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편집장이 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구독 수익과 광고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도 후원 수익은 꾸준히 늘어나고 그 힘으로 <21>은 추운 겨울을 버텨내고 있습니다. 늘 궁금했습니다. 누가, 왜 <21>을 후원하는지. 그러나 코로나19 탓에 후원자를 직접 만날 기회를 좀처럼 만들지 못했습니다.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2021년 5월 <21> 후원제가 온·오프라인 공간이 연결되는 새로운 형태로 거듭나는 이때, 후원자에게 그 소식을 전해야 했습니다. 5월11~12일 이틀간 <21> 후원자 명단을 뽑아 들고 휴대전화 번호를 무작정 눌렀습니다. 김남정(48), 김소라(40), 김현식(47), 변정희(53), 이남희(57), 조아무개(69) 등 후원자 여섯 분과 짧게는 5분, 길게는 25분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전화에 후원자분들은 처음에 당황스러워했지만 곧이어 <21>에 대한 응원과 걱정을 쏟아내셨습니다. 세 분은 <21>을 구독하면서 동시에 정기 후원하는 ‘구독자’이자 ‘후원자’였고, 또 다른 세 분은 <21>을 인터넷에서 만나며 힘을 보태는 정기 후원자였습니다. 가장 궁금한 것을 첫 번째 질문으로 던졌습니다.
후원을 왜 시작하셨나요?
변정희 “후원해야 언론이 똑바른 뉴스를 제공하지 않을까 싶어서다. 광고에만 의존하면 치우칠 수 있으니까. 한겨레는 다른 언론보다 조금 더 팩트(사실)에 근거해 쓰는 것 같아서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요즘 매체가 무분별하게 많은데 (내 후원으로) 한겨레가 인터넷 등에 더 많이 노출되고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었으면 한다.”
김현식 “사회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요즘 돈 내고 (<21>을) 보는 사람이 드무니, 그러다가 없어지면 어쩌나 싶어 (후원)하고 있다. <21>을 구독하기 전 월간지 <말>을 봤는데 그게 없어졌잖아. 그걸 목격하고 나니까 힘닿는 데까지 (<21>을 후원)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 구독자인 두 분은 <21>의 가치와 역할에 주목하며 후원하고 있었습니다. <21>이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다시 물었습니다. “사회에서 주목받아야 하는 사건을 계속 발굴해 이슈화하지 않나. 그것이 필요한 일이다.” 김현식 후원자는 심층취재를 그 사례로 들었습니다. “일간지는 그날그날 일어난 일을 잠깐 알아보고 오후에 기사를 마감하잖나. 뉴스를 전달할 수는 있지만 구조적으로 깊이 있는 기사를 쓰기가 어렵다. 시사주간지가 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21> 후원은 심층취재에 힘을 보태는 마음에서 비롯됐다고 김남정 후원자도 말합니다. “집중취재는 잘 몰랐던 사실을 독자가 알 수 있게 하기에 의미가 크다. (내가) 탐사보도에 관심 갖고 후원하는 이유다. 그런 보도는 인력이 많이 필요하고 돈도 많이 드니까. 앞으로도 (<21>이) 탐사보도, 집중취재를 잘했으면 한다.”
최근 인력과 돈을 쏟아부은 <21>의 대표적 심층취재라면 디지털성범죄 끝장 프로젝트 ‘너머n’이 있습니다. 2020년 아카이브(stopn.hani.co.kr)를 구축하고 디지털성범죄 관련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끈질기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성범죄 연구자로 제주대에서 강의하는 김소라 후원자는 그 프로젝트에 후원합니다. “(디지털성범죄 관련) 기사가 흘러가기 쉬운데 모아놓은 곳이 있으니까 편하다. 수업할 때 학생들에게 추천하고 자주 보여준다. 글을 쓸 때도 인용한다. 특히 디지털성범죄 조직도를 많이 쓴다. 그 아카이브를 업데이트하는 데 (<21>이) 노력과 시간을 쓰는 거니까 후원하고 싶었다. 원래 작은 단체만 후원하는데 너머n 프로젝트는 취지가 좋아서 응원한다.”
1994년 <21> 창간 때부터 정기 구독해온 이남희 후원자는 사회적 소외계층에 대한 <21> 보도에 주목합니다. “<21>은 르포든 집중취재든 다른 언론에서 취급하지 않는 기사를 많이 쓴다. 마음을 무겁게 하는 부분이 있어, 경우에 따라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는 사회현상을 누군가는 알려야 한다. 그것이 돈이 안 되더라도 말이다. 어려운 일이니까 후원한다. (후원금을 내고) 나는 커피 한 잔 덜 마시면 되니까.”
조아무개 후원자의 마음을 움직인 것도 소외계층 보도였습니다. “18살이 되면 보육원에서 나와야 하는 ‘고아들의 18 청춘’ 이야기(제1255호)를 (인터넷에서) 읽고 이런 보도는 계속하는 게 좋겠다고 싶어서 시작했다. 사회적 약자에게 관심 갖는 그 태도가 내 마음에 와닿았다. (세상을) 바라보는 방향이 비슷한 사람이 열심히 하는 것, 아주 보기 좋다. 그래도 (언론이) 장사는 돼야 하는데 싶었고 나라도 힘을 보태야지 했다.”
두 번째 질문은 망설여졌지만 용기 내어 물었습니다.
<21>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나요?
김남정 “인터넷으로 보는데 이상한 뉴스도 종종 있다. <조선일보>와 비슷한 느낌의 기사가 눈에 띌 때가 있다. 내가 후원하는데 이상한 기사를 쓰는구나 싶어서 기분이 안 좋아진다. 그런 일이 많이 줄었으면 좋겠다.”
김현식 “2012년부터 (정기) 구독했는데 이번에 연장할 때 망설였다. 요즘 여성 문제를 많이 다루는데 너무 여성 쪽으로 쏠려 있어 마음에 안 든다. 예전에는 기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다 읽었는데 최근에는 안 읽는 기사도 생겨났다. 그렇지만 논조가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다고 구독을 끊는 게 옳은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남희 후원자는 “<21>과 헤어지고 싶은 마음이 들 때도 있었지만 어느 순간, 사라지면 안 될 것 같은 마음이 커졌다”고 말합니다. 그가 탐사·심층·기획 보도를 강화하는 ‘취재 후원’ 대신 ‘구독 후원’을 선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구독 후원을 하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과 대학생 등에게 <21>이 보내집니다. “종이잡지를 안 보는 시대지만 동네 도서관 등에 깔아놓으면 누군가는 보지 않을까 싶었다. 한두 사람이 보더라도 말이다. 모르잖나, 그들이 (<21>을 만나) 어떻게 (삶이) 달라질지. 한겨레 창간주주이기도 하고 어렵다고 할 때 (재창간 등에) 십시일반의 마음도 얹어놨다.”
후원자들과의 전화를 마무리하며 저는 ‘동지’라는 단어를 떠올립니다. 평소 쓰지 않던 말이라 새삼스레 국어사전을 찾아봅니다. “목적이나 뜻이 서로 같음. 또는 그런 사람.” 고개가 끄덕여집니다. 후원자 여러분, 당신들 덕분에 <21>의 미래는 불안하지만 불가능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손을 맞잡고 지치지 않고 더 힘껏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정은주 편집장 ejung@hani.co.kr
*이어진 기사 - <한겨레21> 후원제가 더 커집니다
http://h21.hani.co.kr/arti/reader/together/503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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