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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속 살던 ‘러브버그’는 왜 아파트에 나타났을까

서울시 은평구·서대문구 등 주민 민원 수천 건… 러브버그 없으면 썩는 냄새 날 “익충”
등록 2022-07-11 01:39 수정 2022-07-11 10:26
2022년 7월4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서 짝짓기가 한창인 ‘사랑벌레’(러브버그)가 포착됐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2022년 7월4일 오후 서울 마포구에서 짝짓기가 한창인 ‘사랑벌레’(러브버그)가 포착됐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서울 은평구 연서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김정숙(64)씨의 요즘 일과는 ‘벌레 쓸어내기’로 시작한다. 최근 서울과 경기도 고양시 일부 지역을 뒤덮은 ‘사랑벌레’(러브버그)가 김씨 가게도 덮쳐서다. “아침마다 징그러워서 소름이 돋아요. 유리 벽에도, 진열대 위에도 벌레가 다닥다닥 붙어 있어서 반찬을 진열해놓을 수 없어요. 벌레 때문에 손님이 시장에 잘 안 오고, 기껏 온 손님도 안 사고 그냥 가버립니다.”

연서시장에서 분식을 파는 김명희(64)씨는 닷새째 오전 장사를 못했다고 2022년 7월6일 말했다. “떡볶이를 (야외에) 내놓고 파는데 벌레가 자꾸 들어가려고 해서 벌레가 많은 오전에는 장사를 접었어요. 매출에 타격이 심합니다. 가게에 모기향을 펴놓고 약도 뿌려봤는데 워낙 벌레가 많아서 소용없어요.”

‘쓸어내려야’ 할 정도로 많아

최근 떼를 지어 출몰하는 털파리류 때문에 서울 서부 지역과 경기도 고양시 주민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다. 털파리류는 암수가 한 쌍으로 붙어 있는 모습이 많이 관찰돼 이른바 사랑벌레로 불린다. 은평구의 한 아파트 1층에 사는 박치덕(66)씨는 “벌레 수백 마리가 베란다로 들어와 온통 새까맣다. 더운데 창문도 잘 못 연다”며 “은평구에 42년째 사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지역 온라인 커뮤니티와 중고거래앱 당근마켓에는 사랑벌레에 대처하는 방법을 나누는 글과 ‘벌레를 잡아주면 사례하겠다’는 글까지 줄을 이어 올라온다.

관할 지자체에는 민원이 쏟아졌다. 7월5일까지 은평구청에는 관련 민원이 3천여 건, 서대문구청에는 670여 건, 고양시청에는 450여 건이 접수됐다. 7월1일부터 은평구청은 매일 방역요원과 민간방역단 50~100명, 서대문구청과 고양시청은 각각 20명가량을 투입해 살충제를 뿌리는 등 방역에 나섰다.

국립생물자원관은 이 벌레가 정확히 어떤 종인지 알아내기 위해 분주하다. 7월4일 국립생물자원관 연구관들은 털파리류를 채집하기 위해 고양시 덕양구와 은평구에서 현장조사를 진행했다. 이날 조사에 동행해보니, 덕양구와 은평구 곳곳의 지하철 역사 안과 인근 화단, 벽, 수풀 등에서 짝짓기하며 붙어 있거나 날아다니는 털파리류를 쉽게 볼 수 있었다.

“털파리류는 다른 파리류보다 비행능력이 뛰어나지 않고, 짝짓기 중에 건들면 날지 않고 떨어져 채집하기 쉬운 편입니다. 채집 시작한 지 5분 만에 50마리 넘게 잡은 것 같네요.” 김왕규 국립생물자원관 전문위원이 이날 덕양구 지축역 인근에서 털파리류를 채집하며 설명했다. 김 전문위원은 푸른색 라텍스 장갑을 끼고 손가락으로 털파리류를 가볍게 건드려 연이어 채집통 안에 넣었다.

