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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정’이 꿀벌 80억마리를 죽였다

올겨울 전국에서 떼죽음, 세계는 살충제 주목하지만 농촌진흥청은 ‘따뜻한 겨울’ 탓
국내 농업은 살충제 규제 어려워…“꿀벌 보호는 식량위기, 생물다양성과도 연관”

제1416호
등록 : 2022-06-06 17:39 수정 : 2022-06-07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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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5월30일 경기도 양평군에서 벌을 키우는 김일숙씨가 벌집을 꺼내 꿀벌들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

2015년 귀농해 경남 하동에서 4년간 벌을 키우던 김일숙씨는 2020년 경기도 양평으로 터전을 옮겼다. 하동에 있을 땐 드론으로 주변 논과 산에 농약을 뿌릴 때마다 꿀벌이 우수수 죽어나갔다. 하동처럼 규모가 큰 농경지 주변에서는 양봉이 어렵겠다고 판단했다. 소규모 농경지가 많은 양평으로 온 까닭이다.

지난겨울 전국에서 꿀벌 벌통(봉군) 41만7556개, 꿀벌 약 80억 마리가 한꺼번에 떼죽음을 당했다. 전국 벌통의 15.1%가 피해를 본 셈이다. 다행히 김씨가 키우는 벌통 50개는 무사했다. 2022년 5월30일 양평에서 만난 김씨가 노란색 물통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는 상수원 보호구역이지만 밖에서 물을 마신 벌들이 농약 섞인 물에 중독돼 죽는 일이 많아요. 농약이나 (꿀벌에 기생하는) 응애로 인한 피해는 늘 있는 일이라고 봐야 해요. (그런 피해를 줄이기 위해) 여기서 물을 마시도록 따로 물통을 만들어줬어요.”

농약 먹어 죽고, 응애 탓에 못 크고
김씨와 대화하는 도중에 벌통 주변에 이상하게 행동하는 몇몇 벌이 보였다. 김씨는 손바닥 위에 그런 벌들을 올리더니 “주둥이를 길게 내빼고 죽은 건 농약을 먹은 거고, 날개가 없는 얘네는 응애 때문에 이렇게 작고 기형이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씨는 날마다 양봉 일기를 쓴다. 2021년 6월27일 일기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하루 만에 벌 많이 죽음. 특히 강군(세력이 강한 벌떼)일수록 피해가 큰 듯. 수소문해보니 인근 사과밭에서 약 쳤다고 함.’ 그날 찍은 휴대전화 사진에는 벌통 앞에 새까맣게 죽은 꿀벌들이 쌓여 있었다.

그는 벌들이 빽빽하게 붙은 벌집을 꺼내 보여줬다. “자주 벌통을 꺼내 눈으로 살피고, 벌의 수가 줄어든 벌집이 있으면 예비벌통에서 다른 벌집으로 바꿔줘요. 벌들은 강군을 만들어주면 자신을 지켜내거든요.”

그러나 다른 꿀벌들이 모두 김씨의 꿀벌처럼 강하지는 못했다. 2022년 1월 농촌진흥청(농진청)이 발칵 뒤집혔다. 전남 해남에서 꿀벌 떼죽음 사건이 보고된 탓이다. 2006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군집 붕괴 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이 확인된 뒤, 전세계적으로 ‘꿀벌 집단 실종 사건’이 해마다 보고됐다. 한국에서는 전남 해남이 최초의 사건이었다. 농진청은 사단법인 한국양봉협회와 함께 양봉 농가 99곳을 대상으로 ‘월동 꿀벌 피해’를 조사했다. 농진청은 ‘꿀벌 응애류, 말벌류에 의한 폐사와 이상기상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결과를 내놨다. 기후위기로 꿀벌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식의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많은 전문가의 생각은 다르다. 10억분의 1가량으로 희석해도 꿀벌의 산란, 비행 등 행동을 교란하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가 전세계적으로 ‘꿀벌 떼죽음’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담배 성분인 니코틴을 화학적으로 합성한 네오니코티노이드를 이용해 만든 살충제는 1985년 다국적 제약회사인 바이엘이 이미다클로프리드를 개발한 것이 시초다. 꿀벌 폐사가 이 살충제 때문이라는 논란이 일자, 2013년 1월 유럽식품안전청(EFSA)은 ‘아주 적은 양의 네오니코티노이드 노출도 벌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다’고 결론 내렸다.

이 살충제가 꿀벌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은 실험으로도 확인됐다. 2017년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을 보면 영국·독일 등의 유채밭 33곳에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2종류로 코팅한 종자를 심은 결과, 이듬해 봄 주변 벌통에서 꿀벌이 24%가량 줄어들었다. 같은 해 <사이언스>에는 전세계 198개국에서 생산한 꿀 샘플 조사 결과 75%에서 네오니코티노이드 성분이 검출됐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이에 유럽연합은 2018년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3종류의 실외 사용을 전면 금지했다. 2022년 2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이 계열 살충제 57개 제품 사용을 금지했다.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가 주요 원인 지목돼
한국에서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6종류가 팔리고 있다. <한겨레21>이 사단법인 한국작물보호협회의 <농약연보>를 분석해보니, 2021년 네오니코티노이드계 농약의 국내 판매량은 1426억원으로 전체 살충제 판매량의 22.7%를 차지했다.

