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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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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발유 없는 세상으로 한 걸음

COP26 참가한 완성차업체 10여 곳 내연기관차 단종 계획 발표
항공업계도 지속가능항공연료 비중 늘리고 전기·수소비행기 개발 나서
등록 2021-11-20 07:50 수정 2021-11-20 22:35
2021년 9월15일 영국의 엔진 제작 전문업체 롤스로이스가 제작해 ‘혁신 정신’(Spirit of Innovation)으로 명명한 순수 전기동력 항공기가 영국 상공에서 성공적으로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롤스로이스 누리집 갈무리

2021년 9월15일 영국의 엔진 제작 전문업체 롤스로이스가 제작해 ‘혁신 정신’(Spirit of Innovation)으로 명명한 순수 전기동력 항공기가 영국 상공에서 성공적으로 시험비행을 하고 있다. 롤스로이스 누리집 갈무리

영국 글래스고에서 열린 제26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는 2021년 11월12일 기후변화 대응을 외쳐온 이들에게 다소간 실망감을 안겨주며 끝났지만 성과는 있었다. 회의 종료를 이틀 앞두고 포드, 제너럴모터스(GM), 다임러, 볼보, 재규어랜드로버, 중국 비야디(BYD) 등 10여 개 자동차회사가 내연기관차의 단종 계획을 발표한 것이다. 이들 회사가 생산하는 차량은 세계 전체 생산량의 25% 정도다. 정보기술 전문매체 <기즈모도>는 “가솔린차가 멸종의 길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고 평했다. 공유차량 운영사인 우버와 리스플랜 같은 회사 10여 곳, 보험사와 투자사 20여 곳도 동참하겠다고 했다.

“폴크스바겐, 도요타, 현대는 서명 안 해”

<뉴욕타임스>, <시엔엔>(CNN), <비비시>(BBC) 등 언론은 이 소식을 전하면서 탈탄소 시간표를 공개하지 않은 회사들을 적시했다. 그린피스 독일 대표인 마르틴 카이저는 “폴크스바겐, 도요타, 현대는 전기차 생산으로 가겠다고 약속하는 이번 선언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세계의 관심은 선언에 참여한 회사들이 아니라 동참하지 않은 회사에 쏠렸다. 탈탄소 계획을 발표한 자동차 제조사들과 그렇지 않은 제조사들 사이에 미래지향적이냐 아니냐의 구분선이 그어지는 양상이다.

2015년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조작했다 들통나 망신을 당한 폴크스바겐은 친환경 이미지를 구축하려 애쓰고, 실제로 전기차 생산 투자를 대폭 늘렸다. 2025년까지 전기차 모델 80여 개를 내놓고 유럽에 2030년까지 전기차 배터리를 생산하는 기가팩토리 6곳을 지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차량용 배터리 생산을 늘리려면 소재부터 확보해야 한다. 폴크스바겐 최고경영자(CEO) 헤르베르트 디스는 공급망 곳곳에서 병목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해왔다. 그래서 탄소배출 제로로 간다는 목표에는 동의하지만 2040년이라는 시한을 자신할 수 없어 선언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했다. 디스 최고경영자가 독일 언론에 밝힌 폴크스바겐의 배출량 제로 목표는 2050년이다.

2020년 세계 자동차회사별 판매량(그림 참조)을 보면 1위 도요타, 2위 폴크스바겐, 3위 르노닛산미쓰비시, 4위 GM, 5위 현대였다. 도요타 쪽은 “아시아, 아프리카, 중동의 일부 지역은 차량 전기화를 진전시킬 환경이 아직 구축되지 않았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선언에 동참하기 어렵다”는 성명을 냈다. 2021년 9월 도요타는 2030년까지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카 배터리 생산에 1조5천억엔(약 15조4800억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발표했지만 탈탄소 시한을 공개한 적은 없다. 전기차 기술이 아직 불확실하다고 보고 수소차와 병행하려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수소차 판매는 아직 미미하다. <아에프페>(AFP) 통신에 따르면, 도요타가 2014년 내놓은 수소차 미라이는 지금껏 1만7천 대 팔리는 데 그쳤다.

