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쓰레기 박사 된 주민들

등록 2023-02-10 21:50 수정 2023-02-17 11:04

쓰레기소각장 같은 기피시설 관련 주민설명회 하면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우리 집 앞은 절대 안 된다’고 격하게 반발하는 주민들, ‘그래도 필요한 시설 아니냐’며 사정하는 공무원들….

“기존 하루 750t 소각장도 관리를 제대로 못해 반입금지 폐기물을 태우는데, 그 옆에 추가 1천t짜리를 지으면 관리가 더 어려워지지 않겠느냐.” 서울시가 마포구 상암동에 추가로 설치될 ‘광역 쓰레기소각장’의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인근 경기도 고양시 주민들에게 설명하는 자리(2023년 2월1일)에서 주민 ㄱ씨가 한 질문이다. ‘환경에 해가 되지 않는다’ 는 서울시 환경영향평가 결론이 ‘ 폐기물이 규정대로 반입된다 ’ 는 최적의 조건만 가정한 것 아니냐고 꼬집은 것이다. 2022년 8월31일 서울시가 상암동에 하루 1천t 규모 추가 소각장을 짓겠다고 발표한 뒤 주민들은 ‘ 쓰레기 박사 ’ 가 돼가고 있었다 .

상암동 주민으로 구성된 ‘올빼미 감시단’은 2022년 9월부터 매일 자정~새벽 2시 ‘기존 750t 소각장’의 반입 폐기물을 검사하고 있다. 매일같이 종량제봉투에 음식물쓰레기, 의료폐기물까지 뒤섞여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주민 ㄴ씨는 “음식물쓰레기는 소각로 발열량을 떨어뜨려 다이옥신 발생을 증가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주민 ㄷ씨는 “이렇게 반입금지 폐기물 차량을 돌려보냈더니 기존 소각장의 3개 소각로 중 1개만 가동해도 충분한 양만 남은 적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2월1일 설명회 자리에서 주민들은 ‘입지선정 과정에서 상암동 소각장에서 불과 2.5㎞ 떨어진 고양시 대덕동 난지물재생센터(광역 하수종말처리장)가 고려되지 않은 점’ ‘대기오염을 평가할 때 대덕동에 측정소를 설치하지 않은 점’ 등을 조목조목 질문했다. ‘우기는 주민’과 ‘전문지식을 앞세운 공무원’이라는 선입견을 걷어내고 보면, 오히려 서울시 쪽이 ‘법·규정 때문’이라며 한발도 물러서지 않았다.

‘상암동 소각장’ 예정지 주변 주민들은 몇 달씩 반대 투쟁을 이어오면서 심각한 고립감을 호소한다. 상암동·대덕동 밖 다른 지역 주민들의 무관심과 ‘님비(지역이기주의) 아니냐’는 편견, ‘특정 정치세력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경계의 시선, 심지어 ‘폭력적’이라는 오해까지 사방이 가시밭이다.

이런 가운데 2월15일 예정된 ‘마포 추가 소각장 대환장 토론회’ 장소를 빌리는 문제를 두고 마포구청이 ‘폭력 시위로 변질할 수 있다’는 이유를 들어 구청 대강당 대관에 손사래를 치다가 주민 대표가 ‘순수 주민 행사로 치르겠다’고 약속하고 나서야 허가 서류에 도장을 찍어주는 일까지 있었다.

이미 서울시 하루 생활폐기물(3200t) 중 750t을 태우는 소각장이 있는 상암동에 1천t짜리가 추가로 들어선다. 굳이 ‘쓰레기는 배출한 곳에서 처리한다’는 ‘쓰레기 정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최소한 미안한 마음, 자세로 다가가는 것이 먼저고 도리다. 쓰레기를 줄이려 노력하는 것이 그다음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