이흥식 농림축산검역본부 연구관은 “외국에선 이미 논문으로 네오니코티노이드 때문에 꿀벌이 서서히 죽어간다는 사실이 다 증명됐는데, 우리 농정 당국은 눈앞에서 벌떼가 녹아내리는 게 안 보인다는 이유로 이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사실 꿀벌은 기후 온난화의 영향을 거의 안 받는다. 겨울에 일부러 (꿀벌이) 활동하라고 따듯하게 해주기도 하는데, 겨울이 따듯했다는 게 어떻게 떼죽음의 원인이 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여름에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에 노출된 꿀벌 개체가 벌집을 오염시키면 11월에 새로 태어나는 개체들의 면역력이 떨어져서 응애나 바이러스에 더 취약해진다고 한다. 벌집 안쪽은 벌들의 날갯짓으로 평균온도 36℃ 정도로 유지되는데, 추운 겨울을 나려면 1만5천~2만 마리의 최소 개체수가 필요하다. 그 이하로 개체수가 떨어지면 벌통 안의 꿀벌이 일시에 죽어버릴 수 있다.

그러나 농진청은 살충제와의 연관성은 낮다고 본다. 유오종 농진청 농자재산업과장은 “그동안도 해충 방제를 위해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를 썼지만 올해 처음 문제가 생겼다. 올해 이 건(꿀벌 떼죽음)은 농약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번 ‘꿀벌 떼죽음’은 2021년 11월부터 2022년 3월 사이에 발생했는데, 우리나라에선 보통 9월 이후 농작물에 살충제를 거의 살포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월동 꿀벌 피해’ 조사를 담당했던 최용수 농진청 국립농업과학원 양봉생태과 연구관은 “2021년 여름 고온건조한 기온 탓에 응애가 워낙 많이 발생했고 약제로도 방제가 안 됐다. 월동 기간 남부지방에서 낮 기온이 크게 올랐다가 저녁에 갑자기 기온이 떨어지는 일이 반복됐는데, 응애 때문에 약해진 꿀벌이 밖으로 나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것이 (실종 사건의) 결정타였다”고 말했다. 살충제 연관성에 대해 최 연구관은 “그 부분은 연구되지 않았다”며 말을 아꼈다.

꿀벌은 농작물 수확에 큰 영향
실제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의 영향에 대한 국내 연구는 거의 없다. 이시혁 서울대 응용생활화학부 교수는 “외국 연구결과를 보면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는 지속적, 장기적으로 노출되면 꿀벌한테 치명적이다. 다만 우리나라의 노출 경로는 제대로 연구되지 않았다. 우리나라는 유럽과는 농사 방식이 다르고 많이 사용하는 약제 종류도 다르다. 이번 꿀벌 실종 사건을 정확히 규명하기 위해서라도 국내 상황에 맞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길하 충북대 식물의학과 교수는 ‘꿀벌 실종 사건’의 원인과 관련해 “기후변화는 관리를 잘하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며 “플루발리네이트 성분의 응애약을 매년 반복해서 사용해 응애가 해당 약에 내성이 생겼고,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사용이 늘면서 이에 노출된 벌이 비행 능력이 떨어졌다는 두 가지 점이 주된 원인”이라고 밝혔다. 다만 김 교수는 “유럽은 천적이 남아 있는 등 생태계가 제 기능을 하기 때문에 네오니코티노이드를 못 쓰게 하는 것이 가능할지 몰라도 우리 농업은 생산율을 높이려는 경향이 너무 강한 것을 포함해 사정이 많이 달라, 살충제 규제가 현실적으로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유럽 등에서 꿀벌의 떼죽음에 주목하는 이유는 식량문제와 직결됐기 때문이다. 2022년 5월20일 ‘세계 벌의 날’(World Bee Day)에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펴낸 자료를 보면, 꿀벌·새 등은 세계 주요 농작물 124개 가운데 87개의 수분(수술의 꽃가루가 암술머리에 묻는 일)을 맡고 있어 작물생산량에 영향을 미친다. 수분이 안 되면, 열매도 씨앗도 생기지 않는다. 2016년 2월 전문가·시민사회·산업계 관계자 700여 명이 참여한 제4차 생태다양성과학기구(IPBES)는 꿀벌 같은 수분매개 동물과 직접 관련된 경제적 효과를 연간 2350억∼5770억달러로 추정했다. 전세계 수분매개 동물의 16%가량이 서식지 파괴 등으로 인해 멸종위기에 직면한 것으로도 분석됐다.

우리나라의 꿀벌은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학계에서는 야생벌의 경우 지난 20년간 개체수가 90% 이상 줄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흥식 연구관은 “우리나라 해충 방제는 멸균 상태로 보내지는 중환자를 대하듯 행해진다. 꽃매미, 갈색날개매미충 등 외래 해충이 발생했다고 하면 다른 모든 곤충까지 다 죽이려 든다. 공원에 애벌레가 보이면 약을 왕창 뿌린다. 시민들이 곤충의 생태적 기능을 이해하고 공존하려 하지 않는다면 (꿀벌 떼죽음 이상으로) 정말 심각한 문제가 생길지 모른다”고 말했다.

살충제 남용으로 애꿎은 생명 죽어가
이번 꿀벌의 떼죽음이 ‘농정 실패’ 때문이라는 목소리도 있다. 김정룡 전국쌀생산자협회 사무총장은 “소농도 충분히 먹고살 수 있는 환경이 된다면 살충제 대신 돼지감자를 삶아다가 처리하는 등 벌과 공존할 수 있는 방식은 많다. 하지만 수십 년간 정부가 농사 규모를 키우도록 유도하면서 농약에 절대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게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최진우 서울환경연합 생태도시전문위원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2008년부터 10여 년간 벌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운동이 벌어져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살충제 사용이 엄격히 제한됐다”며 “벌 보호 운동은 기후변화, 식량위기, 살충제, 유기농업, 토양보호, 생물다양성과 연결돼 있다. 국내에서도 벌을 보호하기 위한 시민 조사, 벌 서식지 생태적 관리 강화, 네오니코티노이드계 성분 살충제 금지 입법 운동 등을 활발하게 추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양평=글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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