경단체의 비판에 대해 환경부 박재현 물관리정책실장은 “영산강, 섬진강 일대는 과거에 별로 물 부족이 없었지만, 2023년엔 큰 가뭄이 일어났다. 정부는 가뭄이 오더라도 생활용수를 평소와 다름없이 쓸 수 있도록 계획을 세워야 한다. 가뭄이 온다고 국민에게 전쟁 때처럼 물 사용을 줄이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입천의 멸종위기종 위협과 두타연 파괴 우려에 대해 환경부의 서해엽 수자원개발과장은 “모든 개발 사업은 환경영향평가를 받게 돼 있고, 멸종위기종 등에 대해서도 당연히 대책을 세운다. 용담댐 건설 지역에서도 멸종위기종을 성공적으로 보존한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활동가(전 4대강 조사평가단 기획위원)는 “유럽과 미국에선 기후위기에 대응해 홍수 위험을 줄이고 생물 다양성을 보존하기 위해 ‘그린 딜’(녹색 정책)을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댐을 철거하는 것이다. 미국은 1912~2023년 2095개, 유럽은 지난 1세기 동안 8천여 개의 댐을 철거했다. 한국 정부의 댐 건설은 좀비를 다시 꺼내든 것과 같다”고 말했다.
염형철 대표는 “환경부가 이런 일을 계속하겠다면 차라리 문을 닫는 게 낫다. 특히 물관리 일원화에 따라 환경부에 넘어온 국토부 출신들이 환경부에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벌이고 있다. 국민들도 물과 하천에 관심이 없어 정치인이나 관료가 벌이는 불필요한 개발을 통제하지 못한다. 이제 국민들이 물 정책을 바로세우려는 생각을 해야 한다. 다른 길이 없다”고 말했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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