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공단 물자 반출에 민감한 미국… 사업 투명성과 한-미 신뢰 바탕으로 적절한 협의 기대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개성공단 사업이 전략물자 반출제한이라는 암초에 걸려 ‘잠시’ 주춤거리고 있다.
북한은 8월19일 미국이 ‘전략물자 제한규정’을 적용해 개성공단 사업에 훼방을 놓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날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 북쪽 대표단은 대변인 담화를 통해 “미국은 남조선(남한) 당국에 ‘테러 지정국’에 전략물자를 수출할 수 없게 규정한 관련 법규를 개성공업지구에 진출하는 남조선 기업들에도 엄격히 적용하겠다고 통보했다”며 남북 경제협력 사업에 미국이 개입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미국은 개성공업지구 건설이 본격적인 단계에 들어서자 이에 제동을 걸고 개입해 북에나 남에나 막대한 피해를 주고 있다는 주장이다.
국제 협정 ‘테러지정국’에 전략물자 금지
이는 일찌감치 예상되었던 사태다. 하지만 북쪽이나 일부 보수 언론이 우려하는 것처럼 이 문제 때문에 개성공단이 좌초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이와 관련해 “미 정부도 서울 주재 미 대사관을 통해 조만간 공식 입장을 밝힐 예정”이라고 미 대사관 관계자는 전했다. 내용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나 한국 정부 관계자들이 이미 밝힌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전해졌다. 즉, 미국 정부는 기본적으로 개성공단 사업에 대한 이해와 개성공단 사업의 투명성을 전제로 협조의 뜻을 밝힐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의 수출통제법과 바세나르 협정 등에 따르면 북한은 ‘위험국가’로 분류돼 국내에서는 흔한 펜티엄급 컴퓨터도 개성공단으로 보내기가 버겁다. 한국이 가입해 있는 오스트레일리아그룹(AG), 핵공급그룹(NSG), 미사일통제체제(MTCR), 바세나르협약(WA) 등이 통제하는 품목 및 이중용도 품목은 우려국가인 북한에 반출할 수 없게 돼 있다.
바세나르 협정은 냉전시대 공산권에 대한 수출 통제를 담당한 코콤(COCOM, 대공산권 수출조정위원회, 1949~94)을 대신해 1996년 체결된 국제적 수출관리 체제이다. 북한 반출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품목은 금속, 기계를 가공하는 공작기계, 검사장비, 전자·광학·레이저 관련 장비, 미생물 배양장비, 화학제품 설비, 실험·검사·계측장비, 센서류와 첨단산업 설비와 소재 따위다. 여기에다 미국의 기술, 미국산 부품이 사용된 설비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쓰일 수 있는 품목도 북쪽에 넘어갈 수 없다.
정부는 전략물자 반출과 관련해 통일부, 산자부, 외교부 등 관련 부처와 협력해 시범공단 입주 예정 15개 업체가 반출 승인을 요청한 1천여개 품목의 장비를 심사하고 있다. 8월 말에 끝내는 게 목표다. 서류심사뿐 아니라 공장을 직접 방문해 심사를 벌이다 보니 전략물자 판정이 다소 늦어질 수도 있다. 15개 기업이 개성공단에 가져갈 물자 가운데 70~80%가 기계류이다. 한국 정부는 공단 입주 기업들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심사를 가급적 조기에 마무리한다는 자세다. 전략물자 판정이 늦어지면 기업들은 여러모로 어려움을 겪게 된다. 어떤 생산라인을 가져갈지를 빨리 결정해야 공장 설계를 마칠 수 있다. 또 반출 물자에 따라 북쪽 노동자 고용 규모도 정해진다. 따라서 전략물자 반출 가능 여부의 결정은 가장 초보적 단계의 관문이다. 연내 생산 목표를 정한 기업들로서는 입주가 빠르면 빠를수록 도움이 되는 셈이다.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 1단계 100만평 터 닦기 공사는 8월17일 기준으로 14.1%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통일부에 따르면 개성공단 시범단지는 9월에 공장 건설을 시작해 내년 말께 제품 생산에 차질이 없도록 할 계획이다.
