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괴담 6)

금쪽 같은 휴가 7일. 내게 이날은 좀 특별했다. 몇달 전부터, 아니 올 들어 이날만 손꼽아 기다렸는지 모른다. 세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와 단둘이 여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우리집엔 엄마와 나 단둘이 산다. 딸과 처음 여행한다는 것이 늙은 엄마를 무작정 들뜨게 했음에 틀림없다. 퇴근 뒤 집에 들어가면 지도를 펴놓고 내가 오는지도 모른 채 여행지 선정에 몰두해 있었다. 우린 보길도에 가기로 했다. 보길도는 그야말로 환상의 섬이었다. 분주한 휴가기간이 아니라 그런지 무척 한적했고 날씨도 가을마냥 청명했다.
보길도에서는 아주 편히, 아주 느리게 하루하루를 보내기로 엄마와 약속했다. 초고속메카톤급 서울살이에 둘 다 지쳐 있었던 걸까. 아무 하는 일 없이 섬 전체를 돌아다니며 섬과 함께 한다는 게 지루하지만은 않았다. 첫사랑, 아빠와의 이별, 날 낳은 이유, 미혼모로 살아오면서 느낀 설움 등 엄마에게 가슴 절절 눈물나는 사연들을 들었다. 하지만 난 전혀 슬프지 않았다. 아빠에 대한 분노만 남아 있는 내게 엄마의 변명 같은 말들이 듣기 싫기조차 했다.
그렇게 지내던 둘쨋날, 일찍 눈을 떠 일어나보니 엄마가 나가고 없었다. 아직 동이 트지도 않았는데 어딜 간 걸까. 겁이 덜컥 나서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만은 없었다. 민박집 아저씨를 깨워 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저 멀리 바다 한켠 쓸쓸하게 앉아 있는 엄마가 보였다.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이 새벽 엄마를 밖으로 나오게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몸과 마음 전체가 외로움으로 칭칭 묶여 있을 엄마가 이 먼곳까지 와서 되새김질해야 할 사람이라도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섬안에 버리고 갈 남은 상처가 여태 남아 있었던 걸까.
모르겠다. 조용히 민박집으로 돌아왔다. 꼭꼭 가슴 속에 묻어놨던 엄마의 외로움과 나의 외로움이 뒤범벅되어 봇물 터지듯 마구마구 서럽게 흘러나왔다. “꼭 부모가 모두 있어야만 행복한 가정인가” 하고 세상사람들에게 냉소를 퍼부었고 아빠 없이도 난 훌륭하게 자랐다고 자만하고 있었다. 한데 그게 아니었나. 그때 분명한 건 엄마는 그동안 행복하지 않았던 것이고, 딸만으로 만족할 수 없는 뭔가가 있었던 거다.
몇 시간이 흐른 뒤 엄마가 조용히 들어왔다. 나는 자는 척했고 괜히 심통을 부렸다. 엄마는 갑자기 왜 그러냐며, 엄마랑 둘이 오니 재미없어 그러냐며 사람 속을 벅벅 긁어댔다. 엄마가 옆에 있지만 더 쓸쓸했다. 셋쨋날도, 넷쨋날도 엄마는 밤이면 사라졌다. 내가 자는 틈을 타 혼자 외도를 한 거다. 나 몰래, 다른 사람을 향한 그리움을 쏟아내러 그렇게…. 보길도에서의 밤은 엄마에게 아주 특별했다. 물론 나에게도. 광주를 거쳐 서울에 도착하니 엄마는 예전보다 밝아졌다. 역시 집이 좋다는 둥 맘에 없는 소리를 했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 나와 함께한 보길도에서의 여행에서 나를 위해, 엄마의 작은 기억마저 다 버리고 왔다는 것을.
김석란/ 서울시 영등포구 대림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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