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생태계가 죽어가고 있다. 지리산 천왕봉을 중심으로 한 고산지대가 ‘침엽수 고사목 전시장’으로 변해가는 중이다. 2020년까지는 제주도 한라산 구상나무의 떼죽음이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2021년 봄부터 기후위기로 인한 생태계 위협이 백두대간 곳곳에서 나타났다. 지리산 역시 2021년 여름을 지나면서 나무가 말라죽는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산 전체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지리산 동부의 천왕봉-중봉-하봉과 서부의 반야봉은 지리산 구상나무의 2대 집단 서식지다. 이곳에서 나무가 말라죽어가고 있다. 특히 산 정상 능선부터 해발 1700m까지는 성한 구상나무가 거의 없다. 이미 죽었거나 죽어가는 구상나무뿐이다. 기후위기로 인해 겨울철에 적설량이 부족하고, 봄철에는 건조하고, 여름철에는 폭염과 태풍이 덮치면서 구상나무의 생존을 위협한 결과다.
지리산 고산 생태계를 대표하는 구상나무는 2015년부터 떼죽음이 확인됐다. 2018년부터는 지리산의 주요 탐방로에서도 관찰될 정도로 퍼졌다. 이대로 가면 구상나무는 한반도 육지에서 기후위기로 인해 사라지는 첫 번째 생물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상나무는 전세계에서 오직 한반도에서만 서식한다. 국제멸종위기적색목록(Red List)에 위기종으로 등록돼 있다.
천왕봉에는 사시사철 탐방객 발길이 이어진다. 천왕봉으로 오르는 코스 중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중산리 코스. 이곳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해발 1500m 근처부터 구상나무의 본격적인 떼죽음이 펼쳐진다. 특히 천왕봉 턱밑인 해발 1800m 전후부터는 죽어가는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대열이 탐방로 양쪽으로 늘어서 있다. 지리산 정상봉인 천왕봉부터 인접한 중봉과 하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나무의 90%가량이 말라죽은 곳도 있다.
지리산 천왕봉 북사면 칠선계곡 일대는 남한 최대 고산침엽수 서식지였다. 100년 넘게 자란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 주목, 잣나무가 어우러진 원시성 생태계를 자랑했다. 그러나 지금은 남한에서 침엽수가 가장 넓은 범위에서 죽어가는 곳으로 변하고 있다. 정부는 실태 파악과 원인 분석을 정밀하게 하지 않는다. 환경부는 관심이 없고, 국립공원공단은 모니터링하고 있으나 예산과 인력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이러한 고사 징후가 나타나는 곳은 지리산만이 아니다. 소백산을 비롯해 태백산, 오대산, 설악산 등에서 비슷한 양상이 나타난다. 소백산 비로봉에 있는 천연기념물 주목은 잎끝이 타들어가면서 병해충에 걸린 침엽수처럼 갈색과 붉은색을 띠며 누렇게 떨어지고 있다. 주목은 빙하기를 거치며 한반도 백두대간 고산지대에서 생존해온 침엽수다.
설악산 고산지대의 주요 침엽수인 분비나무, 잣나무, 주목 등도 기후 스트레스를 받은 흔적이 역력하다. 특히 분비나무는 건강한 개체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백두대간이 이어지는 한계령부터 끝청봉, 중청봉을 거쳐서 정상봉인 대청봉까지 분비나무는 대부분 고사했거나 고사가 진행 중이다. 줄기를 중심으로 아래쪽부터 위쪽 나뭇가지까지 잎의 변색과 탈색이 나타났다. 말라죽은 침엽수는 잎의 변색과 탈색이 시작되면 다시는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되지 않는다.
설악산 오색코스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해발 1600m 주변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잘 자란 잣나무 군락지다. 그러나 이곳도 다르지 않다. 2021년 여름부터 잣나무의 고사가 진행 중이다. 대청봉 일대의 눈잣나무도 대부분 노랗게 변해가고 있다. 이미 단풍 든 것처럼 갈색으로 변한 나무도 있다. 설악산 대청봉 일대는 눈잣나무의 동북아 최남단 서식지다. 생태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그런 설악산 눈잣나무가 곧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은 남한의 3대 자연생태계다. 이곳에서 생태계가 급격하게 바뀌고, 백두대간 고산지대 식물이 사라지고 있다. 구상나무, 가문비나무, 분비나무 등의 멸종이 가시화되고 있다. 잣나무, 주목, 소나무 등도 기후 스트레스에 시달린다. 기후위기가 생물다양성의 위기임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현장이다.
코로나19 유행도 생태계 변화에서 비롯했다. 중국 윈난성과 라오스로 연결된 산림지대가 파괴되면서 그 숲에 살던 박쥐와 공존했던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로 넘어왔고, 이것이 지구적인 위기로 이어졌다. 백두대간 고산지대의 기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구상나무와 가문비나무가 사라진 뒤 다가올 생태계 변화는 어떤 모습일까. 그 변화를 주목해야 한다.
글·사진 서재철 녹색연합 상근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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