공단 활성화 부담 느끼는 미 보수파
1단계 100만평 분양에 대비해 개발업자를 중심으로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분양 기준을 마련 중이다. 공사가 원만하게 진행될 경우 공단 분양은 내년 초, 입주는 2006년 하반기부터 이뤄진다. 또 범정부 차원에서 개성공단 사업을 체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산자부, 건교부 등 7개 관련 부처가 참여하는 개성공단사업 지원단이 조만간 통일부에 설치된다. 이봉조 통일부 차관은 “개성공단 건설의 본격화에 따라 개성 관광도 머지않아 실현될 것으로 전망한다”며 “개성공단 2천만평 개발에 대한 마스터플랜도 본격적으로 검토·착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2단계부터는 공단과 함께 문화, 관광 등의 기능을 갖춘 복합적인 단지로 개성공단을 개발할 계획”이라며 “개성공단 개발 등 남북경협 중점과제를 차질 없이 추진할 방침”이라고 덧붙였다. 노무현 대통령도 8·15 경축사에서 “당장 통일이 실현되기는 어렵겠지만 통일이 되는 그날까지 남북 교류와 협력을 확대하는 일은 한시도 멈출 수 없다”고 말했다. 군사적 신뢰 구축과 철도·도로 연결, 개성공단 건설 등으로 남북 모두 경제적 이익을 얻고 전쟁 위험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셈이다.
전략물자 반출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한국 정부를 얼마나 신뢰하느냐의 문제다. 미국은 지난 금강산 관광사업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개성공단을 통해 전략물자 자체보다는 현금이 북한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더 경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이 가장 걱정하는 해외에서의 무기나 군사물자의 조달을 가능하게 만드는 외화의 유입인 셈이다. 미국으로서는 핵 문제가 풀리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개성공단의 ‘나홀로’ 발전과 번영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미국의 <usa>는 8월13일치에서 “북한이 미국과의 핵 협상에 미온적 반응을 보이는 것은 부분적으로는 개성공단이 가져다줄 혜택 때문”이라고 보도하며 워싱턴 보수층의 불편한 심기를 전한 바 있다. 이 신문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핵무기 포기를 전제로 불가침, 제3국의 중유 제공, 경제 원조 등을 제안했으나 북쪽 반응은 미온적이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신문은 “북한이 개성공단 프로젝트만으로도 빈사 지경의 북한 경제를 재생시키는 데 충분한 도움이 된다”면서 “남북간 협력의 하나로 추진 중인 개성공단 사업이 북한 정권의 고립과 몰락을 바라는 부시 행정부 내 보수파의 희망을 좌절케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전략물자 심사나 반출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배경이다. 사실 전략무기 통제 체제는 각국의 자율 통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가입해 있는 바세나르 협약이나 다른 4개의 통제 체제는 전략물자 판정기준을 만들어 적용하는 것을 각국 자율에 맡기고 있다. 특정 품목을 전략물자로 통제해야 한다는 강제 규정은 없는 셈이다. 그러나 정부는 핵 문제를 외면할 수 없는 탓에 가급적 미국 정부와 협의해서 전략물자를 판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핵문제’ 특수상황 고려해야
개성공단 물자 반출 문제는 개성공단의 특수성을 감안해 개성공단 설비의 최종 사용자가 한국 기업이고, 해당 품목을 한국 주도의 관리기관이 통제하며, 추후 모니터링을 통해 감독이 가능하므로 탄력적 적용이 필요하다는 점을 미국쪽에 집중 설명할 작정이다. 더구나 개성공단의 공장 시설이나 장비들은 다 노출되어 있어, 필요하면 미국쪽 인사가 언제든 방문해 직접 살펴볼 수도 있다. 북한도 “미국이 반입을 금지하려는 물품은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을 뿐 아니라 (개성공단) 건설현장에도 있는 것들”이라면서 “더욱이 남쪽 기업들이 입주할 개성공업지구와 같은 경제특구에는 문제될 수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앞으로는 ‘투명성’이 개성공단이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u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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