충전소 인프라는 또 다른 문제다. 폴크스바겐은 현재 유럽에 충전소 3600곳이 있는데 영국 브리티시페트롤리엄(BP), 스페인 이베르드롤라, 이탈리아 에넬 등 에너지회사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2025년까지 1만8천 곳으로 늘릴 계획이다. 그렇게 해도 유럽 내 충전소 수요의 3분의 1 정도에 그친다고 회사 쪽은 본다. 인프라(기반시설)를 더 빨리 깔아야 한다는 얘기다. 폴크스바겐은 ‘일렉트리파이 아메리카’라는 자회사를 통해 2021년 말까지 북미 지역에 충전소 3500곳을 확보할 방침이고, 중국에서는 2025년까지 1만7천 곳으로 늘릴 예정이다.

현재 세계에서 충전소 2만여 곳을 운영하는 테슬라는 네덜란드 정부와 협의해 자사 충전망을 다른 회사의 전기차에도 개방했다. 전기차 충전망은 개별 회사들의 운영을 넘어 각국의 에너지 인프라와 통합되는 게 옳다. 2021년 11월5일 미국 하원은 1조달러(약 1185조원) 규모의 인프라 투자 예산을 통과시켰다. 그 가운데 75억달러(약 8조9천억원)가 전국에 전기차 충전망을 까는 데 들어간다.

탄소배출 상위 10개국 중 인도만 동참

이번 COP26에서 2040년까지 국가 차원에서 내연기관차를 없애겠다고 발표한 나라도 30여 곳에 이른다. 덴마크·핀란드·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들에 캐나다, 멕시코, 칠레, 터키, 이스라엘 등이 동참했고 케냐·가나·르완다·캄보디아 등 개발도상국들도 합류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세계 4위 자동차 생산국 인도의 참여 선언이다. 인도는 지금까지 기후변화 대응에 소극적이었지만 이제는 기후대응 리더십에 참여해야 한다는 쪽으로 전환한 듯하다.

미국 과학자단체 ‘우려하는 과학자들’의 추산을 보면 국가별 탄소배출량은 중국, 미국, 인도, 러시아, 일본, 독일, 이란, 한국, 사우디아라비아, 인도네시아 순이다. 이 10개국 가운데 이번 내연기관차 없애기 선언에 동참한 것은 인도뿐이다. 다만 미국에서는 국가가 아닌 지역 차원에서 캘리포니아, 뉴욕, 워싱턴주가 서명했다. 캘리포니아는 역내총생산(GDP)으로 보면 2019년 기준으로 세계 5위 경제단위다. 인도나 영국, 프랑스보다도 경제규모가 크다. 뉴욕은 국가들과 나란히 놓고 보면 세계 12위다. 이런 주들이 동참한 것은 의미가 적잖다.

항공기나 선박의 탄소배출은 어떨까. 항공산업이 세계 탄소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 정도다. 항공업계에서 거론되는 것은 지속가능항공연료(SAF)다. 석유가 아닌 식물성 기름을 쓰면 항공기의 탄소배출량을 많게는 80% 줄일 수 있다. 국제항공운송협회(IATA)는 2030년까지 항공기의 지속가능연료 비중을 5.2%로 높인다는 목표를 잡았다. 제트블루, 유나이티드항공 등 미국 항공사들은 지속가능연료 비중을 늘리기 위한 투자를 시작했고 미국 정부도 지원하기로 했다. 보잉은 2030년까지 100% 지속가능연료로 날 수 있는 비행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유나이티드항공은 비행기에서 나오는 탄소를 즉시 잡아 가두는 ‘대기중 직접포집’(DAC) 기술 연구에도 돈을 대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보다는 전기비행기, 수소비행기가 더 현실적일 수 있다. 2021년 9월 엔진제작사 롤스로이스는 영국 보스콤다운 공군기지에서 전기비행기의 15분 시험비행에 성공했다. 업계는 단거리 운항용으로 2~3년 안에 전기비행기가 상용화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에어버스는 2035년까지 수소연료로 움직이는 항공기를 만들 것이라고 했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세계 교역의 90%는 바다에서 이뤄진다. 미국과 영국 등 19개국은 2050년까지 바다에 ‘녹색회랑’을 설치하자는 데 합의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피트 부티지지 미국 교통장관은 “집단행동으로 가는 중요한 한 걸음”이라고 평가했다.

선언일지언정, 미흡할지언정, 세계는 탈탄소로 달려가고 있다. 최소한 COP26은 ‘탄소중립’이 거부할 수 없는 대세임을 확인시켜줬다. 이런 움직임 속에서 한국 정부와 한국 기업들의 자리는 어디일까.

구정은 국제 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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