연구관들은 채집통에 모은 털파리류를 연구실로 옮겨 형태를 관찰하고 유전자를 분석했다.

낙엽 썩는 냄새 비슷한 자동차 배기가스에 이끌려

일각에서는 아메리카 대륙에 주로 서식하는 ‘플리시아 니악티카’라는 주장도 나오지만, 현재 연구관들은 외래종이 아닌 지금까지 국내에서 기록된 적이 없는 자생종 털파리류일 것으로 본다. 변혜우 국립생물자원관 환경연구관은 “국내엔 털파리류 분류 전문가가 없어 수십 년 전 기록된 털파리류 12종만 기록돼 있다”며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에서 서식했지만 기록되지 않은 종으로 확인됐다. 다만 완전히 새로운 종인지는 국외 털파리류와 비교해봐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털파리류는 1년에 한 번 성충으로 우화(번데기가 성충으로 변하는 것)하는데, 여러 개체가 동시에 우화하고 떼를 지어 다니는 경향이 있다. 앞서 국내외에서도 도심과 고속도로 등에서 털파리류가 한 번에 다수 목격된 바 있다. 변 연구관은 “올해처럼 털파리류가 떼를 지어 나타나는 것이 이례적인 상황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서 털파리류는 보통 5월 말에서 6월 초 우화하는데, 올해 우화 시기는 늦은 편이다.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봄 가뭄이 이어지다가 최근 장맛비가 내리며 고온다습한 날씨가 돼서다. 변 연구관은 “올해 봄 가뭄의 영향으로 토양에 적정한 습기가 없어 애벌레가 성장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가 비가 내리면서 습해지자 한꺼번에 우화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은평구와 고양시에서 털파리류가 다수 나타난 데는 북한산, 앵봉산, 봉산, 이말산 등 산과 인접한 지형적 특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변 연구관은 “털파리 애벌레는 낙엽 등 식물성 유기물을 먹기 때문에, 낙엽 등이 많이 쌓인 산자락은 털파리가 발생하기 좋은 조건”이라고 설명했다. 이동규 고신대 보건환경학부 교수는 “자동차 배기가스 성분이 낙엽이 썩으면서 나오는 화학물질과 비슷해 털파리류가 이를 좋아한다”며 “자동차 배기가스나 불빛에 유인돼 산자락에서 인접한 도심으로 이동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서부 지역과 고양시가 최근 개발이 활발하게 이뤄진 지역이라는 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이강운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은 “털파리류는 원래 산자락에 많이 사는데, 개발하면서 산을 깎아내고 아파트가 들어서니 이곳에서 발견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혜우 연구관도 “과거에도 이 지역의 산이나 들, 사람이 적은 공터 등에서 털파리류가 발생했는데 개발이 이뤄지면서 사람들 눈에 띄게 된 것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털파리류 ‘대발생’이 2주 안팎이 지나면 사그라들 거라고 내다봤다. 털파리류 성충 수컷은 3∼4일, 암컷은 일주일가량 생존한다. 한 번에 200∼300개 알을 낳지만 생존율이 높지 않다. 이강운 소장은 “수명이 짧아 2주 정도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2주 안팎으로 ‘대발생’ 줄어들 것

털파리류는 가정용 살충제로도 충분히 없앨 수 있다. 다만 전문가들은 털파리류가 사람에게 큰 피해를 주지 않고 생태계에 이롭다는 점도 고려해달라고 당부했다. 이동규 교수는 “털파리류는 독성이 없고 인간을 물지 않으며 질병을 옮기지도 않는다”며 “물 한 컵에 구강청결제 세 숟가락과 오렌지즙이나 레몬즙을 섞어 방충망 등에 뿌리면 기피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이강운 소장은 “털파리류 애벌레는 낙엽이나 동물의 배설물을 분해해 흙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며 “털파리류가 없으면 산에서 썩은 냄새가 날 것”이라고 말했다.

김윤주 <한겨레> 기자 ky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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