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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강의엔 독특한 향기가 난다

등록 2004-06-17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군대와 사회’ ‘한국생협의 이해’ 등 다채로운 커리큘럼… 노동운동가 · 가수도 강사로 </font>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1970~80년대 혹 누군가에게 들킬세라 점조직으로 구성된 지하서클에 숨어서 사회과학 세미나를 했던 ‘선생’들은 들끓은 지적 욕구를 ‘음지’에서 풀어놓던 그 세월을 잊지 못한다. 그래선지 ‘제도권 선생’이 되고 나서도 교수들은 학생들이 ‘양지’에서 원없이 공부하도록 멍석을 열심히 깔아놓았다. 수강편람을 펴보면 이 대학에서만 들을 수 있는 독특한 강의들이 가득하다.

한홍구 교수가 이끄는 ‘군대와 사회’는 급변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강의다. 이제까지 쿠데타 같은 사건이나 장군 중심의 인물사 위주이던 군대사회학을 우리의 일상으로까지 지평을 넓혔다. 학생들은 자신의 군대 체험을 발표하고 사병 인권의 현실에 대해 토론한다. 이라크 파병, 주한미군 문제, 양심적 병역거부 등 첨예한 이슈를 공부하며 군대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를 세밀하게 탐구한다. 또한 한홍구 교수가 학생들과 함께 주말마다 근현대사의 생생한 현장을 방문하는 ‘문화유산 탐방’도 인기 있는 강의다. 비무장지대(DMZ) 순례, 매향리 갯벌 탐사를 비롯해 이라크 파병 반대 촛불시위처럼 현재진행형 역사를 체험한다.

‘신영복과 함께 읽기’는 성공회대의 고전 강의다. 노자·장자 등 매 학기마다 텍스트를 바꿔가며 강의한다. 성공회대 학생들뿐 아니라 신영복 선생의 향기를 느끼려는 외부 청강생들도 북적이는 강좌다. 94학번으로 성공회대에 편입해 지금은 홍보 담당 직원으로 일하는 이세욱(34)씨처럼 자청해서 두세 학기를 내리 수강하는 마니아들도 적지 않다.

시민사회단체의 역할에 대해 주시하는 학교답게 비정부기구(NGO)와 관련한 특별 메뉴도 풍성하다. ‘NGO인턴십’ ‘NGO 이해 및 NGO 만들기’에선 이론과 함께 실질적인 경험을 수련한다. 자본주의적 질서와는 다른 대안적 생활이념을 뿌리내리기 위해선 구체적 실천이 중요한 법. ‘한국생협의 이해’는 대안유통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화하는 강좌다.

성공회대 또한 기독교 교단에서 운영하는 학교이므로 기도모임(채플)도 빠질 순 없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종교의 역할을 제대로 이해하고 졸업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양권석 부총장의 말에서도 짐작하듯, 일방적으로 기독교 복음을 전달하는 시간만은 아니다. 학생들은 교회음악·연극·영화·영어예배 등 13가지 다양한 선택권을 누리며 기독교 정신을 이해하게 된다.

졸업하기 전에 꼭 들어야 하는 기초·필수 과목들도 이 대학의 성격을 말해준다. 교양필수인 ‘인권과 평화’는 같은 이름의 여러 강좌가 개설돼 민족, 인종간 평화와 지구촌 사회와 인권, 인권과 사회복지, 여성과 인권 등 특정 주제를 선택해 들을 수 있다. 교양필수 2학점인 ‘사회봉사’도 건너뛰면 안 된다. 비영리 복지단체 또는 시민·사회·여성단체 등에서 반드시 10주 이상 총 30시간 봉사활동을 해야 졸업장이 나온다. 여름방학 중에 총학생회가 인솔하는 농활에 7일 이상 참가해도 1학점을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전임교수가 미처 다룰 수 없는 영역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전문가가 초빙된다. 노동운동가 박석운씨의 ‘일하는 삶의 세계’, 가수 이지상씨의 ‘노래로 보는 한국 사회’ 등은 현장의 경험이 생생한 목소리로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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